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과 흙의 기운 듬뿍 받은 ‘해남미남축제’ 성황리 열려
해남 문내면 출향인사들로 구성된 ‘강강술래’ 공연 백미
명현관 군수 "특산물 '한눈에 반한 쌀' 미국에 500t 수출"

해남미남축제장을 찾은 명현관 해남군수(오른쪽).
해남미남축제장을 찾은 명현관 해남군수(오른쪽).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이순신장군의 3대 전승지 중 하나인 명량대첩의 격전지 ‘울돌목’ 해협,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천년고찰 ‘대흥사’, 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꼽히는 ‘미황사’, 국토 최남단 ‘땅끝마을’... 땅끝 해남이 품고있는 역사 문화 유적지들이다.

이뿐 아니다. ‘해남 배추’, ‘해남 고구마’ 등 지역 특산물은 이미 전국적인 브랜드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해남의 땅과 흙이 재조명받고 있다. 해남 절임배추를 비롯해 해남 고구마, 명품쌀로 알려진 ‘한눈에 반한 쌀’의 맛과 품질을 전국 으뜸으로 치는 이유도 해풍을 머금은 땅의 기운 때문이다. 전국에 유통되는 절임배추의 70%는 이곳 해남 산(産)이다. 이외에도 클레오파트라가 즐겨 먹었다는 무화과, 부추, 세발 낙지의 인기도 상종가다.

지난 11일 ‘오감만족 미식여행’을 주제로 열린 ‘2022 해남미남(味南)축제’를 관람할 겸 해남으로 향했다. 임진왜란때 우수영이 위치했던 이곳 해남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지는 ‘강강술래’ 공연이 이날 개막식에서 선을 보일 예정이었다. 해남미남축제는 해남군 관광 슬로건인 ‘미남 해남’에서 이름을 따와, 맛있는 해남을 의미하는 ‘미남(味南)’을 브랜드화해 개발했다고 한다.

이날 개막식 무대에 오른 강강술래단은 10여년 전 서울에서 해남군 문내면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져 운영되어 오다가 2019년 협동조합법인 인가를 받았다. 지금까지 강릉단오제‧중소기업기살리기 마라톤대회‧명량대첩축제 조직위원회 등으로부터 10여 차례 초청을 받을 만큼 인정을 받아왔다. 문내면은 우수영이 위치한 곳인 만큼, 재경(在京) 문내면 출신들이 만든 강강술래단은 남다른 의의가 있다.

지난 11일 해남미남축제 개막식 무대에 오른 '강강술래' 공연 모습. 
지난 11일 해남미남축제 개막식 무대에 오른 '강강술래' 공연 모습. 

강강술래는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는 풍속의 하나로 주로 음력 8월 한가위에 우리나라 남서부 지역에서 성행했으며 임진왜란과의 관계가 깊다. 1592년 이순신 장군은 마을 여인들에게 밤에 모닥불을 가운데 두고 강강술래를 하도록 한 것으로 전해진다. 멀리서 보았을 때 깜박거리는 그림자 때문에 일본의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병력을 과대평가했고, 결국 아군이 승리하게 해주었다고 한다. 강강술래는 한 사람이 ‘강강술래’의 앞부분을 선창(先唱)하면 뒷소리를 하는 여러 사람이 이어받아 노래를 부른다.

이날 축제 개막식에 앞서 30여분 가량 열린 강강술래 공연의 선창은 분홍색 치마에 붉은 저고리를 입은 장향순‧김금자 씨가 맡았다. 장향순씨는 인기 배우 박진희의 모친이고 김금자씨는 단원을 지도하는 소리선생님이다. 무대가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는 관계로 이날 무대에 오른 단원은 16여명 정도였으나, 두 사람의 선창은 2000여명이 모인 축제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강강술래 공연은 인원제한이 없다. 대략 30~40여명 정도가 무난하지만 수백여명도 가능하다는게 특징이다. 강강술래 가사는 대대로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민중의 아픔과 한(恨), 노동의 고통을 위무하는 해학과 풍자를 가사에 담아 이어져왔다.

이날 축제장에서 만난 명현관 군수는 ‘해남의 특산품 중에 글로벌시장에 통할 수 있는 상품을 소개해달라’는 질의에 “이번에 LA에 한눈에 반한 쌀 500톤을 수출했다”고 밝혔다. ‘한눈에 반한 쌀’이 생산되는 해남군 옥천면은 맑은 물이 흐르는 분지로 일교차가 커서 밥맛이 좋은 벼 재배에 적합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이날 서울에서 고향 해남축제에 참석한 김종구씨(73세)는 “해남 대흥사는 정유재란과 임진왜란 등 큰 전란에도 불구하고 크게 화를 입은 적이 없을 만큼 땅의 기운이 강한 곳이다”며 “이런 이유로 해남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이 전국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한편 지난 11일부터 3일간 열린 해남미남축제는 최근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감안해 일주일 연기해 치러졌지만 예상과 달리 16만5000여명이 참가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특히 개막식 때부터 사회자가 안전행동을 안내하는 등 안전축제에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올해 네 번째로 열린 해남미남축제는 2019년에 처음 시작되었으나 코로나로 2년간 비대면으로 열렸다가 대면축제로는 이번이 두번째 행사이며 유튜브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명현관 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차분한 분위 속에서 질서를 지켜가며 축제를 즐겨주신 전국에서 오신 관람객과 군민들에게 감사드린다”며 “해남미남축제를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을 힐링하는 기회이자 안전한 축제로 선도적인 역할을 하게 되면서 앞으로 전국 축제개최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남 두륜산의 천년고찰 대흥사로 들어가는 길은 양옆으로 울긋불긋한 단풍이 물들어
해남 두륜산의 천년고찰 대흥사로 들어가는 길은 낙엽과 단풍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험을 선물하고 있었다.  

이날 밤 9시경 기자는 축제장을 빠져 나와 30분 가량을 걸어 단풍이 절정인 대흥사로 향했다. 낙엽 밟는 소리와 소슬바람, 개울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송두리째 받으며 수백년을 이어온 삼나무와 편백나무 숲길을 걸어 늦가을의 정취를 깊게 들이켰다. 절 입구에서 일지암을 가르키는 안내도가 눈에 들어왔다. 일지암은 초의선사가 1824년에 중건한 작은 암자다. 초의는 선(禪) 수행을 차(茶)와 결합시켜 ‘동다송(東茶頌)’이라는 저술을 남겨 차 문화를 일으킨 곳이다.

이청준 소설 <서편제>에 나오는 일지암은 주인공인 소리꾼 송화가 아버지를 용서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아버지는 소리꾼에 대한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딸의 눈을 멀게 한다. 이로 인해 소리꾼의 삶을 두고 “사는 것이 한을 쌓는 것이고, 한을 쌓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아버지의 말을 송화는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곳 일지암에 올라 해남의 드넓은 산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지난했던 육신의 아픔과 한을 티클 하나 남기지 않고 날려버린다. 하여 해남은 서편제의 서사처럼 용서와 화해의 땅이기도 하다.

다음날인 12일 두륜산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해발 700m 두륜산 정상 인근 승강장에 내려 전망대까지 데크로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15분정도 걸어 올라가면 제주도는 물론 완도, 청산도 일대까지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이 날은 안개로 인해 제대로 된 풍경을 감상할 수 없었지만 “어찌 보이는 것만이 다 이겠느냐”는 어느 호사가의 말을 위로삼아 안개낀 산정상을 걸었다. 데크 좌우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우리들이 이따금 역경을 맛보지 않는다면, 성공은 그토록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등 경구가 사유와 힐링의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전망대에 오르자 대략 6~7미터 높이의 설치작품이 관광객을 안내했다. ‘하늘, 바람, 사람’이라는 주제의 이 작품은 관람객이 종이비행기의 한쪽 날개가 되어 하늘, 바람, 소리와 함께 ‘꿈’을 향해 춤추듯 날아다니며 땅끝 에너지를 가져가길 원한다는 글귀의 안내문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해남 두륜산 정상의 설치작품 '하늘, 바람, 사람'
안개가 자욱한 해남 두륜산 정상. 맑은날에는 바로 앞 바다 완도와 청산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 바람, 사람'이란 주제의 설치작품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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