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환의 인문학 칼럼

중소기업투데이 하태환 논설위원
중소기업투데이 하태환 논설위원

며칠 전 작은 시골 마을에서 봤던 일이다. 하얀 진돗개 세 마리가 마을 중앙에 있는 조그만 구멍가게 앞 공터에서 커다란 세숫대야에 담긴 꿀꿀이죽을 사이좋게 나눠 먹고 있었다. 물론 목줄 같은 거추장스런 장식품은 달고 있지도 않았기에 인간의 손때가 덜 탄 줄로만 알았다. 이제 중견에 이른 새하얀 녀석들이 참 귀엽고도 순하게 보였다.

직후 잠시 눈을 돌려 울긋불긋 타들어가는 산골의 들과 낮은 산, 높은 구름을 완상하던 중 청정한 평화를 단숨에 찢어발기는 개들의 단말마 비명이 천지를 진동했다. 주인 영감이 개들의 뒷목을 움켜쥐고는 사정없이 더럽고 비좁은 플라스틱 소주 상자 속으로 쑤셔 넣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를 다리와 허리 목이 부러질 정도로 세차게 구겨 넣는데, 얼른 봐도 개들의 전체 부피가 소주 상자의 2배는 될 것 같은데 희한하게 세 마리 모두 차곡차곡 포개지며 한 덩어리로 뭉쳐졌다. 그리고 나서 영감은 두꺼운 합판으로 뚜껑을 덮은 다음 묵직한 돌덩어리를 올려 투옥을 완료하였다. 개들은 이제 저녁밥을 기다리며 죽은 자세로 긴 시간 동안 고통의 신음밖에는 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 고통스런 비명이 하도 처량하여 영감에게 “개들이 어디 못에라도 찔린 것 아니냐, 아니면 다리나 옆구리 뼈라도 부러지지 않았겠느냐”고 조용히 항의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정말 인간으로서 개들에게 너무 수치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개들 조상이 이런 장면을 보았다면, 이러자고 인간과 동반자라는 슬픈 계약을 맺었는가 통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후로 나는 개만 보면 뭔가 큰 빚을 진 느낌이다.

나는 보신탕을 혐오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즐기는 편도 아니다. 소나 돼지, 닭처럼 식용으로 사육한 개는 먹어도 상관없지 않느냐 하는 것이 평소의 나의 소신이었다. 그런데 개만도 못한 인간의 잔인성과 야만성을 목도한 이래로 가축의 식용에 대해 상당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얼마 지나면 다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리겠지만 말이다. 바로 이렇게 기억을 상실하는 것이 현대인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

요즈음은 신문이나 뉴스를 보기가 한편으로는 겁이 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짜증이 난다. 부모가 어린 자식을 죽이고, 패륜의 자식은 부모 형제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일 꼬리를 문다. 가족도, 친구도 없고, 동지도 없으며, 의리도 사랑도 없다.

이것을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하던가? 우리 사회는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완전히 바뀌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수천년의 1차 산업 사회가 붕괴되고, 그 폐허 위에 2차 산업과 3차 산업이 급속도로 이식되었다. 그리고 먹구름처럼 밀려오는 4차 산업의 전복적인 전망을 마주하고 있다. 우리가 막 시작한 2차 3차 산업 사회가 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도 전에 옛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미증유의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 동안에 우리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생산력의 비약할 만한 성장과 함께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했고, 세계가 부러워할 만한 경제 강국이 됐다. 자연과 공존하던 시대에서 자연이 철저히 배제된 인위적 기술의 시대로 이동한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나 도덕, 법률, 문화와 같은 상부구조는 명백히 생산력과 직업에 관한 하부구조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산업적 혼융 결과 현재 사회 속에는 각 단계의 산업과 결부된 의식과 문화 제도들이 뒤죽박죽 엉켜 있다. 개의 학대 장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의 결과일 따름이다.

이제 4차 산업 혁명이 닥치면 지금 우리가 겪었던 혼란은 오히려 인간적인 아우성으로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의식의 표면으로 떠오르지도 못할 것이다. 그 때는 이미 아득한 과거의 인간적인 기억은 존재하지도 않고 인공 지능적인 단편적 지식들만을 소유한 파편적 존재들이 되어 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핵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 인공지능의 공포가 임박했다. 누가 여기에 대처하고 준비하고 있는가?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 아닌가? 기계에게 자비를 기대해서 안 된다. 북한 핵에 대해 저항할 줄 모르는 우리 정부 덕에 개들의 모습 속에서 미래의 우리 국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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