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권고안 무시…법원 집행정지 가처분 받아내
법원, 유진기업 피해정도 ‘심각하다’ 판단
산업용재 소상공인 ‘발끈’…“끝까지 싸운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진형 기자] 지난 3월 28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유진기업의 DIY 매장 ‘에이스 홈센터(Ace Homecenter)’ 금천점 개장과 관련해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해라는 소상공인들의 의견을 수렴, 3년 연기를 권고한 바 있다. 유진기업은 중기부의 이러한 권고처분에 불복, 서울행정법원에 중소벤처기업부의 권고안에 대해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을 제기했으며, 법원이 이를 받아주면서 유진기업은 지난 4일 금천점을 오픈하게 됐다.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를 필두로 한 소상공인들은 지난 7일 금천점 앞에서 개장과 관련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반발에 나섰다.

유진기업의 ‘에이스 홈센터’ 금천전 전경
유진기업의 ‘에이스 홈센터’ 금천전 전경

일단 문 연 ‘에이스홈센터’

지난 5월 30일 서울행정법원은 유진기업이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말도 많았던 유진기업의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의 영업이 가능해졌다. 본안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일단은 영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금천점 운영을 맡는 유진기업의 계열사인 EHC은 이미 약 250억원이 투자됐으며, 직원도 채용해 교육을 마쳤다는 점 등을 들어 지난 4월 16일 행정법원에 ‘집행정지 신청’과 ‘개점연기 권고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즉, 매장개점에 맞춰 자금과 인력구성 등이 마무리됐는데, 중기부 권고안을 수용한다는 것은 유진기업 측으로서는 재정적 부담이 컸다는 의미다. 법원은 지난 5월 30일 유진기업의 피해가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영업 가능의 길을 마련해 줬다. 유진기업 측은 중기부의 권고안에 대해서도 “그 결정의 옳고 그름을 가리는 본안소송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이스 홈센터’ 사업에 참여한 미국의 건자재 유통사 에이스하드웨어(AH)는 중기부 권고안에 대해 “사업조정제도가 국제투자규범에 위배된다”며 주한 미국대사관을 통해 공식서한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기부의 권고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유진기업 관계자는 “‘에이스 홈센터’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체의 80%가량이 영세 중소기업”이라며 “홈센터 개장으로 이들에게 판로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스 홈센터’ 금천전 내부사진
‘에이스 홈센터’ 금천전 내부사진

‘에이스 홈센터’는 어떤 매장?

유진기업의 ‘에이스 홈센터’는 집을 꾸미고 유지·보수하는데 필요한 상품들을 한 곳에서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는 홈 임프루브먼트(Home Improvement) 전문매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홈 임프루브먼트란 집을 단장하고 개선하는 등 생활하는 공간의 환경을 개선시키는 일들을 통칭한다”며 “건축 및 인테리어 자재·공구·철물·생활용품 등의 상품을 원스톱으로 쇼핑이 가능한 홈 임프루브먼트 매장은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생소하지만 이미 해외에서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일반화된 유통포맷이다”고 말했다.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은 연면적 1795㎡(약 540평)에 지상 3층 규모다. 매장 1층은 공구와 하드웨어 상품을 비롯해 케미칼, 배관, 건축 기타자재 매장으로 구성됐다. 2층은 자동차용품과 가전·아웃도어 등 생활잡화, 전기/조명, 원예, 애완용품, 인테리어 자재, 페인트를 갖췄다. 3층에는 A/S 센터로 운영될 예정이다.

유진그룹은 선진국형 홈센터 사업전개를 위해 지난 1월 홈 임프루브먼트 세계 최대 기업인 미국의 에이스 하드웨어와 제휴를 맺었다. 한국시장의 변화에 맞춰 이번에 문을 연 ‘에이스 홈센터’는 에이스 하드웨어社로부터 점포운영에 필요한 브랜드 사용, 상품소싱, 경영기술 및 운영노하우 등을 전수받아 고객들에게 선진화된 서비스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오픈을 기념해 오는 6월 30일 까지 기념품 제공, 경품추첨, 신용카드 무이자할부 등 다양한 고객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유진기업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 앞에서 개장 강행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와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등 관계자들이 유진기업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 앞에서 개장 강행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산업용재 소상공인 ‘발등의 불’

소상공인 적합업종 특별법이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유진기업의 산업용재시장 진출 저지에 노력해 온 산업용재 소상공인들에게는 이 같은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다.

지난 3월의 중기부 권고결정으로 ‘다 끝났다’,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행정법원이 유진기업 측의 손을 들어주면서 유진기업측과 중기부 간의 기나긴 소송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됐다.

송치영 한국산업용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장은 “일부 잘 팔리는 공구 물품에 대해 도매상이 소매상에 공급하는 가격이하로 유진기업 측은 소비자에게 팔고 있는 등 가격 공세를 펼치고 있다”며 “마이너스 수익을 감수하고도 이 같은 영업방식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치영 비대위원장은 “유진기업과 중기부의 본안소송이 진행될 것인데,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고 지루한 싸움이 될 것을 예상했다. 이어 “그 기간 동안 유진기업은 ‘에이스 홈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할 것이 예상된다”며 “전국의 산업용재 소상공인들이 궤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고 울분을 토했다.

금천점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금천구 일대 영세 공구·산업용재유통상가 소상공인들이 직격탄을 맞게 됐다. 특히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 시흥공구상가이다. 유진기업 측은 ‘에이스 홈센터’ 금천점과 시흥공구상가는 직선거리로 2.6㎞ 떨어져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하는 반면, 시흥공구상가 측은 품목 중복으로 중소상인 40~60%가 없어질 것이라고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다.

최우철 시흥유통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대기업인 유진기업이 약자 코스프레은 차치하더라도 새로운 미래 신사업이라고 자칭하고 추진하는 사업이 소상공인 중심의 산업용재 소매업이라는 것은 아이러니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유진기업 측이 말하는 판매 품목과 구매 고객층이 다르다는 주장에 대해 “비교해 보니 시흥공구상가에서 판매하는 품목과 ‘에이스 홈센터’ 품목이 대부분 중복되고, DIY 관련 제품의 소비자가 구매할 것이라 말하지만, 어떤 일반 소비자가 전문 시공업자가 쓰는 코아드릴, 공성머신, 발전기, 산업용 전동공구 등을 구매하겠냐”고 반문했다.

최 이사장은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중견기업이라고 말하는 유진기업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대기업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최근 통과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특별법 등의 시행령·시행규칙을 통해 기계공구·철물을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일하게 대처한 중기부

일각에서는 행정심판에서부터 “중기부가 일부러 져주려고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진기업에서는 행정심판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임하는데, 중기부가 선임한 변호사가 부동산 소송 전문가로 파악되는 등 중기부가 행정심판에 대해 안일하게 대처한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면서 중기부와 소상공인 입장을 충분히 듣지 않고 결정을 한 것 같다”며 “본안소송은 착실히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업조정제도’에 대한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부각되고 있다.

사업조정제도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제32조에 명시돼 있다. 중소기업자 단체가 대기업의 사업 인수와 개시, 확장으로 심각한 경영상 피해를 받을 수 있을 때 중소기업중앙회를 거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을 받은 중기부는 사업조정 안건을 심의해 대기업에 영업시간 제한과 개점 연기, 홍보·마케팅 제한 등의 규제 조치를 취하게 된다. 문제는 대기업 등이 일정시간 사업을 추진한 후에 사업조정절차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이번 유진기업의 사태에서 보듯 비대위 측은 “유진기업의 매장규모를 모르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의 피해 정도를 규정할 수 없어 제때 사업조정절차를 제기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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