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5월 25일 아침 조간 신문을 받거나 새벽 뉴스를 틀어본 한국 국민들은 아연할만한 소식에 충격을 금치 못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과 6.12 정상회담 안하겠다”고 선언해버린 것이다.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이 4월 27일 열린 후에 한국 국민들은 연이어 미북 정상회담까지 쭉 이어져 마침내 북한 핵이 영구 폐기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가 올까 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한 차에 미북 정상회담의 취소는 모처럼 찾아온 평화에 대한 기대를 통째로 날려버림과 동시에 역시 북한은 믿을만한 대화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불신을 더 확고히 해주었다. 북한의 실상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북한의 대화 참여가 위장 평화쇼가 아니었는가, 8번의 비핵화 약속을 어겼는데 9번째라고 특별한 무엇이 있겠는가에 대한 일각의 의구심을 깨끗이 말소해 주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시각도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젠 대칭형 핵무력을 갖추어야 하는가, 일본도 핵무장할까 합리적으로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아울러, 북한의 거짓 비핵화를 위해 우리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비용과 북한 핵을 짊어지고 가면서 주한미군 주둔비를 우리가 부담한다면 어느 것이 더 나을까도 냉철히 따져보아야 할 때다. 언제까지 북한의 민족주의 쇼에 간이고 쓸개고 내주면서 끌려다닐 수는 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트럼프의 선언이 김정은을 길들이기 위한 고도의 협상 전략이길 기대해본다.

그런데 북한의 핵무기 장사에 가려져 어영부영 간과하기 쉬운 것은 바로 우리 경제에 드리워진 암울한 그림자들이다. 지금 한국 경제는 핵폭탄에 버금갈만한 안팎의 시련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이 두 경제적 폭탄이 하필 동일자 신문의 1면에 북한 핵과 나란히 실려 있다.

우리 경제의 내적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소득주도 성장의 역설”로서, 정부가 서민들 살림살이를 더 나아지게 해준다며 최저 임금을 대폭 올렸지만 1분기 저소득층의 소득은 2003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래 역대 최대 폭으로 급락했고, 고소득층의 소득은 역대 최대 폭으로 급등했다. 상하위 가구의 소득 격차가 벌어지면서 빈부 격차 역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런 악순환이 단발성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필자가 근무하는 사무실은 고양시에 있는데, 주변에 10년이 넘게 그럭저럭 잘 해오던 마트가 며칠 후에 문을 닫는다고 한다. 30평 정도의 작은 마트이지만 종합 상품점이기에 5-6명의 직원이 부족하나 입에 풀칠이나마 하던 곳이었는데, 졸지에 모두 실업자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고용 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 유연성 제거 등의 충격을 버티지 못한 것은 역설적으로 한계선 상에서 저소득층을 고용하며 간당간당 버텨오던 중소기업들이었다. 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준다면서 저소득층의 일자리마저 박탈해버렸고, 근로자들에게 저녁이 있는 시간을 주겠다고 하면서, 오히려 그들에게서 생존권마저 뺏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렇게 문을 닫는 작은 식당이나 마트, 미용실 등이 앞으로 얼마나 쏟아질지 겁나지 않은 쪽은 우리 정부뿐일 것이다. 세금이면 모든 게 해결되니까...

외부에 의한 경제 폭탄은 역시 관세 폭탄이다. 철강 관세 폭탄으로 재미를 본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엔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 부과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85만대에 이르고, 이 85만대는 최근 폐쇄된 한국 GM 군산 공장 생산 가능량의 3배 규모다. 최악의 경우 국내 공장 3곳이 문닫는 정도의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자동차 산업은 한 브랜드당 5000여개 협력업체가 관여돼 있는 등 전후방 효과가 막대해 국내 175만개의 일자리를 책임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북핵 말고 이런 경제적 핵폭탄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언제나 웃고 있는 대통령의 얼굴에서 그러한 고민의 흔적이 안보이니 문제인 것이다. 북핵보다도 경제의 축소는 급격히 악성화되어 기업과 함께 국가 전체를 파멸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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