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스타트업 전문 은행들 줄줄이 파산, 가상자산 시장 직격타
스타트업 거래은행 ‘시그니처’ 긴급 폐쇄, 앞선 사례 같은 운명
BTC, 이더리움, 솔라나, 아발란지, 도지코인 등 대부분 줄줄이 폭락세
오랜 암호화폐 시장 침체가 원인…작년 FTX 사태와 연결된 ‘도미노 현상’

파산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실리콘밸리(SVB) 은행 창구에서 예금을 인출하고 있다.(사진=월스트리트 저널)
파산 소식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실리콘밸리(SVB) 은행 창구에서 예금을 인출하고 있다.[월스트리트 저널]

[중소기업투데이 조민혁 기자]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을 주고객으로 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이 11일 공식적으로 파산을 선언하고, 불과 이틀 뒤엔 또 다른 테크 스타트업 전문인 시그니처 은행도 폐쇄되는 등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암호화폐를 포함한 세계 금융시장이 또 다시 충격에 빠졌다.

특히 암호화폐 시장은 작년 가을 FTX 사태에 이어, 지난 달 실버게이트 은행, 그리고 이번 두 은행의 연이은 파산으로 전대미문의 공황상태를 맞고 있다. 최근의 사태는 지난 2일 미국 실버게이트 은행에서 비롯됐다. 이 은행은 지난해 터진 FTX 사태 여파로 닥친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채권을 발행했으나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이는 다시 SVB로 번져, 같은 패턴을 반복했다. SVB 역시 암호화폐 침체와 금리인상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 빠졌고, 출혈을 무릅쓰고 낮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암호화폐 업계 등 투자자와 고객들이 집단으로 예금인출을 하면서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이는 도미노처럼 확산되어, 역시 암호화폐 전문 은행인 뉴욕의 시그니처 은행에게도 같은 위기가 닥쳤고, 문을 닫게 한 것이다.

이번 위기로 당장 세계 금융시장의 큰 변동을 부를 가능성은 적으나, 암호화폐 시장은 직격타를 맞았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가 한때 20% 이상 급락하는 등 세계 코인시장이 또 다시 공포에 휩싸였다.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들, 스테이블코인 거래 중단

특히 스테이블 코인 업계의 타격이 컸다. 대표적인 업체인 ‘서클’의 USDC는 달러 연동 자금이 SVB에 묶여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1달러 대비 가격이 폭락을 거듭했다. 이에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등 세계 최대 암호화폐 기업들은 USDC 거래를 중단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업체인 서클이 USDC 중 SVB에 예치한 적립금(페깅) 금액을 공개하면서 이들 거래소들은 서둘러 사전 ‘불끄기’에 나선 것이다.

코인제코에 따르면 1달러로 고정되도록 설계된 USDC의 거래 가격은 금요일 밤 1달러에서 0.93달러로 하락하며 급락했다. USDC가 이 수준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19년 5월, 사상 최저치인 0.89달러를 기록한 이후 처음이다.

가상자산 사이트 코인제코 등 전문매체와 유력외신들은 “실버게이트 은행의 붕괴의 여파를 채 수습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SIVB 사태가 터졌다”고 진단했다.

주로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 내지 암호화폐 거래소들과의 거래에 주력해온 SVB의 파산은 그 규모만 보면 미 금융계 사상 두 번째로 꼽힐 만큼 충격파가 크다.

이번 SVB파산 역시 실버게이트 사태로 최근 3주 연속 이어져온 암호화폐 시장의 폭락이 직접적인 원인이다. 앞서 암호화폐 은행 실버게이트의 몰락으로 시장이 폭락하면서, 모든 암호화폐의 시가총액이 다시 1조 달러 아래로 떨어지며, 너도나도 ‘팔자’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에 지난 주 이미 SVB에 대한 우려가 소문을 타고 유포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실버게이트가 먼저 문을 닫고 나서, 지난 8일(현지시각)쯤부터 SVB도 위험하다는 불길한 소문이 월가에 나돌았다. 가상자산시장 침체 등으로 채무를 감당할 유동성 조달에 실패, 인수자를 모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주가가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 시점부터 다수의 벤처캐피털 펀드들이 고객들에게 “SIVB로부터 자금을 인출할 것”을 권고했고, 이에 따라 다음 날인 9일엔 420억 달러의 무더기 자금이 인출되면서 은행에 비상이 걸렸다. 이에 10일 아침, 나스닥은 SVB 주식의 거래를 중단했다.

캘리포니아 금융보호국도 이날 은행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다. 암호화폐 사이트 디크립트는 “10일 이 은행 폐쇄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워싱턴 뮤추얼’의 파산 이후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으로 기록되었다”면서 “SVB는 지난 분기에 2120억 달러의 자산을 보고했다”고 충격을 전했다.

벤처캐피탈, 암호화폐 업계에 '직격타'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곳은 벤처 캐피털 회사와 기술 스타트업들이었다. 그러나 이 은행과 거래하던 수많은 암호화폐 회사들도 직격타를 맞으면서, 폭락 사태가 이어졌다. 사실상 모든 주요 암호화폐가 주말에 두 자릿수의 비율로 하락했다.

코인게코 가격 사이트에 따르면 비트코인(BTC)은 10.5% 하락해 11일 20,055달러를 기록하며, 2만 달러 지지선에 바짝 다가섰다. 시가총액 세계 2위 암호화폐 이더리움(ETH)도 지난 7일 동안 9.5% 하락했으며 주말에는 약 1,425달러까지 떨어졌다. 이 밖에 폴리곤(MATIC), 폴카도트(DOT), 시바이누(SHIB), 아발란치(AVAX), 유니스프(UNI), 체인링크, 파일코인(FIL), OKB, 솔라나, 도지코인(DOGE) 등 거의 예외없이 모든 암호화폐가 하락을 거듭했다.

그런 가운데, 블록파이, 서클, 애벌랜치, 유가랩스, 프로푸 등이 가장 피해를 많이 본 곳들이다. 이들은 SVB에 거금을 예치하며 거래를 해온 업체들이다.

그 중 암호화폐 대출 기업인 블록파이는 이미 지난 11월 FTX의 파산을 계기로 파산 신청을 한 상태다. 이 회사는 SVB에 아직도 2억2700만 달러의 자금을 예치하고 있다. 이들 펀드는 머니마켓 뮤추얼펀드에 속해 있어 연방예금보험위원회(FDIC)의 보험에도 가입돼 있지 않아 파산법 위반 소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2위 스테이블코인 USDC 발행업체인 서클(Circle)은 USDC를 지원하고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연동하는 데 필요한 현금 일부가 SIVB에 예치되어 있다고 밝혔다. 앞서 파산선고를 한 암호화폐 거래 은행인 실버게이트와는 지난 주 관계를 끊었다. 다만 “SIVB는 본사가 USDC의 연동 자금을 관리하기 위해 의존하는 6개 은행 중 하나일 뿐이어서, USDC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암호화폐에 주력해온 벤처캐피털 판테라에 대한 시장의 불안감도 높아가고 있다. “이 회사는 SVB에 대해 알 수 없는 규모의 자금을 예치해둘 수 있다”는게 코인베이스의 추측이다. 판테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암호화폐 전문 VC 기업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지난해에만 블록체인 기반 프로젝트에만 초점을 맞춘 펀드를 위해 13억 달러를 모금했다. 그래서 만약 SIVB와의 예치 규모에 따라선 시장에 큰 충격파를 던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아발란치 블록체인을 출시한 아발란치 재단은 10일 “실리콘밸리 은행에 대한 거래 금액이 160만 달러를 조금 넘는다”고 발표했다. 아발란체의 네이티브 토큰 아박스(AVAX)는 현재 시가총액 48억4000만 달러를 넘는다. 이에 블룸버그 통신은 “최근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아발란치 재단이 실버게이트에 대한 노출(묶인 돈)이 없거나, 이 회사가 밝힌 것처럼 작은 규모에 그치질 바란다”고 희망섞인 기대를 표하기도 했다.

유명한 NFT 컬렉션 BAYC(Bored Ape Yattach Club)를 출시한 유가랩스도 SIVB에 노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10일 코인베이스는 “정확히 얼마인지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파산한 은행에 많은 액수가 묶여있는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NFT의 선두주자인 프루프(Proof)도 큰 타격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그 피해 규모나 묶여있는 돈이 어느 정도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스타트업인 노바랩스도 10일 뒤늦게 SIVB로 인한 피해사실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탈중앙화 네트워크 및 인터넷 제공업체 헬륨의 자매 스타트업이다.

그런 가운데 ‘시그니처’ 은행도 갑자기 폐쇄

이에 일부 벤처캐피털이나 암호화폐 업체들은 자사의 피해를 축소시키거나, 애써 “무관함”을 강조하는 모습도 이어졌다. 세계 최대 스테이블코인인 USDT의 테더는 “SIVB와는 무관하다”고 서둘러 밝혔다. 이 회사의 USDT의 시가총액은 723억8000만 달러다.

솔라나 블록체인 역시 “솔라나랩스와 솔라나 재단 모두 SIVB에 노출되거나, 투자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이더리움 스케일링 솔루션 ‘폴리곤’의 자매회사이 폴리곤 랩스, 신흥 NFT 거래소인 블러, 암호화폐 대출 플랫폼인 레든, 암호화폐 지갑 팬텀, NFT 컬렉션인 데고즈, Y00ts 출시업체인 디랩스 등도 서둘러 “SIVB와는 무관함”을 밝히며, 고객과 시장을 안심시키려 진땀을 빼고 있다.

그런 가운데 13일엔 역시 암호화폐업체를 비롯한 스타트업 전문인 뉴욕의 시그니처 은행도 갑작스레 영업을 중단,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역시 실버게이트나, SVB와 거의 흡사한 전철을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암호화폐 전문은행들은 무엇보다 가상자산 시장의 흐름에 가장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침체에서 비롯된 일련의 과정이 같을 수 밖에 없다.

미 백악관과 규제 당국도 서둘러 나섰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일단 25만달러 이하의 모든 예금 고객들에게는 빠른 시일에 원금을 보장할 것”이라며 “다만 공적자금 투여 등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월요일 미 의회에서 “암호화폐 시장 사기성이 농후하고 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금융기관들이 이 시장과 거래할 때는 ‘엄청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번 사태로 인해 의회 일각에선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본격적인 규제 움직임이 일것으로 보인다. 특히 USDC의 투명성과 안정성, 그리고 암호화폐 전반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이에 상응한 법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9월 FTX사태에서 촉발된 후 실버게이트와 SVB, 시그니처로 이어진 사태가 어디까지 확산될 것인지, 또 암호화폐 시장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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