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기술은 우리의 ‘믿음’을 바꾸어놓고, ‘윤리’라는 골대의 위치를 예전과 다른 곳으로 옮겨놓고 있다.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만개한 지금 세상에선 더욱 그러하다. 기술이 윤리적 변화를 추동하는 가장 큰 동력이 되다보니, 옳고 그름에 대한 관념이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그 기준이 뒤집어지기도 한다. 어제의 도덕으론 통제는 물론, 이해도 안되고, 먹혀들지도 않는다. 우리 사회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사이버불링(cyberbullying)’도 그런 현상 가운데 하나다.

이는 폭력이나 모욕, 온라인 스토킹 등 사이버공간을 이용한 모든 다양한 괴롭힘 행위들을 포괄한 용어다. 지금과 같은 무제한 접속시대가 빚은 병리현상이라고 하겠다. 돌아보면 우리는 지금 끊임없이 접속되어 있어, 고독할 자유도 없는 상황에서 살고 있다.

사이버 공간을 통해 그 어느 시대보다 서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어, 지구 반대편 사람도 흡사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고독한 것도 아니요,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접속시대에서 하루 온종일 사이버 네트워크에서 누군가와 부대끼며 온갖 소음에 시달리고 있다. 소셜미디어에 무언가를 끊임없이 끄적이고 묻고 답하는 가운데, 만약 댓글 하나라도 잘못 달면, 직장을 잃고 경력을 망치거나, 온 세상에 신상이 털려 마녀사냥을 당할 수도 있다. 이처럼 지금 사이버 세상의 밑바탕엔 늘 분노와 혐오, 편견이 꿈틀거리고 있다.

디지털 공간에서 성별·장애·종교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표현하는 ‘디지털 혐오’가 일상화 돼있다. ‘언어폭력’이 기승을 떨고, 몰래카메라와 불법 영상물 유포는 이제 흔한 범죄가 되었다.

사이버폭력은 심리적 측면에서 피해자에게 불안, 우울, 스트레스를 발생시키며 심지어 자살로 이어질 수 있는 고통을 줄 수 있다. 개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고립감, 수치심, 무력감을 느껴 자존감을 떨어뜨리며,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마저 감행하게 한다.

더군다나 챗GPT와 같은 초지능형 AI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편향적이거나 차별적인 데이터에 의한 폐해가 더 커질 것도 같다. 아무리 편향된 콘텐츠를 학습하지 않도록 정제된 데이터를 사용한다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이물질’들이 끼어들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까지나 이대로 두고봐야 할까. 당연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윤리’의 골대가 시대에 따라 자주 바뀐다고 하여도, 한 시대가 납득하고 공감하는 선에 머물러야 할 것이다.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교육이든 범 사회적 캠페인을 통해서든 간에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이해하려 노력하는 풍토가 심어져야 한다.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일처럼 이해하고 느끼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다.

특히 원활한 사이버 소통이 일상화 돼야 할 것이다. 온라인과 디지털을 통해 문자와 사진, 동영상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원만히 상호작용하며 대인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관용과 소통 능력을 기르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것은 특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현장에서 강조돼야 할 것이다.

또한 중요한 것이 있다. ‘자아’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다. 자신의 장점이나 특징에 자부심이나 효능감을 느껴 자신을 인정하고 소중하게 대함으로써 긍정적 자아를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충동적인 감정과 욕구를 절제하고 조절할 수 있는 의지와 태도도 길러진다. 그러면 사이버공간의 갈등도 완화될 수 있고, 타인에 대한 공격본능도 수그러들 것이다. 물론, 청소년들의 경우 인터넷을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소양도 갖추게 된다.

소셜미디어가 난무하고, 인공지능과 각종 IT기술, 줄기세포 같은 과학기술이 극으로 치닫는 현실에서 이젠 그동안의 많은 규범들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러해도 희망은 있다. 본래 사람이란 웬만해선 대부분 친절하고 자상하며, 때로는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필사적으로 실행하려 한다. 그렇다면 극단적이고 불확실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일수록, 그런 본래의 모습을 좀더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보다 겸손한 태도와 타인을 덜 비난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미래 세대가 지금의 우리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도 더 따뜻해질 것이다. ‘사이버 불링’이 아닌 ‘사이버 어울림’의 세상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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