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공급망 재편과 리쇼어링, 중국산 수입금지 등 對中견제 날로 심화
美 제조기업들 ‘탈중국’ 시작…한국기업도 對美수출 위해 따라야 하는 신세
“그러나 국내 리쇼어링 어렵고, 중국대체 생산기지 찾을 수 없어” 고심

중국 선천에서 열린 '선천 하이테크 페어 2022' 박람회장 전경.
중국 선천에서 열린 '선천 하이테크 페어 2022' 박람회장 전경.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미∙중 갈등이 깊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이에 우리 기업들도 대미 수출과 탈중국 동참 여부를 둘러싸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최근 미국기업들은 자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리쇼어링, 또는 가까운 북미 지역 혹은 우방국가로 이전하는 니어쇼링 혹은 프렌드쇼어링을 두고 저울질하고 있다. 골드만삭스 그룹은 지난해 10월 말 한 보고서를 통해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장기적인 트렌드로 단정짓기는 아직 시기상조”라면서도 “2022년 한해는 리쇼어링을 계획한 미국 제조기업이 증가한 시기”라고 밝혀 이같은 흐름을 뒷받침했다.

대미수출 위해선 ‘탈중국’ 해야 하는 처지

문제는 이런 흐름이 미국 기업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점이다. 용인시에 본사를 두고 중국 현지에 공장을 둔 P사도 그런 이유로 고심하고 있는 사례 중 하나다.

이 회사는 중국 공장에서 LED칩을 생산해 국내 대기업에 납품하거나,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 관계자는 “‘인플레감축법’이니 ‘반도체지원법’이니 하는 미국 현지의 공기가 요즘 심상찮다”면서 “회사측은 이런 식이라면 (중국) 광조우 공장 물량을 줄이거나, 심하면 철수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자칫 미국의 대중 견제로 인해 대미 수출에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미국과 교역하는 국내 대기업에 대한 납품 물량까지 끊길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의 생산시설을 쉽게 이전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벌써 10여 년 전부터 대부분의 생산시설을 중국 현지로 옮긴데다, 막상 인건비나 숙련도를 생각하면 리쇼어링도 쉽지 않고, 동남아로 옮기는 건 더욱 만만찮은 일”이라고 했다.

P사의 사례는 결코 특수한 경우가 아니다. 직․간접적으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거나, 대미 수출 기업에 납품하는 국내 중소 제조업체들 대부분이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우리기업들, 베트남 등 동남아도 중국보단 못해

대한무역진흥공사(코트라)는 “미국은 일부 중국산 품목을 대상으로 추가로 관세를 부과하거나,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등 연속적인 제재 조치에 나서고 있다”며 미국이 대중 견제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

최근 자사의 ‘뉴욕 무역관’이나, 골드만 삭스, 딜로이트 등 시장분석기관, 유력 외신 등의 자료를 통해 이 문제를 분석한 코트라는 “특히 우리 기업들도 중국의 성장 둔화와 함께, 중국 소비자들의 국내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지는 현상 등으로 ‘탈중국’을 고려하고 있긴 하다”면서 이같이 진단했다.

코트라는 그러나 “탈중국은 우리 기업들에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 “낮은 인건비에 비해선 꽤 숙련된 기술자, 제조 인프라, 그리고 14억에 달하는 대규모 소비 시장은 우리로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큰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뿐 아니라 대미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우리 기업으로선 그야말로 ‘진퇴양난’의 선택지를 떠안은 셈이다.

그런 가운데 앞서 골드만 삭스가 진단했듯이, 2022년 들어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니어쇼어링∙프렌드쇼어링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핵심 품목의 공급망을 중국으로부터 이전해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생산기지 이전을 통해 공급망 탄력성을 향상하려는 노력이 미국 내에선 확대되고 있다. 컨설팅 기업 딜로이트가 지난 1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제조 기업의 62%가 “생산 능력을 리쇼어링 혹은 니어쇼어링을 하기 시작했다”고 응답할 정도다.

딜로이트는 “덕분에 2022년에는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으로 미국 내 일자리가 35만 개 가까이 창출되었는데, 전년도인 2021년에 비해 25% 늘어난 수치”라며 “이러한 변화는 2025년까지 미국으로 수입되는 아시아발 비중을 20%, 2030년까지 40% 감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즉, 중국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물량이 3년 후엔 20%, 7년 후엔 40%나 감소될 것이란 얘기다. 그런 현상이 가시화되면 우리 기업으로선 대미 수출에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미국 기업에게도 ‘엑소더스 차이나’ 쉽지 않아

그럼에도 당장은 섣불리 ‘탈중국’을 결행할 수 없는게 현실이다. 특히 저임금과 상대적 고숙련도, 근거리에 의한 물류비 절감 등으로 인해 대중 아웃소싱을 많이 선택한 국내 중소제조업체들로선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가 적다.

코트라도 “미국 기업들은 생산기지를 둘 경우 정치적 문제와 함께 통상∙외교 리스크가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그간 고민해오던 공급망 재편을 실행에 옮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 기업들의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즉 공급망 재편에 드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 세계 최대 소비시장이자 노동력과 제조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중국을 떠나는 것이 과연 실효성 있는 선택인가를 두고 기업들의 고민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 등 해외 기업들의 ‘엑소더스 차이나’도 결코 쉽지는 않다는 지적이다. 미국 기업은 물론, 유럽과 일본 기업들도 탈중국을 고심하고 있긴 하다.

‘이코노미스트’는 “애플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인건비가 저렴하고 제조 환경이 갖추어진 베트남과 인도 또는 그 보다 못하지만 임금이 싼 방글라데시 등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생산 단가가 저렴할 뿐 아니라 세계 최대 소비 시장이라는 매력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쉽게 탈중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1인단 소득이 늘어나 14억 중국 인구는 현재 전 세계 의류 판매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보석과 핸드백 판매의 3분의 1, 자동차 판매의 5분의 2를 차지한다. 또 ‘세계의 공장’ 답게 기계류와 화학, 건설 관련 분야의 재료와 소재, 반제품 등의 초대형 바이어이기도 하다.

이에 ‘파이낸셜타임스’는 과연 중국을 대체할 만한 현실적인 대안이 실제 존재하는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회사는 “애플부터가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한다.

이 신문에 따르면 애플의 경우 그 거대한 하드웨어를 제조하는데 투입되는 인력은 150만 명에 달하는데, 그만한 애플 기기 생산 수요를 따라갈 수 있는 생산직 노동자 규모 면에서 고려할 만한 국가가 많지 않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꼽았다.

그렇다고 베트남을 선택할 경우 중국보다 생산직 근로자가 적다는게 문제다. 또 인구 면에서는 인도를 고려할 수 있으나, 숙련도나 인프라 측면에선 중국과 비교하기는 힘들다는 지적이다.

경제주간지 배론스(Barron’s)의 코멘터리 섹션과 인터뷰한 UCLA 앤더슨경영대학원 크리스토퍼 탕 교수와 ‘인라인 트랜스레이션 서비스’의 리차드 페이즐로 매니징 디렉터는 “미국이 정책적으로 리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을 유도하고 있지만, 미국의 높은 인건비가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또 첨단기술을 활용한 자동화가 높은 인건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일부 노조가 로봇 도입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바이든 행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환경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고, ‘공급망 탄력성’이 기업 경영 평가에 반영되지 않는 점, 리쇼어링을 장려하거나 최소한 오프쇼어링을 억제할 수 있는 강력한 세금 인센티브 정책의 부재 등도 장애 요인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탈중국’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미국 기업들조차 말처럼 탈중국을 당장 실행하기엔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미국기업을 비롯해 서방 진영의 기업들의 ‘탈중국’은 시기가 문제일뿐, 이제 대세가 되고 있다”는데 이의를 다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의 제조업체인 A기업 관계자는 코트라 뉴욕무역관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팬데믹과 미국의 정책적 공급망 재편 전략으로 지난 2년간 업계 전반에 큰 변화가 있었다”며 “미국의 정책 변화와 국제정세, 미∙중 관계 등 우리 기업이 살피고 전략 수립에 반영해야 할 요소들이 다양하고 복잡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 기업의 리쇼어링이 장기적 추세로 갈지 여부와 공급망 재편이 불러올 변화 등도 수출 기업 입장에서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라고 신중한 대처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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