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환 논설위원.
하태환 논설위원.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3번째 남북 정상회담을 가졌고, 그 결과를 ‘판문점 선언’이라는 장중한 표현으로 발표하였다. 현대는 공연의 시대라고 한다. 말하자면 쇼를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두 정상은 그럴듯한 평화 회담의 시나리오를 낭송했고, 지지자들이 노벨 평화상 감이라고 찬양할 만큼 훌륭하게 역할을 소화해 주었다. 그리고 그 대미는 무슨 뮌헨 선언이나 포츠담 선언, 아니면 독립 선언처럼 판문점 선언으로 명명하여, 엄청난 역사적 사건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수사학, 혹은 가공된 설레임이 봄날 낮술 냄새처럼 확 풍기도록 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이미 2007년 10.4 남북 정상회담 때 합의된 것의 재탕에 불과하니 안타깝다. 우리는 모처럼 조성된 대화와 평화 협력의 나른한 분위기에 찬물을 쏟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오히려 반대로 남북 관계를 풀어 줄 대화 국면이 조성되었으니 이대로 쭉 박차고 나가서 삼천리 방방골골에 자유와 평화의 함성이 메아리치길 학수고대한다. 다만, 원래 이 회담은 북한의 비핵화가 주된 의제라고 했는데, 결과는 북한의 비핵화가 아니라 엉뚱하게도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슬쩍 비껴가버렸다.

거기에 더해 찝찝한 것은, 남북 정상이 아무리 선의의 진짜 협력을 합의했다 해도, 미북 회담의 결과에 그 실현 가능성이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원론적인 것만 확인하고 구체적 실천 방안은 미북 정상회담이 끝나고 합의했더라면 진짜 평화와 협력의 장을 열었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대북 경제 협력은 유엔의 북한 제재가 풀리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음은 이미 잘 알려진 냉정한 사실이다.

아무튼 조만간에 열릴 미북 정상회담 이후에는 고대하던 남북 경협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실제로 남북 정상의 내심에는 북한의 비핵화보다는 남북경협이나 대북제재 해제가 훨씬 간절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합의문에는 북한 비핵화보다는 경협과 교류의 문제가 먼저 나오고 조항도 많이 들어 있다. 그 만큼 두 정상이 염불보다는 경협이라는 잿밥에 더 끌려 있었다는 말이다.

목하 우리 국민들은 모두가 이번 미북 회담이 잘 되길 바란다. 그것은 예상이라기보다는 그렇게 믿고 싶다고 하는 편이 더 맞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조금 섣부르긴 하지만 경의선과 동해선 철로 연결 공사를 위한 구체적 실현 방안이 마련되고 있는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리커창 중국 총리가 9일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신의주~중국’을 잇는 철도사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한국은 이제 섬의 상태를 벗어나 육로로 대륙과 교통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은 물류의 혁명을 가져와 한진해운 파산이나 조선업 쇠퇴의 피해를 충분히 만회해 줄 호기가 될 것이다.

물론 북한도 길을 터준 대가를 받는다면 그 부수입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과거 1차 남북 정상회담을 준비하면서, 김대중 전대통령은 남북 철로가 연결된다면 북한은 그 철길만 빌려주는 대가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까지 주장하였다. 조금은 과장되긴 했지만, 그만큼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그 시너지 효과가 크다는 말이다. 교통 하나만 가지고서도 그러할진대, 남한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과 자원이 힘을 합친다면 한반도는 단군 이래 가장 화려한 도약의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거기에 젊은 북한의 지도자 김정은이 진정 등소평과 같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북한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끌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가 등소평처럼 박정희의 개발 모델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남한의 진실한 도움을 받은 북한의 경제 도약은 분명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어쩌면 전방위적인 내부 분열과 규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기에 들어가기 시작한 남한 경제를 금방 앞지르게 될 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런 날이 올까 두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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