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제위기 재현’ 우려에 사실상 선 그어
“전 금융계로 번진 당시와는 달리, 암호화폐 스타트업 생태계 국한”

실리콘밸리 은행 모습. (사진=블룸버그, 뉴욕타임즈)
실리콘밸리 은행 모습. [블룸버그, 뉴욕타임즈]

[중소기업투데이 조민혁 기자] 저명한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13일(현지시각) “현재의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때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선을 그어 눈길을 끈다. 미 월가나 국내 금융계 일각에서도 SVB사태가 ‘제2의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13일자(현지시각) ‘뉴욕타임즈’ 오피니언난을 통해 “경제 현장의 거의 모든 관찰자들이 동의한 한 가지가 있다면, 2023년 미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들이 지난 2008년 위기 때 직면했던 문제들과 매우 다르다는 것”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그는 “당시(2008년)엔 은행이 무너지고 수요가 급감한 상황이었던데 비해, 지금은 은행보다는 가용 공급에 비해 너무 많은 수요에 의해 움직이는 인플레이션 국면인 점이 큰 차이”라면서 특히 암호화폐 시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암호 숭배자(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금융 협정에 유인되어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흥망성쇠와 몇 가지 분명한 특징을 공유한다”면서 “그러나 세계 금융 시스템의 바닥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 무서운 (금융위기 당시) 상황들이 다시 반복될 것이라고 아무도 예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크루그먼은 “SVB는 리먼이 아니고 2023년은 2008년이 아니다”면서 “그런 금융 위기의 재발을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며, 정부가 이 상황을 안정시키기 위해 개입하고 있다.”고 했다. 다만 “납세자들의 돈(국가 예산)에 목을 매지 않을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과거처럼 공적 자금을 투자하진 않는다는 점도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현 SVB사태의 원인과 배경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실리콘 밸리 은행은 미국에서 가장 큰 금융 기관 중 하나가 아니었듯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실리콘 밸리 은행은 스스로를 ‘세계 혁신 경제의 은행’으로 묘사했고, 그 결과 대부분 투기성이 높은 기술 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하지만 사실은 스타트업들에게 대부분의 금융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크루크먼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기술(테크) 스타트업)들은 오히려 벤처 캐피털로부터 자금을 조달함으로써 현금이 넘쳐났기 때문에, SVB 대출은 많지 않았다”면서 “대신에, 현금 흐름은 반대 방향으로 흘러갔다”고 했다.

즉, 이들 테크 스타트업들은 주로 암호화폐 시장에서 번 돈을 SVB에 예치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에 “은행은 그 돈의 상당 부분을 지루하고 극도로 안전한 자산, 즉 미국 정부와 정부 지원 기관이 발행하는 장기 채권에 투자했다.”면서 “지난해까지 저금리 국면에서는 장기 채권은 보통 은행 예금을 포함한 단기 자산보다 높은 금리를 지불하기 때문에 한동안 돈을 벌었다.”고 그간의 정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SVB.의 전략은 두 가지 큰 위험에 노출돼 있었다”고 크루그먼은 짚었다.

그는 “첫째, 단기 금리가 오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반문하며, “SVB.의 수익이 의존하는 스프레드는 사라질 것이고, 장기 금리가 상승할 경우 신규 채권보다 낮은 이자를 지급한 SVB.의 채권의 시장 가치가 하락하여 큰 자본 손실이 발생헸다”고 돌이켰다.

이 대목에서 크루그먼이 지적하진 않았지만, 그 무렵 암호화폐 시장이 침체 국면에 접어들면서 수익이 줄어든 테크 스타트업들이 SVB로부터 예치금을 빼가는 경우가 빠르게 늘어났다. 이에 유동성 압박도 급속히 진행된 것이다.

크루그먼도 “적어도 한 명의 고객(암호화폐 업체)는 SVB에 무려 33억 달러나 에치하고 있었다”면서 “SVB의 고객들이 맡긴 거액은 사실상 예금 보험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 테크 스타트업들은 아직 은행이 살아있을 때 너도나도 돈을 인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크루그먼은 그러나 “SVB의 몰락은 아마도 큰 경제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며 “2008년에는 전체 자산 등급, 특히 모기지 지원 증권에 대한 무수히 많은 파생적인 판매가 남발되어 피해가 컸다”면서 “그러나 SVB의 투자 행태는 너무나 단순하고 고루한(장기채권 위주) 것이기에 또 다시 같은 종류의 사건이 생기진 않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그는 “테크 스타트업 등은 거액의 예치금을 조속히 회수하지 못함에 따라 사업이 중단할 수도 있는데, 이런 측면을 고려한 정부가 SVB의 모든 예금을 보장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미 연방정부는 애초 25만달러로 정했던 예금 보장 상한을 없애고, 거의 무제한으로 예치금 전액을 보장해주기로 했다.

크루그먼은 다만 “이것이 주주들을 구제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마 SVB는 정부에 의해 압류되었고, 그 자본은 소멸됐다”고 환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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