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생산시설에 보조금, 그러나 ‘초과이익 공유·중국 내 투자제한’
회계장부 요구권 “보조금 빌미 영업기밀 탈취” 의심
삼성·SK하이닉스 등 ‘진퇴양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사업 전략을 점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삼성전자 천안캠퍼스를 찾아 패키지 라인을 둘러보고 있다. [삼성전자]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미국 상무부가 반도체지원법('칩스법')에 따른 보조금 신청절차 및 심사기준을 발표하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보조금 지원 조건을 충족하려면 아예 중국과의 관계를 단절해야 하는 등 진퇴양난의 처지에 몰린 것이다. 그래서 업계 일각에선 “차라리 받지 않는게 낫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러나 경제와 교역 수준을 뛰어넘는 차원의 한·미관계를 고려하면,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술 더 떠 해당 기업이 일정한 기준을 넘는 지원을 받을 경우, 미국 측과 이익을 나눠갖는다는 ‘초과이익 공유제도’를 도입하고, 중국에 대한 투자를 전면 제한하는 등의 조건을 붙이고 있어, 그야말로 ‘족쇄’라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앞서 지난달 28일 미국 상무부는 칩스법을 시행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을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기업들에 대해선 모두 39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러나 보조금 지원에 붙는 조건이 문제다. 미 상무부는 보조금을 지원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경제·국가 안보 ▲상업적 타당성 ▲재무상태 ▲투자이행 역량 ▲인력개발 ▲그 외 미래투자 약속, 미국산 철강활용 여부, 자사주 매입제한 등을 검토할 예정이다.

특히 1억 5000만달러 이상 지원받는 기업은 이익이 전망치를 초과할 때 미국 정부와 초과분 일부를 공유해야 하는 조항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으로 꼽히고 있다. 또 칩스법이 미국의 경제·안보를 최우선시 하는 만큼 자국에 군사용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것을 권장했다.

미 상무부는 또 해당 기업이 중국 등 ‘우려국’(사실상 적성국)과 공동 연구나, 기술 개발 등을 라이선스를 진행할 경우 지원금 전액을 회수하기로 했다. 또 중국 등의 ‘우려국’에서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생산능력을 더 이상 늘리지 않아야 한다고 조건을 붙였다. 사실상 더 이상의 대중국 투자를 중단시키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이들의 반도체 매출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웃돈다. 생산량으로 따지면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의 40%를, SK하이닉스는 D램 중 절반 가량을 중국에서 만든다.

그래서 “지원이라기보단, 대(對)중국 견제를 위한 제재라고 해야 옳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에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서둘러 ‘탈중국’ 전략을 실현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까운 시일에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보조금을 빌미로 한국 등 반도체 선두기업들의 영업기밀을 탈취하는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기업들은 미 정부가 회계장부를 요구할 경우 반드시 이에 응해야 할 것이며, 어떤 예외도 없다”고 했다. 겉으론 미국 내에서 지속 가능한 경영을 할 능력을 보겠다는 뜻이지만, 그 과정에서 사실상 장부를 통해 드러난 거래 생태계 등 영업기밀을 탈취하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지적이다.

그럴 경우 비단 이들 대기업뿐 아니라, 반도체 제조와 관련된 국내 중소기업들도 덩달아 ‘족쇄’를 찰 수 밖에 없다는 우려다. 반도체 부품과 연관공정 등 관련 중소기업들의 네트워크를 미국 측에 고스란히 노출할 수 밖에 없다.

이에 업계와 전문가들은 “이는 지원정책이 아니라 한국 반도체 산업에 재갈을 물리는 조치”라며 날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은 “초과이익을 공유하라는 것은 사실상 준조세까지 내는 이중과세에 해당한다”거나, “과연 미국이 우리의 최대 우방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정부는 물밑 협상을 통해 미국측의 이런 요구에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애초 지난해 ‘IRA’법과 반도체법이 미 의회와 행정부에 발의될 때부터 사전에 적극 대응하지 못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그런 가운데 미 상무부는 중국 등 ‘우려국’과 우리나라의 교역에 좀더 구체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드레일 조항에 대한 세부 규정을 곧 발표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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