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R칼럼/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조족지혈(鳥足之血), 한강투석(漢江投石). 지난해 11월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코드에 관한 연구’ 용역 정책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필자는, 중간 보고서에서 제시된 ‘사회책임투자 활성화를 위한 로드맵’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그 결과로 나온 단계론적인 계획 때문이었는데, 특히 사회책임투자 규모 확대와 관련해서는 비판적으로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새 발의 피, 한강에 돌 던지기는 당시 내 비판을 압축한 사자성어다.

용역 주체는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SRI) 규모를 1단계인 향후 1~2년에 위탁운용 자산의 20%로 늘리고, 2단계인 향후 3~4년에는 25%, 3단계인 향후 5년 이후 30%로 확대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야심차 보일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 기금운용 규모는 총 622조 원인데, 이중 위탁운용 총 규모는 221조1000억 원이다. 이 규모의 20%라면 1단계에서만 44조2200억 원이 사회책임투자 방식으로 운용되기 때문이다. 7조 원도 안되는 국민연금의 현재 사회책임투자 규모를 감안하면 이 얼마나 혁명적인가. 언론도 사회책임투자 규모 증대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는 중간 보고서에서 사회책임투자 규모 확대 계획의 ‘단서’를 모호하게 처리한데 따른 일종의 착시효과였다. 20%, 25%, 30%는 국민연금의 모든 자산군(국내주식, 해외주식, 국내채권, 해외채권, 국내대체, 해외대체)의 위탁운용이 아닌 단지 ‘국내주식의 위탁운용’에만 적용되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보고서 자료에는 그냥 ‘위탁운용 자산’으로만 표기했다.그렇다면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더 쪼그라든다. 2017년 기준 국내주식 위탁운용 규모인 60조2000억 원에 1단계 20%를 적용하면 12조400억 원에 불과하다.

사실 필자는 지난해 나름대로의 계산법으로 2022년까지 24조3000억 원이 사회책임투자로 운용된다고 추정한 바 있다. 그리고 국민연금 전체 기금운용 대비 사회책임투자 비중이 2.41%에 그쳐, 현재 1.14%보다 단지 1.27% 증가에 그친다고 비판한 바 있다. 또 최소 5년 동안은 다른 자산군(채권, 대체 등)의 사회책임투자 전략만 수립할 뿐 자금을 집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는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는 최소 5년 동안은 PRI 즉 책임투자원칙에서 말하는 모든 투자의 토대가 아니라 단지 스타일 펀드 중 하나에 불과하게 된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필자는 지나치게 기계론적이고 단계론적인 접근 태도를 거두라고 조언한 바 있다. 과문(寡聞)한 필자가 보기에, 세계의 사회책임투자 기관들은 성큼성큼인데 이 로드맵대로라면 국민연금은 여전히 달팽이 걸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의 비판과 조언은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왔다. 최근(3월 27일) 용역 최종 보고서가 공개되었는데, 일부 디테일을 제외하고는 지난해 중간 보고서와 달라진 점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새삼스럽진 않지만 지난해 정책토론회는 그저 요식행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수적인 국민연금이 연구팀에 가이드라인을 주었을 수도 있다는 의심도 지울 수 없다. 물론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정책과 로드맵이 부재한 상태에서 이를 마련한다는 그 자체로도 매우 의미 있는 진보다. 때문에 노력을 폄훼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그럼에도 유럽과 미국 등 사회책임투자 선진국이 아닌 이웃나라 일본으로 눈을 돌리면, ‘왜 우리는 과감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케케묵은 민족적 감정에 기댄 비교의식이 아니다. 사회책임투자의 수준과 인프라와 문화 등에서 우리나라와 일본은 2014년까지만 해도 사실 도긴개긴이었다. 일본의 사회책임투자 규모는 70억 달러로 우리나라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2016년에는 무려 474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전세계 사회책임투자 규모의 0.2%를 차지한다. 글로벌 지속가능투자연합(GSIA)은 일본을 아시아에서 별도로 떼어내 집계할 정도다. 정부 차원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사회책임투자를 적극 장려한 덕분이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과 유사한, 세계 1위 규모 연기금인 GPIF는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최종 보고서는 국내의 경우 연기금의 사회책임투자 도입에 대한 수익률 저하 우려가 존재하고 사회적 공감대 부족을 지적한다. 단계론적 접근의 핵심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는 유럽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은 다 그런 법이다.

우리나라는 사회책임투자 후진국에 속한다. 우리 국민연금이 사회책임투자 비중을 현재 1%대에서 향후 5년까지 2%대로 올리는 게 국민연금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사회책임투자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 사이 일본은, 아니 세계는 얼마나 멀리 나아가 있을까도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우리는 왜 일본처럼 할 수 없는가.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 argos6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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