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실적 속 연체율 증가
금융당국, 금리인하·특별대손준비금 압박
윤 대통령 “은행=공공재, 지배구조 선진화” 주문
‘관치금융’ vs ‘금융개혁’, 그릇된 관행 지속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3년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지난해 사상 최고의 실적을 기록한 은행권이 애써 ‘표정 관리’에 나선 가운데 연초부터 시작된 금융당국의 금리 인하, 특별 대손준비금 적립 압박 등 ‘은행권 길들이기’ 움직임에 직면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까지 지배구조 개혁 등 금융개혁을 강조하면서 각 금융그룹은 물론 시중은행들은 이 같은 ‘삼각파도’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사상 최대 실적에 입각, 은행권이 연초부터 주장했던 배당 확대 등 주주 환원 정책 강화로 주가를 끌어올리려 했던 시도에 일정 부분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금융지주, 사상 최대 순이익·이자 수익 기록

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추산 결과,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합계 순이익 예상치는 16조5000억원으로, 2021년(14조5000억원)보다 13.5%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비용과 여타 사업이익을 포함시킨 것이 순이익이다.

이는 지난해 ‘빅스텝(한번에 기준금리 0.5%p 인상)’ 2번을 포함, 기준금리를 2.5%나 올린 데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이자 수익은 65조9566억원으로 추산됐다. 전년(50조6973억원) 대비 무려 30.1%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금융사별로는 KB금융지주가 19조1422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신한금융지주 18조245억원, 하나금융지주는 14조8166억원, 우리금융지주는 13조9733억원의 이자 수익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배당금도 대폭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 지난해 코로나19 방역정책과 연속된 금융지원으로 배당성향이 줄어들며 기업가치가 감소한 만큼 배당성향을 높여야 한다는 게 금융지주들의 의지다. 신한지주는 지난 1월 2일 열린 경영포럼에서 자본비율 12% 초과분을 주주들에게 무조건 돌리는 것을 원칙으로 천명한 바 있다.

지난해 배당성향을 보면 대개 25% 안팎이다. KB금융 26%, 하나금융 25.6%, 우리금융 25.3%, 신한지주 25.2% 등 크게 차이는 없다. 올해 금융지주들은 1년에 1회 실시 배당금을 반기 또는 분기로 분할하고 배당성향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배당성향만 유지해도 올해 4대 금융지주 배당금은 4조2407억원에 상당할 것으로 금융권은 추산하고 있다.

금융당국, 이자 인하·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압박

이를 두고 금융당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 1월 13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은행은 가산금리 등 부분에서 조정할 수 있는 재량이 있다”며 "특히 은행은 지난해 순이자이익 등 어느 정도 여력이 생겼다. 과도한 대출금리 상승으로 가계·기업의 부담이 크다는 점을 살펴야 한다” 말했다. 에둘러 말하는 것 같지만 대놓고 대출금리 인하를 주문한 모양새다.

이 원장의 압박에 은행들은 줄줄이 즉각 대출금리 인하계획을 내놓았다. 지난달 20일 NH농협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8%p 내렸다. KB국민은행도 주담대와 전세자금 대출 금리를 각각 최대 1%p 인하했다. 이런 식으로 5대 시중은행은 지난달 가계대출 금리를 줄줄이 내렸고, 주택담보대출 금리 상단은 연초 연 8%대에서 이제 6%대까지 떨어졌다. 결국 은행들이 알아서 ‘풀’처럼 누운 것이다.

올 상반기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이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도 은행권에게 부담이다. 지난달 26일 금융위원회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 신설을 포함한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을 추진한다고 공표했다.

코로나19로 일시 ‘잠수’하고 있던 가계·기업 대출의 연체율이 상승하고 있는 데다 수년째 금융당국과 금융회사들이 우려했던 대출부실이 가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코로나19 이후 대출만기 연장 등의 효과로 대출 규모가 늘어나고 있으나 연체율은 오히려 하락하고 있는 상황을 비정상으로 봤다. 예견한 것처럼 금리인상, 경기침체에다 금융지원 등이 마무리되면서 연체율은 예상보다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 및 기업 대출 연체율 평균은 3개월 전인 9월 대비 모두 상승했다. 5대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평균은 12월 0.28%로, 9월(0.23%) 대비 0.05%P 올랐다.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9월 0.18%에서 12월 0.24%로 0.06%P 늘어났다. 대기업 대출 역시 동 기간 0.01%에서 0.02%로 소폭 증가했다.

가계대출 연체율 추세도 도긴개긴이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연체율 평균은 지난해 9월 0.16%에서 12월 0.19%로 0.03%p 상승했다. 주택담보대출이 같은 기간 0.12%에서 0.15%로 0.03%p, 신용대출은 0.24%에서 0.28%로 0.04%p 각각 올랐다.

특히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9월부터 상승하더니 12월에는 0.24%까지 올랐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역시 1월 0.23%에서 12월 0.28%로 뛰었다.

금융위는 개정안에 따라 ‘은행의 예상 손실보다 대손충당금·대손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은행에 대손준비금을 추가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금융위는 최근 개선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대손충당금 적립률(대손충당금/부실채권)·부실채권 비율(부실채권/총여신) 등이 코로나19 지원 조치에 따른 ‘착시 효과’일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이 같은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을 들고 나온 것이다.

우선 금융당국은 대손충당금 및 대손준비금 수준의 적정성을 평가한 뒤,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추가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새롭게 만들기로 했다. 금융위가 은행권에 요구하는 특별대손준비금은 대손준비금과 같이 자본으로 인정은 되지만 배당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의 배당 확대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게 된 것이다.

한편 이날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예상 손실 전망 모형을 매년 주기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은행은 매년 독립적인 조직을 통해 예상 손실 전망과 관련한 적정성을 점검하고 그 결과를 금융감독원에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점검 결과가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개선 요구 등 필요한 조처를 할 수 있다.

금융위는 이 같은 규정 변경 예고를 시작으로 개정을 신속히 추진할 계획으로 오는 3~5월 규제개혁위원회·법제처 심사를 거쳐 올해 상반기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윤 대통령 “은행은 공공재” 강조

특별대손준비금 적립과 관련,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7일 대통령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에서 “부실이 금융권에 전이되는 일이 없도록 손실 흡수 능력을 제고하고 일시적인 어려움이 있는 금융사에 대해 선제적으로 유동성과 자본 확충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감독 당국 입장에선 배당보다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갖췄는지 보는 게 우선이며, 금융위가 첫 번째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며 “배당금은 부차적인 문제”라고 단언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고, 국가 재정시스템의 기초”라며 “민간 은행에 손실이 발생하고 문제가 생기면 결국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완전 사기업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일정 부분의 공공재라는 점을 모두 함께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금융회사를 포함해 소유권이 분산된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선진화될 필요성이 있다”며 “보다 투명하고 공정한 지배구조를 제도적으로 마련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보다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했다. 결국 공공재 부문을 강조하면서 은행의 인식 전환을 주문하는 한편 더 나아가 CEO 선출 등 공정한 지배구조를 내세워 은행권의 근본까지 건드린 것이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의지를 등에 업고, 금융당국의 행보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법 개정을 통해 불투명한 금융사의 인사시스템과 성과 보수체계를 대대적으로 수술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금융당국은 더욱 강력한 조치와 조기 실시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이참에 중대금융사고 발생 시 CEO를 직접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하는 한편 건전성을 더욱 강화할 수 있도록 특별대손준비금도 도입 중이라 금융권이 느끼는 압박 강도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 뻔하다.

금융권, 특히 은행권에서는 과도한 공공성 강조를 우려한다. 시장 자율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은행은 한국은행에서 발행하는 통화를 유통하고, 정부로부터 라이센스를 받는 곳이므로 공공재가 맞다”면서도 “하지만 공공재라는 개념과 관련해 금융사 주주들이 부담스러워할 가능성이 높을 뿐 아니라 현금배당 강화라는 시장적 추세를 거스르는 움직임은 자칫 관치금융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는 “하루 이틀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라며 “금융당국은 늘 금융개혁을 외치고, 금융권은 속으로는 욕하면서도 순치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고 했다. 그는 또 “이처럼 금융당국은 개혁을 빌미로 금융권에게 ‘목줄’을 걸고 있고, 금융권은 겉으로는 가끔 불평을 하지만 관치금융에 못이기는 척 이끌리면서 짭짤한 이익을 챙기는 게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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