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에너지·식량물가 상승 탓
흑자·적자 널뛰는 불투명·불확실성 증가
구조개혁·생산성 향상 없으면, 2050년 성장률 0%
일본 ‘잃어버린 30년’ 전철 밟을 수도

포항제철소 제 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고 있는 모습
포항제철소 제3부두에서 철강제품을 선적하는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올해 8월 적자를 냈던 경상수지가 한 달만에 흑자로 돌아섰으나, 전년 대비 흑자 폭은 크게 준데다 수출은 2년 만에 감소세로 반전, 향후 ‘불황형 흑자’ 추세가 우려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으로 비롯된 에너지·식량 가격 상승 탓에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간 이어졌고, 특히 우리나라가 거의 100% 수입에 의존하는 석유·가스 등 에너지 가격의 가파른 상승으로 우리 경제를 지탱했던 경상수지의 안정적 흑자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심지어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잘못하면 당장 내년부터 우리 경제가 ‘L자’형 성장을 보일 수 있다는 어두운 전망도 제기되고 있으며, 이미 스태그플레이션에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더욱이 향후 경상수지 전망도 불투명하고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향후 노동인구 감소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자칫 우리 경제 성장률은 ‘0%’로 주저앉을 것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경고성 전망이 나왔다. 따라서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우리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아픈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는 분석이다.

‘불황형 흑자’, 내년 ‘L자’ 성장 전조?

지난 8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국제수지 잠정통계’를 보면, 9월 경상수지는 16억1000만달러(약 2조2508억원) 흑자로 집계됐다. 한 달 만에 흑자로 전환됐지만, 전년 동월 대비 84%(89억달러)나 줄어든 규모다.

이로써 올들어 1∼9월 누적 경상수지는 241억4000만달러 흑자를 보였다. 하지만 전년 동기 대비 흑자 폭은 무려 432억7000만달러나 쪼그라들었다.

우리나라 경상수지는 2020년 5월 이래 지난 3월까지 23개월 연속 흑자를 유지했으나, 지난 4월 수입 급증에 해외 배당으로 큰 돈이 국외로 빠져나가면서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한 달 뒤 5월 곧바로 흑자 기조를 회복했으나, 넉 달 만인 8월 30억5000만달러 적자를 냈고, 바로 다음달, 한달만에 간신히 16억1000만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세부 항목별 수지를 보면 상품수지가, 적자를 기록한 전월 대비 50억달러 증가한 4억9000만달러 흑자를 냈다. 3개월 만에 흑자 전환이다. 사실 명목상 흑자나 다름없다. 수입물가의 폭증으로 전년 동월(95억5000만달러)에 비하면 흑자액이 95%(90억6000만달러)나 빠졌기 때문이다.

심각한 것은 수출이 570억9000만달러로 전년 동월보다 0.7%(4억2000만달러) 줄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2020년 10월(-3.5%) 이후 23개월 만에 나타난 첫 수출 감소 사례다.

통관 기준으로 우리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수출이 –6.5%를 보였으며, 동남아(-3.0%), EU(-0.7%) 대상 수출이 부진했던 반면, 수입(565억9000만달러)은 1년 전보다 18%(86억3000만달러)나 증가했다.

원자재 수입액은 전년 동월보다 25.3% 폭증했다. 원자재 중 특히 에너지원인 가스, 원유, 석탄의 수입액 증가율은 각각 165.1%, 57.4%, 32.9%에 달했다. 수송장비(23.7%), 반도체(19.2%) 등 자본재 수입도 10.6% 늘어난 데다 곡물(38.1%), 승용차(24.2%) 등 소비재 수입도 13.0% 증가했다.

게다가 서비스수지도 적자를 보였다. 코로나 사태 완화로 해외 여행이 급증한 탓에 3억4000만 달러 적자였는데, 이는 전년 동월(-6000만달러)보다 적자 폭이 무려 6배 가까이(2억8000만달러) 커진 규모다.

이 같은 9월 경상수지 양태는 향후 경상수지 전망의 불투명·불확실을 예고하고 있다. 정부도 월별 기준으로 경상수지가 흑자와 적자가 널뛰기해 변동성이 극심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날 황상필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높은 수준의 에너지 가격과 주요국 및 IT 업종의 경기 둔화 등을 고려하면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상당한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 폭 축소는 일본과 독일 등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향후 경상수지는 중국의 방역 완화, 글로벌 성장세 등에 좌우될 텐데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지난 8월 한은이 전망한 올해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 370억달러 달성도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상태인 동시에 경상수지 흑자가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어서다.

특히 반도체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시기에 큰 폭의 금리 인상과 함께 미국·중국·유럽연합(EU)의 경기가 함께 위축돼 전 세계적인 불황의 지속이 예상된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가 ‘L자’ 형 성장으로 접어드는 동시에 경기는 좋지 않은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이미 돌입한 게 아니냐는 경제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구조개혁·생산성향상 없으면 2050년 ‘성장률 0%’

이처럼 9월 경상수지가 불황형 흑자 양상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면, 2050년 성장률이 0%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표한 ‘장기경제성장률 전망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향후 5년간(2023~2027년)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2.0%로 전망했다. 또한 2020년대 이후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경제 성장세는 점차 둔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0~2070)에 근거한다. 이 추계에 따르면 생산연령인구가 2021~2030년 357만명 줄어들고, 2031~2040년에는 감소폭이 529만명으로 급증한다. 그 결과, KDI는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2020년 72.1%에서 2050년 51.1%로 하락하는 동시에 2041년부터 10년간 매년 국내총생산(GDP)이 평균 0.7%씩 줄어든다고 전망했다.

이에 따라 KDI는 2050년에는 경제성장률이 0.5% 수준으로 떨어지고, 1인당 GDP 증가율은 1.3%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생산성 증가율이 2011~2019년의 낮은 수준(0.7%)에서 매년 1%를 유지하는 수준을 전제로 산출한 잠정 값이다.

그나마 KDI는 경제구조 개혁이 활발히 추진돼 생산성 증가율이 1.3%를 유지하게 될 경우 2050년 경제성장률을 1.0%로 내다봤다. 하지만 생산성 증가율이 2011~2019년의 낮은 수준(0.7%)에 정체되는 경우 2050년 경제성장률을 0.0%로 폭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아울러 KDI는 1인당 GDP도 2050년 낙관적으로 생산성 증가율 1.3%로 봤을 때, 1% 후반대 성장률을 유지하는 반면, 비관적으로 생산성 증가율이 0.7%로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1% 성장률에도 못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인구구조 변화의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 KDI는 구조개혁을 통한 생산성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부적으로는 대외 개방, 규제 합리화 등 경제의 역동성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단행하는 한편 출산과 육아 부담으로 경제활동 참가가 저조한 여성, 그리고 급증하는 고령층이 노동시장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국 인력을 적극 수용, 노동 공급 축소를 완화하는 방안도 내놨다.

KDI는 “경제의 성장 잠재력 강화 노력은 필요하나 단기적인 경기부양 정책으로 잠재성장률을 크게 상회하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잖아도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은 급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1970년대 10%를 넘었던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 7%대, 1990년대 5%대 등으로 계속 낮아져 현재 2%대까지 떨어졌다. 구조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과제는 이미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한 대학의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1년 기준 42.7달러에 불과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29위로 하위권”이라면서 “우리 경제의 생산성이 낮은 것은 규제 사슬, 경직된 노동시장 등이 혁신의 벽으로 작용하고 있고, 고비용·저효율 산업구조가 지속된 탓”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규제혁파와 노동개혁 등 과감한 구조 개혁으로 생산성을 높여야만 성장 동력을 다시 찾고, 성장률도 올릴 수 있다”면서 “만일 우리가 이들 숙제를 풀지 못한다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전철을 밟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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