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얼마전 문재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거꾸로 수십년래 최대의 일자리 감소와 소득 불균형을 초래한 원인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라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러니까 대통령과 참모들에게는 최저임금 인상을 필두로 한 소득주도 경제정책이 막연히 90%라는 놀라운 수치의 긍정적 효과를 보인 반면 다른 학자들이나 심지어 OECD 분석관에게는 1~4월 중에 도소매와 음식, 숙박업 고용이 16만명 줄었고, 임시직 일용직은 64만명이나 급감했다.

어떻게 동일한 객관적 사실을 가지고 양측은 이렇게 정반대의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필자는 얼마 전 과학적 진실도 사회적인 주관적 편견에 좌지우지 된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 속에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다. 세계 경제가 호황을 맞이하여 미국이나 일본은 일자리가 넘쳐나 사람이 부족한 실정인데 한국만 외롭게 일자리는 부족하고 실업이 넘쳐나며, 경기 후퇴의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고 있음에도 대통령은 “경제가 좋다”라고 한다. 대통령과 국민의 서 있는 입장이 그렇게 다른가보다.

이러한 소통 부재 현상을 이미 탄핵 당한 박근혜 대통령 시절에 우리 국민은 원 없이 경험해 본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민심 이탈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급기야 국가적 불행에 이르지 않았던가.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러한 소통 부재나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진 원인이 무엇일까.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기 위해 나는 프랑스의 사회과학자이며 물리학자 그리고 역사학자인 도미니크 페스트르의 분석에 기대어 본다. 페스트르 교수는 최근 몇 세기 동안의 지식의 역사를 4개의 시기로 구획 짓는 단순화를 감행한다. 이것은 물론 서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현대사는 이미 세계화 되어 있기에 우리의 현재를 살피는 데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16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기로서,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했던 식물들과 동물들을 발견하여 유럽으로 가져온 때이다. 하마가 최초로 파리에 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구경을 갈 정도였는데, 당시의 중심 과학은 자연의 역사가 된다. 또 다른 결정적인 지식은 실천적 수학 지식으로서, 이것은 대포와 전쟁의 기술에 결정적인 것이다. 이 시기의 마지막은 실험실의 과학들로서, 경험적이고 수학적 과학들에 의한 지식이다.

다음은 계몽의 시기로부터 1870년에 이르는 시기인데, 이때의 과학은 증기 기관, 석탄, 열차의 혁명으로 특징된다. 그로부터 열역학과 기계적 기술들의 발전이 이뤄진다.

3번째 체제는 187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데, 유럽 전쟁의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군대와 국가들이 과학의 재정적 후견인들이 되었고, 그들은 화학에서 전기 전자, 그리고 반도체에 이르는 수많은 지식들을 동원한다. 이 시기는 유기 화학, 미시물리학 (전자, 양자 역학 등), 비료를 통한 농업 현대화, 플라스틱, 약품의 산업화, 탄도 미사일의 시기이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부터 경제의 탈규범화와 연결된 4번째 시기가 열린다. 여기서는 비록 정부의 공공적인 재정 원조가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지식의 궤적을 결정짓는 자극들은 기술-산업 발전의 대형 회사들과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들로부터 온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국가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이 발전해 온 4차 산업 혁명의 대형 기업들을 보면 명백하다.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도식에 따르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는 경제와 산업의 발전에 있어서 국가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미 국가를 떠난 대형 IT 기업이나, 인터넷 기업, AI 개발 기업 등의 자유가 더 중요하다. 경제는 국가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다국적 기업 중심으로 재편된다는 말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뒤진 나라는 당연히 도태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업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려는 우리 정부의 간섭과 규제는 지금 거꾸로 가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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