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아로 자라 당대의 가장 성공한 사업가가 된 코코 샤넬은 평생 ‘시기심’에 시달렸다. 1931년 그녀의 영향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샤넬은 폴 이리브를 만났다. 이리브는 삽화가이자 디자이너로 당시 커리어의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이리브는 여성을 유혹하는 데 선수였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그러나 몇 달 후 그는 샤넬을 낭비벽이 있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보이는 대로 흠을 잡아 샤넬을 괴롭혔다. 이리브의 시기심은 샤넬보다 한 수 위라고 할까. 그는 샤넬의 사생활까지 모든 것을 조종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외롭고 애인이 필요했던 샤넬은 인내하며 매달렸지만, 나중에 쓴 글에서는 이리브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점점 커지는 나의 명성이 그의 기울어지는 영광을 뒤덮고 있었다. 이리브는 나를 사랑했지만 남몰래 나를 파괴하고 싶어 하였다.”

그렇다. 사랑과 시기심은 그렇게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랑했던 연인 샤넬이 사회적으로 날로 성장하면서, 자신을 압도하는 듯한 모습에 폴 이리브는 사랑이나 연민보다는 시기심에 몸둘 바를 몰랐던 것이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는 인간이 주입한 내용보다 월등히 진화하여 인간의 감정을 읽고, 그 너머의 해결책까지 제시하는 AI로봇을 보고 경악을 넘어 질투심에 치를 떠는 주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마치 샤넬의 후원자로서 그를 뒷받침했던 폴 이리브의 처지와도 겹쳐지는 장면이다. 애초 인간은 AI와 로봇의 창조주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피조물’인 로봇이 정작 창조주인 자신을 뛰어넘는 식견과 지혜를 지니게 된다면 어떨까. 분명 영화 속에서 그렇듯이 로봇의 능력을 불안해하거나, 시기 질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챗봇, 혹은 챗GPT를 보니, 이젠 영화 속 설정이 실제 현실에서도 재현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앞에서 예로 든 영화는 당시엔 좀 엉뚱하다싶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을 예상한 것이다. 최근 등장한 GPT-3도 그런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GPT-3는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작문 시험에 악용할 만큼 언어능력도 탁월하다. 또 간단한 사칙연산은 물론, 간단한 문장만 주어지면 웹 코딩도 가능해서, 앞으로 IT업계 뿐만 아니라 코딩 교육 현장에서 많이 쓰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사람과의 ‘허심탄회’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GPT는 물론 아직은 100% 완성된 기술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이 묻는 말에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비윤리적 또는 반사회적 답변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GPT-3를 만든 미국의 오픈AI사 스스로가 논문을 통해 그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또 다른 기술의 필요성을 강조했을 정도다. ‘병주고 약준다’고만 생각하기에 앞서, ‘GPT 창조주’들의 충고를 귀담아 듣는게 좋겠다.

그러나 GPT-3는 그보다 더 결정적인 기술적 한계가 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추론’ 능력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들, 경험해보지 않은 것들을 미리 상상하고, 또 보지 않았지만 나름의 상상과 심증으로 어떤 결론을 내리는 것, 그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추론 능력이다. 오늘의 인류 문명이 있게한 원동력으로서, 인간만의 위대한 상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엊그제 보도를 보니, 마침내 GPT-4가 나왔다고 한다. 이는 GPT-3의 몇 배 혹은 몇 백 배의 능력을 가진 것으로 소개되고 있다. 언어처리와 연산, 상황 판단력 등을 좌우하는 ‘매개변수’의 숫자만 해도 GPT-3의 거의 100배에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면 과연 ‘추론’도 가능할까. ‘다행’인지 몰라도, 아직 그 정도는 아닌 것으로 안다. 다만 사용자가 말하거나 써낸 문장의 잘못된 구성을 바로 잡고, 피드백을 하는 고도의 검증 능력을 갖추고 있다. 말하자면 “잘못된 문장은 아니지만, 기왕이면 이런 문장으로 말하는게(쓰는게) 더 자연스러워요”라고 조언하는 수준이다.

더욱이 GPT-4에서 AI기술이 멈출 것 같진 않다. 앞으로도 GPT-5, GPT-6 등등이 연달아 등장할 것이 확실해보인다. 이미 GPT-4는 사용자의 말 몇 마디나 간단한 문장만 갖고, 그럴싸한 그림을 그려낸다.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말이나 문장에 숨어있는 감정까지 간파하고, 그것을 재구성한 결과물을 묘사하는 것이다. 심하게 말해서, 사람의 심리까지 파악한다는 얘기다.

만약 GPT-5, GPT-6 등으로 계속 진화하면 어떻게 될까. 필시 인간을 따라잡는 기계적 이성과 감성을 지닌 ‘괴물’이 탄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앞에서 본 영화처럼, 창조주이자 ‘감정의 동물’인 인간과 유사하거나, 인간과 필적할 만한 ‘감정을 가진 기계’로 행세할 것이라는 상상도 가능하다. 때에 따라선, 주인인 인간보다 더 섬세한 판단이나 감성적 대응을 함으로써 인간을 놀라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인간이 만든 소유물의 도발에 불안해하고, 시기심과 질투까지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마치 자신이 헌신했던 샤넬의 대성공을 시기 질투했던 폴 이리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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