대출연명 '좀비기업' 정리·정부 교통정리 필요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은행권 중소기업 대출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자료=금감원>

금리가 오르면서 연체율이 소폭이나마 상승할 조짐을 보이자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에 대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가고 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에 대한 정부의 억제 방침에 따라 중소기업 혹은 자영업자 대출을 늘리려던 은행권은 고민에 빠졌다. 그렇지 않아도 중기대출에서 무리하게 영업에 나서면 수익성 악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걱정이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임금제 실시로 필요한 생산설비 도입이나 신규인력 채용 등에 드는 비용을 기업금융을 통해 적시에 조달하지 못 하게 될 경우 기업의 생존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중소기업 대출↑·금리인상 연체율↑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산업기술진흥원, 신용보증기금과 협력해 기술력이 있는 지방 중소기업에 1000억원을 저금리로 대출하기로 했고, 우리은행은 지난 5월 중소기업과 중견기업을 대상으로 ‘일자리 지원 대출’ 특판을 실시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예금은행 중기대출 순증액은 12조4000억원에 달했다. 2015년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한 것이다.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정책, 동반성장 지원 등 기업대출 활성화 영향 때문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최근 금융감독원은 은행권 원화 대출 연체율이 전월 대비로 4월말과 5월말에 두 달 연속 상승했다. 기업대출 연체율은 5월말 0.91%로 전월 말보다 0.05%p 올랐고, 가계대출은 0.28%로 0.01%p 상승했다. 이같은 상황은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인상 천명에 따라 우리나라 금리도 시기적으로 늦춰질지는 몰라도 결국 동조화할 것이 분명해, 대출이자도 덩달아 오르면서 기업대출 연체율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금융계는 예측하고 있다.

■ 은행권, 中企대출 리스크 관리

이에 따라 은행권은 수익성 악화와 경영부실을 막기 위해 중기대출 리스크 관리에 들어갔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12월 선보인 '연체 정상화 예측모형'을 더욱 정교하게 진화시키고 있다.

이 모형은 대출이 연체되면 고객의 금융거래 이력과 상환능력, 대출상품의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향후 정상화 가능성을 예측하는 시스템이다. 여신 회수 난이도에 따라 채권을 10개 등급으로 구분하고 회수 예상액을 미리 계산해 낸다. 국민은행은 이를 바탕으로 5일 이내 상환이 가능한 우량 고객은 추심을 유예하고 악성 채무자만 골라내 집중 관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최근 퇴직자 30여 명을 다시 채용해 기업 본부, 대형 영업점 등에 배치했다. 재직 당시 기업금융전담역이나 심사역을 주로 담당했던 이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집중적으로 점검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앞서 지난 3월에도 퇴직자 10여명을 영업점 대출 모니터링 요원으로 재채용한 바 있다.

우리은행도 국내 시장금리가 점진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신용공여의 미사용 한도를 축소하는 한편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분할상환하게 하거나 변동금리 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할 것을 유도하는 등 리스크 관리를 하고있다.

KEB하나은행은 본부 부서 인원 중 영업점 상담 담당자를 정해 영업점에서 문의나 지원 요청이 오면 즉시 대응하도록 했다. 또 부실징후 기업은 수시로 기업 재무상태를 점검하고 사전 관리를 확대해 부실 발생을 최소화하고 있다.

■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지난 6일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최근 금융상황을 점검했다. 금통위원들은 예금은행의 개인사업자 대출은 올해 1~5월 11조3,000억원 증가하며 5월말 30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다는 사실을 주목했다. 아울러 2018년 1분기 중소기업대출 순증액은 12조4000억원으로, 1분기 기준 2015년 이후 가장 크게 증가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았다. 회의 속기록에서 한 금통위원은 "중소기업의 경우 부채비율 200% 이상인 과다부채 기업과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한계기업 비중이 상승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대출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이들 한계기업에 대한 대출도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행은 국내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 행태지수가 긍정적으로 오르고 있는 반면 신용위험 또한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료=한국은행> 

은행권과 중소기업들은 모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난처한 입장이다. 은행권 관계자 A는 “중소기업은 리스크 관리도 쉽지 않고, 그 중에서도 우량 중소기업은 한정돼 있는데 당국에서는 기존 가계대출에서 탈피하라고 하니 난감한 상황”이라고 했다. 다른 B는 “중소기업의 부실 확대로 은행 간 우량 중소기업 유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며 “기업대출은 늘려야 하는데도 연체율이나 부실률은 끌어내리려면 리스크 관리는 뜨거운 감자”고 했다.

중소기업들 입장도 난처하다. 더욱이 중기대출 감소에 대해 찬반으로 나뉘어 있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저금리에 의지해 은행대출로 연명한 ‘좀비기업’을 정리해야만 돈이 필요한 정상적 중소기업들이 제때에, 적정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다”면서 “이번을 계기로 악성 좀비기업과 한계기업을 정리해 중소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다른 중소기업 관계자는 “어쩌면 수출 부진에 따른 매출 감소, 기업 간 부채상환능력 양극화 심화, 시장금리 인상 등으로 중기대출 부실률 증가 등은 따로 떼놓고 볼 일은 아니다”라며 “중소기업의 자체 노력은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나 기관들이 정리해 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중소기업들이 스스로 정부만 바라보는 ‘천수답(天水畓) 비즈니스’를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정부나 금융기관의 중소기업 지원책도 적절하게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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