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674개 중소제조 상장사 부채상황 분석
3분기 영업익 3.9%↑, 이자비용은 20.3%↑
코로나 이후 영업익 실현에도 부채·이자·재고 증가속도 못따라가
내년9월 원금·이자 상환유예제도 종료 대비, 다각도 지원 모색해야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자료=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1년새 치솟은 금리로 인해 중소제조사들의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못따라가 흑자도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금리 기조와 경기둔화 추세 속에서 원금과 이자 상환을 유예해줬던 제도가 내년 9월 종료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한국평가데이터(KoDATA)와 함께 674개 중소제조 상장사의 분기별 부채상황을 분석한 결과, 올해 3분기까지 영업이익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3.9% 늘어났으나, 같은 기간 이자비용은 20.3%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총부채 역시 10.4% 늘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는 등 흑자는 실현하고 있으나 늘어나는 이자와 부채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인 것으로 조사됐다. 경기부진 탓에 재고자산 증가율도 지난해 3분기 10.0%, 올해 3분기 15.6%로 계속 상승추세다.

정부는 2020년 4월부터 중소기업·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대출 만기연장 및 원금·이자 상환유예’제도를 시행 중으로 그동안 4차례 종료를 연장했으나 금융시장의 부실을 우려해 내년 9월에는 종료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기업들도 대응책을 모색 중이나 그동안 높아진 금리에 경기둔화가 겹쳐 걱정이 커지고 있다.

꾸준히 대출이자 갚아온 기존 차주들, ‘만기연장·상환유예’ 적용 배제

이번 조사를 통해 대한상의가 96건의 기업애로 사례를 분석한 결과, 가장 먼저 그동안 꾸준히 부채를 상환해 왔으나 최근 급격한 유동성 악화에 빠진 기업들이 어려움을 호소했다. 지금까지 만기연장·상환유예를 이용하지 않은 기업은 지난 9월 연장된 정부 조치의 적용대상이 아니어서 당장 정책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충남 소재 중소 식품제조업체 A사는 코로나19 시기에도 상환유예를 신청하는 것보다 꾸준히 이자를 갚는 게 낫다고 판단해 지원을 신청하지 않았다. 최근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은행에 문의하니 현행 제도는 기존 지원을 연장하는 개념이라 신규 신청이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당장 대출상환 연체를 피하기 위해 유예가 필요한 기업들이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자금사정으로 유동성 압박에 놓인 기업들은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서울 소재 중소 화장품 제조업체 B사는 코로나로 인해 화장품 매출이 80% 타격을 입은 이후 회복되지 않고 있는데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자를 갚기 급급한 상황이다. 수출 판로를 개척하더라도 원료, 설비에 투자할 여유자금이 없어서 납품계약을 체결 못하는 악순환에 빠졌다.

경기도 소재 목재원료 가공업체 C사도 코로나19 초기 기업보증기금을 통해 보증대출을 받을 수 있었으나,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번 분기 대출이자 체납 위기에 놓였다. 운영자금이 부족해지면서 연구개발에 필요한 재원마련이 어려워, 중장기 사업계획을 세우는 데 차질을 빚고 있다.

만기연장·상환유예 받아도 고금리 적용돼 이자부담 계속 쌓여

만기연장이나 상환유예 조치를 받은 기업의 경우 당장은 고비를 넘겼더라도 결국 고금리 때문에 실질적인 부채상환 부담이 커졌다. 당국의 지원 대상 갱신 시 현재 재무상태 및 상환능력을 바탕으로 금리를 산정하기 때문에 이미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 중소기업들은 가장 높은 수준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충남 소재 중소 기계부품 제조기업 D사는 최근 국책은행 대출 만기가 도래해 연장요청을 했는데, 신용이 좋지 않아 최고이율을 적용하고, 원금 상환 조건까지 붙여야 연장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자금상황이 어려워 일시에 전액상환은 불가능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은행에서 요구하는 대로 연장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은행의 문턱을 넘으니 앞으로 쌓일 이자가 상당한 부담으로 다가오는 상황이다.

인천 소재 중소 철강 제조기업 E사의 경우, 은행 내부 신용등급이 1단계 상향 됐음에도 불구하고 작년도 금리보다 약 3배가량 높은 금리가 산출돼 곤혹을 겪은 바 있다. 해당 기업은 다방면으로 수소문해 정부지원사업에 추천을 받아 어렵게 은행 산출금리보다 1.5% 낮은 금리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경기 나아질 기미 없는데 내년에 상환유예 종료...상환 걱정 ‘태산’

정부의 상환유예 지원이 내년 9월 종료 예정인데 경기는 내년이 더 안좋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유예됐던 이자와 원금을 못 갚을 위기에 처한 기업들도 있다. 내년 9월까지 상환유예 연장이 가능하나 내년 3월까지는 금융기관과 향후 상환계획을 협의해야한다. 그 사이에 경기가 회복되지 않아 이자나 원금 상환이 힘든 기업들은 채무조정을 받아 사실상 부실기업의 낙인이 찍히게 되는 것이다.

기업들도 만기연장·상환유예 조치가 종료된 이후 채무조정절차 신청에는 주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리감면·분할상환 등 채무조정 프로그램을 이용할 경우 금융기관 이용이 어려워지는 등 금융활동에 불이익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스스로 채무조정을 선택할 유인이 낮은 것이다.

경기도 소재 물류·운송업체 F사는 항만부지 입찰을 통해 물류창고 신축을 진행하고 있으나 레고랜드 사태 이후 투자처 PF 진행이 모두 막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나마 원금 상환유예를 받고 있으나, 내년 채권시장도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거래 중인 금융기관들이 보수적으로 자금을 운용하는 형국이다.

대구 소재 철강 제조업체 G사도 최근 원자재값이 폭등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와중에 내년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 매출감소를 전망하고 있다. 금융시장 경색으로 추가 대출길이 막히면서 이미 유예된 이자와 원금 상환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는데, 경제전망이 올해보다 좋지 않은 내년에 부채상황이 나아질지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상환유예 종료 대비해 다각도 지원 모색해야

상의는 내년 상반기에 기업들이 최악의 자금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은행이 올해 7월과 10월, 하반기에만 두 차례 빅스텝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금리인상의 효과는 통상적으로 6개월∼1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실물경제에 영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고금리와 경기둔화 추세 속에서 정부는 만기연장과 상환유예 지원에 대한 출구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기업 부채와 자금애로 상황의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연착륙시키는 것이 한국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라고 할 수 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실장은 “올해가 금리인상기였다면 내년은 고금리가 지속될 시기”라며 “이제는 경제상황을 고려한 금리정책을 검토하고, 법인세 인하, 투자세액공제 등 보다 강력한 시그널로 기업들의 자금난에 숨통을 틔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상환유예 지원이 장기간 지속돼온 만큼 경기가 살아나고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충분한 대응시간을 주고, 기술력과 복원력을 갖춘 기업에 대해서는 은행권의 자율적 원리금 유예나 중진공·기보·신보 등을 통한 저금리 대환대출 등 다양한 연착륙 지원조치를 마련해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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