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중 달러 대비 환율 최대폭 하락, 사상 최악 무역적자 행진
우량 국고채 매도 폭탄 사태...
“자금유출, 해외투기세력 타깃, 앞날 극히 불투명”

최근 국내에서 열린 한 IT산업 관련 전시회장 전경으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최근 국내에서 열린 한 IT산업 관련 전시회장 전경.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주요국 중에서 유독 원화만 달러 대비 환율이 떨어지는 등 비정상적인 패턴을 보이고, 사상 최초로 14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며 외환 당국이 긴장한 움직임을 보이는 등 한국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최근 언론보도와 금융과 외환, 증시 전문가들의 분석을 종합해보면 세계적으로 달러가 약세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한국 원화만 큰 폭의 하락세를 이어가며 불안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에 비한 달러가치의 흐름을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26일 현재 101.80을 보이고 있다. 100보다 높기 때문에 일단은 안정세라곤 하지만, 지난해에 이른바 ‘킹(King) 달러’ 행진을 하며 106선까지 올라갔던 것에 비하면 많이 떨어진 수치다.

이에 세계 주요 6개국 통화(유로, 엔, 파운드, 위안, 스위스 프랑, 노르웨이 크로네)의 달러 대비 환율은 모두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원화는 정반대 흐름을 보이고 있다. 26일에도 전날보다 3원 하락한 1338원의 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1400원선을 보였던 지난해보다는 낮지만, 당시 세계적인 ‘킹 달러’ 추세를 감안하면, 이런 수준은 분명 이례적이란 분석이다.

변동성의 방향을 분석해보면 더욱 심각하다. 현재 국제금융시장에서 약세를 보이고 있는 달러의 절하율보다 원화가 떨어지는 속도가 2배에 달한다. 주요국 통화에 비해서도 큰 폭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마다 다소 다른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공통적으로 꼽는 것은 심각한 무역적자와 이로 인한 외환시장의 불안, 그리고 정치와 지정학적 불안 요인 등이다.

사상 최초로 14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달러가 줄줄 새어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증권가에서 나오고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해방 이후 최초라고 할 만큼 심각한 무역적자 속에 경상수지마저 계속 적자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그렇다보니 한ㆍ미 간 금리격차까지 겹쳐 자칫 대규모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현재 한ㆍ미 간 금리 격차는 역대 최고인 약 1.5%다. 다음 달엔 미 연준이 그나마 베이비 스텝(0.25%)을 예고하고 있다. 그럴 경우도 한․미 간 금리 격차는 1.75%로 벌어진다. “그렇게 되면 설마했던 자금유출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연합인포맥스’ 등 언론 보도에 따르면 21일엔 외국인이 하루 만에 국고채를 2조 원가량 팔아치우면서 국내 외환시장도 원화 절하가 가져올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자칫 원화 자산에 대한 투자 매력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절하 압력을 더욱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번에 매도한 국고채는 대부분 30년물의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성격이어서 더욱 주목되고 있다. 그 때문에 금융시장 참가자들은 전일 외국인의 국고채 2조 원 넘는 순매도를 계기로, 앞으로 국내에 투자한 외국인 자본의 유출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사태의 원인과 분석이다. 이에 대해 특히 정치적, 지정학적 리스크의 극대화를 꼽는 의견이 많다. 경제평론가 박 모씨는 “핵공격과 이에 대한 보복 가능성, 확장억제전략, 그리고 러시아, 중국과의 악화된 관계 등으로 그 어느때보다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진 상황”이라며 “이미 외환시장의 불안심리도 날로 증폭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 전문가들이 꼽는 큰 원인 중 하나가 ‘탈(脫)중국’ 리스크다. 우리 최대의 교역국이자, 수출 대상국이었던 중국이 한국측의 ‘탈중국’ 기류 이후 사실상 반도체 등의 수입원을 한국 대신 대만을 비롯한 제3국으로 돌린 것도 무역적자의 큰 원인이라 얘기다.

국내 전문가들이나 연구기관 등은 대체로 “중국측의 ‘리오픈’(엔데믹 전환) 이후에도 주로 서비스 중심으로 내수시장이 활성화되고, 한편으론 중국의 경제와 생산구조가 재편되면서 우리와 보완 관계가 아닌, 경쟁관계로 전환된 때문”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신중론”이란 지적이 많다. 이런 주장을 펴는 이들은 “현 정부 출범 당시 한 관계자의 ‘탈중국’ 발언이 있은 직후인 지난해 5월부터 갑자기 대중 무역이 적자로 돌아선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며 “중국의 구조적 변화와는 별개의 외교, 정치적 리스크가 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고 반박한다.

그런 시비와는 별개로 4월 하순 들어서 실제로 외환시장은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이창양 총재로 최근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 외환당국은 국민연금공단과 2023년말까지 350억달러 한도 내에서 외환스왑(FX Swap) 거래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해 두 기관은 외환스왑 협정을 맺은 바 있다. 유사시에 스왑거래를 통해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에 대응키로 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현정을 체결한 두 기관의 스왑거래 한도는 100억 달러였는데, 한도를 대폭 늘린 협정을 신규로 맺은 것이다. 이는 그 만큼 외환시장 상황이 불안함을 반영한 것이다.

그 동안 “문제 없다”고만 해오던 경제당국도 급기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선으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당국이 곧 외환시장에 개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지난해도 200억 달러의 개입으로 급한 불을 끈 적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보다 더욱 규모가 큰 개입이 될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금융시장 일각에선 현재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홍콩 시장을 노리는 국제 헤지펀드의 움직임도 주시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홍콩을 ‘먹잇감’으로 노리는 한편, 사실상 같은 위안화 경제권으로 보고 있는 한국의 경제상황 역시 그 후순위 타깃이 될 것이란 추측도 나돌고 있다. “만의 하나 그런 사태가 현실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게 일부 전문가들의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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