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이면 우리 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를 겪은 지 20년이 된다.

1997년 12월 정부는 IMF 구제금융 합의서에 서명, 대기성 차관 제공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후 2001년 8월 1억 4000만 달러를 최종 상환하면서 IMF에서 빌린 195억 달러를 전액 갚았다.

1997년 당시 정부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하기 때문에 외환 위기가 오지 않을 것으로 오판했다. 하지만 한보, 삼미, 진로, 기아, 쌍방울 등 대기업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미국 S&P와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하향조정했다. 주가지수 500선도 붕괴됐다.

급기야 정부는 1997년 10월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하면서 연기금의 3조 원 규모 주식 매입, 채권시장 개방 확대, 기업구조조정 등에 나섰다. 당시 외환시장은 개장 8분만에 대미달러 환율이 하루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하는 바람에 사실상 거래가 중단되기도 했다.

1997년 11월 10일에는 사상 처음으로 원화 환율이 달러당 1000원을 돌파했고, 김영삼 대통령은 "미국 등 우방으로부터 돈을 빌려 보겠으나 여의치 않으면 IMF로 가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했다.

문제는 지금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성장률과 소득증가율 면에서 빠르게 둔화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000년대 한때 5%대 성장을 구가했던 경제가 이제는 3%대 성장도 힘겨워졌다.

2003∼2007년 연평균 성장률은 4.48%였으나 2008∼2012년에는 3.2%로 낮아졌고 2013∼2016년에는 2.96%로 더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3%대 성장을 달성한 것은 2014년의 3.3%다. 2015년, 2016년에도 모두 2.8%씩 성장하는 데 머물렀다.

물가상승률을 반영한 실질소득증가율 역시 낮아지는 모양새다.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실질소득증가율은 노무현 정부 때 2.18%에서 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1.61%로 쪼그라들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0.85%다. 가장 최근인 지난해 가계의 월평균 실질소득은 435만7000원으로 전년보다 0.4% 감소했다.

정부는 과도한 규제를 개혁하고 혁신 중소기업을 육성해 올해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3%대 성장을 유지한다는 것이 목표다. IMF도 무역회복세에 힘입어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을 3%로 6개월 만에 0.3%포인트 높여 잡기도 했다.

향후 5년 간의 세수 역시 GDP의 22% 수준을 꾸준히 유지할 전망이다.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8년과 2009년 각각 GDP의 20.8%, 21.3%를 기록했던 정부지출은 2010년과 2011년 19%대로 감소했지만,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는 20.6~20.9%를 기록했다. 올해는 GDP의 21.1%를 기록하며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21%대로 올라설 전망이다.

그러나 장밋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북핵 리스크 등 난제가 많다.

문재인 정부가 약속한 복지 정책으로 재정 수요는 이미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8년에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4%를 초과하는 고령 사회에 돌입하고 국가채무 시계는 1초에 약 127만 원씩 늘어나고 있다.

성장정책을 후순위로 밀면서 복지지출만 늘릴 경우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민간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3%대 경제성장을 다시 달성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 현실]

고성장 기업 수 줄고 성장률 멈춰 ‘한계상황’으로 내몰려

99.9%와 87.9%. 한국에서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사업체와 종사자 비율이다.

한국에서 사업자등록증을 낸 중소기업 사업체 수는 354만2000개로, 전체 사업체 중 99.9%를 차지하고 있고 종사자 수 역시 1402만7000명으로 전체 기업 종사자의 87.9%를 차지한다. 이는 통계청이 2014년 전수조사한 수치로 이후 정확한 데이터는 나오지 않았다.

이 수치로 보면 한국의 경제는 대기업이 책임지고 있다는 말이 무색하다. 실제 일자리 창출이나 한국 경제의 근간은 중소기업이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중소기업의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다. 대기업에 치이고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여기에 경기 불황까지 장기화되면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한층 더 가중되고 있다.

중소기업 176곳 ‘도산 위기’

중소기업의 위기 상황은 각종 통계에서 확인되고 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중소기업(금융권 신용공여액 500억원 미만인 2035개사)을 대상으로 신용 위험을 평가한 결과 법원 기업 회생절차 대상 기업으로 분류된 기업(D등급)은 105곳으로 조사됐고 워크아웃 대상(C등급)은 71곳으로 나타났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이후 최대 규모다. 여기에 더해 중소기업 10곳 중 2곳은 벌어들인 영업이익으로 빌린 돈의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 상황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올해 3월 산업연구원이 최근 3년 동안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 정책을 받은 적이 있거나 받고 있는 한국의 제조업·벤처 분야 중소기업 1571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21.1%인 332개가 ‘경쟁력 위기 한계기업’인 것으로 집계됐다.

산업연구원은 중소기업 상당수가 비(非)외감사기업(외부 감사를 받지 않는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신뢰도 높은 재무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혁신형, 생산 중점형, 품목 다변화형, 단순 생산형, 경영 위기형 등으로 분류했다.

이 중 성장 가능성이 비교적 큰 혁신형·생산중점형·품목다변화형에 속한 기업 중 경쟁력 수준이 하위 30%에 해당하는 기업과 단순생산형·경영위기형 기업 중 하위 70% 기업을 ‘경쟁력 위기 한계기업’이라고 평가했다.

중소기업의 성장성도 최근 몇 년 동안 하향 곡선을 그려온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간한 ‘중소기업 지원 정책의 글로벌 패러다임 변화와 정책적 시사점’을 보면 상용노동자가 10명 이상인 기업 중 3년간 매출액 또는 상용노동자가 연평균 20% 이상 증가한 ‘고성장 기업’ 수는 2010년 2만3400개로 정점을 찍은 뒤 2011년 2만637개, 2012년 2만212개, 2013년 1만7439개, 2014년 1만6410개로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2010년 이후 4년 사이에 30%나 감소한 것이다.

지역 경제의 근간인 산업단지의 상황도 악화되고 있다. 입주 업체 수는 2011년 말 기준 4만5065개에서 2015년 말 기준 5만464개로 늘어났지만 수출 실적은 같은 기간 203억3600만 달러에서 148억300만 달러로 4분의 1 정도 감소했다.

중소기업은 금융권에서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유동성 부족에 시달린 중소기업들이 시중은행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가 늘면서 제2금융권으로 이동하는 ‘풍선효과’가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 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저축은행 대출액은 올해 2월 23조7791억원으로 전년 2월 20조6066억원보다 3조1725억원 늘었다. 이는 2015년 2월~2016년 2월 대출 증가액 2조3814억원보다 7911억원 증가한 수치다

대기업과 격차 심화…금융권서도 ‘찬밥’

반면 같은 기간 은행권의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전년에 비해 줄었다. 중소기업의 은행권 대출액은 지난해 2월부터 올 2월 사이 35조3160억원 늘어나는데 그쳐 전년 같은 기간 대출 증가액 51조5250억원보다 16조원 이상 감소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2014년 기준으로 중소 제조 기업 1곳당 부가가치 생산액은 1억900만원이다.

제조 대기업 1곳당 부가가치 생산액(3억3600만원)의 32.4%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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