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2월 제27대 회장 선거, 불과 3개월 앞
'누가 나올지' 조차 '감감', 두·세명 예비후보만 거론되는 정도
통상 6개월전 부터 예비후보들 수면위 부상
내년 선거 중앙선관위 위탁 않기로, 중앙회 이사회서 결정
'추대' 형식으로 끌고가려는 일각의 움직임
김기문 회장 4선 도전 여부 공식입장 안밝혀
김 회장 '불법선거운동 재판'이 최대 변수

제26대 중기중앙회장 선거를 10여일 앞둔 15일 전주 르윈호텔에서 5인의 후보자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12일 대구에 이어 다른 주제로 각 후보들은 정견발표와 질의응답 등을 갖고 기념 촬영에 임했다.
제26대 중기중앙회장 선거를 10여일 앞둔 2019년 2월 전주 르윈호텔에서 5명의 후보자 공개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출마한 (왼쪽부터)이재한, 김기문, 주대철, 이재광, 원재희 후보들이 김기순 선거관리위원장(가운데)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668만 중소기업계를 대변하는 중소기업중앙회장 선거(제 27대)가 내년 2월로 다가왔다. 추대 형식으로 이뤄지는 다른 경제단체장들과 달리 유일하게 선거로 치러지는 중기중앙회 회장 선거가 이번에는 예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선거를 불과 3개월 남겨둔 시점임에도, 무엇보다 조용하다. 예년같으면 6개월 전쯤부터 수면위로 부상하던 예비후보들의 움직임 조차 거의 감지가 되지 않고 있다.

통상대로 라면 이미 여러 예비후보들이 출마를 타진함과 동시에 세(勢)를 모으는 움직임을 보이며 활발히 하마평에 오르내리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두·세사람 예비 후보자 이름만 거론되는 정도다. 전·현직 중기중앙회장들이 임기내내 불법선거운동으로 재판을 받을 정도로 과열되다 못해 혼탁 양상까지 보일 정도로 '불꽃튀는' 선거가 아니던가.

그간 중기중앙회장직은, 서로 고사하는 통에 마지못해 연임을 하는 등의 다른 경제단체장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풍경을 연출해왔다. 임기도 2~3년인 다른 경제단체장들 보다 긴 4년 인데도 이 ‘비상근 명예직’을 두고 각축을 벌이는 통에 선거운동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되고 고발이 잇따르며, 심지어 서로 파벌이 나뉘어 극심한 선거후유증을 겪는 문제점을 노출시켜왔다.

그랬던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이번에는 왜 이같이 ‘숨죽인’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지에 주목이 모아진다.

업계에 따르면 우선 3선 회장인 현 김기문 회장의 ‘거취’문제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올해로 12년째 중기중앙회장직을 맡고 있는 김 회장이 내년 2월 4선에 나설지에 예비후보를 비롯해 회원사인 협동조합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출마여부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으나 올들어서 김 회장 주변에서 연임을 위한 사전작업을 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전직 경제단체장 전언에 따르면 지난 5월 용산 대통령 집무실 잔디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중소기업인 대회 만찬장에서 김 회장의 4선 출마여부에 관한 얘기와 더불어 현재 진행중인 김 회장의 불법선거운동 재판 상황에 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올해 2월 중기중앙회 정기총회 이후 김 회장 연임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세(勢)를 모으는 듯한 연판장이 김 회장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조합원들 사이에 돌았다. 또 2월 정기총회에선 선거제도개편안이 발표되기도 했는데, 회장 후보 예정자 및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차기 중앙회장 적합도 조사’를 실시해 일정 지지율에 못미치는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에 현직 회장에게 유리한 제도개편이라는 비판이 일자 중앙회는 내년 2월 선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며 한발 물러섰다. 실제로 김 회장은 지난 23대 회장 당시 회원 10분의1 이상 추천을 받아야만 후보로 나올 수 있는 사전등록제를 도입했고 24대 선거에서 단일후보로 입후보해 연임에 성공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열린 중기중앙회 이사회에서 내년 2월 회장 선거를 중앙선관위에 위탁하지 않기로 의결한 것으로 알려진다. 선관위에 의무위탁하기로 돼 있는 농협중앙회나 수협중앙회와 달리 중기중앙회장 선거는 임의위탁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선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10여년간 중앙선관위에 임의 위탁해 선거를 치렀으나, 내년 2월 선거에서는 자율적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그간 중앙선관위 위탁에도 불구하고 선거과열로 인해 전·현직 회장이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임기내내 재판을 받는 불미스런 일이 빚어진 데다, 내년 선거를 추대 형식으로 끌고가고자 하는 일부 움직임 또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중앙회의 전직 선거제도개선위원회 관계자의 해석이다.

이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적극적으로 회장 출마의사를 나타낸 후보가 없다”며 “누군가 출마를 한다면 경선으로 가겠으나, 그렇치않다면 추대 형식으로 가고자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현직 회장이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실 중기중앙회장 선거가 불법과 혼탁으로 점철되자,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하는 차원에서 중앙선관위에 농협중앙회나 수협중앙회처럼 의무위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지난 2020년 6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를 통해 제시된 바 있다. 현 상황에서 자율선거로 가려면 피선거권자와 선거권자 양쪽모두 의식구조의 변화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렇치않고 중앙선관위 마저 배제되면 선거의 공정성이나 중립성이 지켜질지 더더욱 우려스럽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 회장출마를 저울질하는 후보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3선 경력의 김 회장과 맞서기가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 얘기다. 이에 김 회장의 향후 거취에 따라 출마여부를 최종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 2007년 2월~2015년 2월 제 23, 24대 회장을 한데 이어 중간에 박성택 회장 임기 때 한번 쉬고, 2019년 2월 26대 회장에 다시 출마해 다른 4명의 후보와 겨루어 당선됐다. 중기중앙회장직은 연임만 허용되나 김 회장은 중간에 한번 쉬었기 때문에 규정상으론 내년에 한번더 출마할 수 있다.

현재 김 회장의 거취에 있어 중요한 변수가 남아있긴 하다. 다름아닌 '사법리스크'로서 무려 4년째 끌어오고 있는 그의 불법선거운동 재판의 향방이다. 김 회장은 제26대 회장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권자들을 상대로 식사와 선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2019년 7월 기소돼 4년째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 재판 도중에 김 회장이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선거관련 조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함에 따라 재판이 중단되는 등 지연되다가 오는 12월23일 피고인측 증인심문을 앞둔 상태다. 당시 위헌제청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일치로 각하됐으나, 김 회장은 올해 4월 또다시 위헌제청을 해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일지 아직 심사중에 있다. 김 회장의 1심 재판 진행상황 및 판결에 따라 회장 출마의 판도가 달라지게 된다. 김 회장측에선 재판을 최대한 질질 끌고가려는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으며, 중소기업계 일각에선 4년을 끌어온 1심선고가 늦어도 내년 2월 회장 선거 전에는 나와야 순리대로 차기 회장선거를 치를 수 있다는 시각이다. 1심 판결에서 김 회장이 유죄를 선고받을 경우 회장출마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다른 경제단체장직은 서로들 고사하는 통에 인물난을 겪는 것과 달리, 중기중앙회장직은 같은 비상근 명예직인데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선거로 뽑는데다 경쟁이 치열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기중앙회는 다른 경제단체와 여러모로 차이가 있다. 각종 사업예산을 제외하고도 경제단체 중 유일하게 운영비로 한 해 150억원에 달하는 직접 지원을 받는다. 또 정부로부터 각종 사업예산을 받아 600개 협동조합에 선별 지원하는 권한을 상당부분 갖고 있어 협동조합들이 중앙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정도는 약과다. 중기중앙회는 무려 20조원에 달하는 규모의 노란우산공제를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금융계의 ‘큰 손’이다. 중기중앙회장은 중소기업공제기금 운영위원장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기중앙회는 사내유보금 만도 수천억원을 보유한 홈앤쇼핑의 최대주주로서 중기중앙회장이 홈앤쇼핑 이사회 의장 또한 겸한다. 중소기업 전문 홈쇼핑 채널인 홈앤쇼핑은 ‘판로확보’에 목을 매다시피하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중소기업인들은 홈앤쇼핑에 상품을 입점시키기 위해 노력을 들이는데다, 또 입점하더라도 방영횟수와 방영시간대에 따라 매출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중기중앙회장의 친인척이 벤더를 운영하거나 중기중앙회장 회사의 제품이 프라임시간대에 방영되는 것이 중소기업인들 눈에 당연히 곱지않게 보일 수밖에 없다.

4차산업혁명과 코로나를 계기로 경제 사회계 전반이 급격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맞고 있는 와중에 중기중앙회 또한 변화의 필요성에 직면해있다는 지적이다. 중기중앙회에는 현재 600개 가량의 협동조합이 회원사로 가입하고 있다. 김용구 전 회장(22대)때 이전에는 조합 수가 220개 정도였으나 당시 김 회장이 슈퍼마켓 등 소상공인 관련 조합들을 영입해 회원사가 급격히 불어났다. 이름도 과거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였다. 이에 엄밀히 따지면 중기중앙회가 668만 중소기업을 대변한다고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중기중앙회가 홈앤쇼핑의 최대주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노란우산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시각도 있다. 한 경제단체 임원 출신은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가 자체 사업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경제단체는 회원들의 이해와 권익을 대변하는데 집중을 해야지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며 규모를 키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러 사업을 영위하다보면 그 과정에서 이권이 결부되고 갖가지 문제점과 비리, 잡음이 생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대가 변하면 조직이 변해야하고, 조직이 변하려면 사람이 먼저 변해야한다”며 “특정 인물이 명예직을 지나치게 오래 차지하고 있는 모습도 좋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전직 중기중앙회장은 중기중앙회장직을 수행하는 사람의 최우선적인 조건으로 '사심 없이 봉사하는 자세'를 꼽았다. 그는 “사심을 내려놓고 4년 임기동안 중소기업계를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회장직을 수행하는 자세가 중기중앙회장에겐 더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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