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원장, 전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자영업이 살아야 한국경제가 산다'(아이비라인) 저자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카이스트 대학원 금융공학 석·박사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원장
권순우 한국자영업연구원 원장

2022년 한해는 자영업계에 어떤 해로 기록될까? 아마도 코로나19 팬데믹의 끝자락에서 여전히 험난했던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코로나19의 충격이 많이 가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코로나 팬데믹 이전 상황으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팬데믹이 자영업에 남긴 상처는 너무나도 컸다. 1000조 원이 넘는 자영업 금융부채 규모가 코로나 팬데믹이 남긴 상처의 크기를 대변한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3년 만에 빚이 300조 원 넘게 크게 늘어나 버린 것이다. 한참의 세월이 지난 후에 되돌아보면 지금 시대는 자영업이라는 나무에 검고 굵직한 나이테가 선명하게 새겨진 시대로 기록될 것이다.

한국경제 역사상 이런 정도의 위기는 1997년 덮쳤던 외환위기에 비견할 만 하다. 외환위기가 기업의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임금근로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고 한다면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은 자영업자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는 점에서 대비가 된다.

외환위기의 깊은 상처를 입은 임금근로자들은 외환위기에서 벗어나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기가 끝났으니 위기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을까? 아니 그러지 못했다. 노동시장은 이미 외환위기 이전의 그 노동시장이 아니었다. 새로운 노동시장은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소수의 정규직과 장벽 밖으로 내쫓긴 비정규직 및 자영업자로 양극화됐고 이런 구조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져 갔다. 그리고 이렇게 양극화된 노동시장은 한국경제의 소득 양극화를 고착시키는 주범이 되었다.

이렇도록 노동시장이 양극화될 때까지 정부는 무엇을 했을까? 유감스럽게도 역대 정부들은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노동시장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만 고수하며 양극화되는 노동시장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중에야 노동개혁 방향이 잘못된 것을 알아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정규직 만을 대변하는 기득권 세력이 된 거대 노동조합을 이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의 노동시장 개혁 실패 사례가 외환위기에 비견할만 한 이번 코로나 팬데믹 위기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일까?

첫 번째 시사점은 이번 역시 위기가 커다란 구조적 변화를 몰고 왔다는 것이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을 가장 크게 받은 자영업 시장에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다. 거리두기 방역조치 등의 결과로 비대면거래 방식이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플랫폼경제의 확산으로 그러지 않아도 비대면거래가 증가하던 차에 코로나 팬데믹이 가세해 그 속도를 더욱 빠르게 했다.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다. 급격하게 확산된 비대면거래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더라도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과 이후의 자영업 시장은 구조적으로 완전히 다른 시장이 될 것이다.

두 번째 시사점은 이런 구조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외환위기 사례에서 본 것처럼 자영업계에도 구조적 피해자가 양산될 것이라는 점이다. 급격히 확산하고 있는 플랫폼경제는 자영업자에게 위기다. 이전에는 생각해보지도 않은 거대 플랫폼 사업자가 자영업 시장에 전방위적으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다. 과거 대형마트가 골목상권을 노리고 침투해 들어온 것보다 더 무서운 기세다. 자영업자의 경쟁자는 이제 더 이상 같은 자영업자가 아니다. 이런 급격한 환경 변화에서 자영업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대세가 된 플랫폼경제에 적극적으로 올라타야 한다. 플랫폼경제에 올라타지 못하면 양극화의 피해자 쪽에 서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플랫폼경제는 자영업자에게 위기인 것만이 아니라 기회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이전 같으면 자영업자의 사업 영역은 자신의 지리적 사업장 주변에 국한되었겠지만 플랫폼경제에서는 이론적으로는 전세계를 상대로 사업을 할 수 있다. 활용 여하에 따라 무궁무진한 기회가 존재한다. 플랫폼경제가 아니고서는 얻을 수 없는 기회다.

이 기회를 잡으려면 자영업자도 디지털 능력으로 무장하고 혁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 플랫폼경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음식, 숙박, 유통, 교통 등의 업종은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전형적인 자영업 업종들이다. 자영업은 이제 그저 그런 진부한 산업이 아니라 혁신산업이 돼버린 것이다.

세 번째 시사점은 정부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이번에는 외환위기 때처럼 잘못된 정책 대응으로 양극화를 심화시켜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 당장 시급하게는 코로나 팬데믹의 상처가 깊은 자영업 부문에 대한 금융지원과 부채조정 과정이 진행되어야 한다. 단기간에 부채 규모가 급증한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까지 급등해 자생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플랫폼경제가 자영업에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기회의 창을 넓혀 주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자영업자의 디지털 역량을 강화시켜 플랫폼경제 활용 능력을 키워주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중요한 정책은 플랫폼경제가 공정하게 발전하도록 관리하는 것이다. 플랫폼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혁신동력인 동시에 독점적 폐해의 원천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균형 잡힌 플랫폼정책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규제가 과하면 혁신이 안되고 시장에만 맡기면 불공정 폐해가 불거진다.

혁신과 공정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생형 혁신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상생도 규제에 기반한 억지 상생이 아니라 시장기능을 존중하면서도 시장에서 자생적인 상생 효과가 나타나도록 하는 레벨업된 상생 정책이 필요하다. 이러 고차원의 정책이라야 플랫폼경제를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업계와 정부의 이런 다양한 노력들이 합쳐져 새해는 자영업계가 코로나 팬데믹의 어두운 터널을 뚫고 나와 밝은 빛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2023년 자영업계에 던져진 화두는 혁신과 상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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