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富의 대물림’과는 달라…‘디지털 마인드’로 무장, 혁신 도전
맞춤형 소비자 겨냥 ‘온 디맨드’ 전략, '찾아가는 마케팅' 시도
재생에너지와 LED접목, XR접목한 전광판 등 과감한 변신
“무리한 사업확장은 기피…리스크 최소화하는 실용성” 평가

사진은 공구와 장비 관련 소기업들도 많이 참여한 '2022한국산업대전'의 모습으로 본문과는 직접 관련이 없음.
공구와 장비 관련 소기업들이 많이 참여한 '2022 한국산업대전' 모습.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자영업 수준의 소규모 제조업계에선 요즘 이른바 ‘2세 경영’이 새로운 ‘탈출구’로 등장하고 있다. 흔히 ‘2세 경영’이라고 하면, 재벌·대기업이나 중견기업들의 편법 상속이나 노력없는 ‘부의 승계’ 수법으로 받아들여져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소규모 제조업체나 소공인 사업장의 ‘2세 경영’은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특히 디지털화가 시대 조류가 된 가운데, 이들 2세에 의한 ‘탈(脫)아날로그’ 전략이 새로운 해법이 되고 있기도 하다.

서울 양천구의 Y사는 조각품이나 조형물을 만들어 카페나 빌딩, 공공기관 등에 납품해왔다. 미적 효과를 갖춘 옥외사인 개념으로 인식되면서 나름대로 고객층을 형성하며 20여 년 사업을 이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등을 겪으면서 매출이 급감한 후 사정이 변했다. 이 회사 대표 K씨는 “이젠 비전이 없는 사업”이라고 했다. 그러던 그가 최근에는 태도가 변했다. 자신의 20대 후반인 자신의 아들을 위한 본격적인 ‘대물림’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아들 K씨는 분명한 비전을 갖고 있다. “20대들이 생각지도 않는 이런 3D업종을 과감히 살려보겠다”고 했다. “옥외사인이나 인테리어 조형물은 이 세상에서 사업장이나 빌딩이 없어지지 않는 한, 존속할 것”이라는게 그의 생각이다. 그래서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작업 시스템을 자동화하고, 아이템을 바꿔나가며 도전해보겠다“면서 ”특히 SNS와 ‘온 디멘드’ 방식의 온라인 쇼핑몰을 구축해 맞춤형 소비자들을 공략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동종 업계가 쇠퇴해서 많이 없어지면 질수록, 오히려 경쟁상대가 적어지고, 본사도 한결 수월하게 시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예 본격적으로 새로운 시대 조류에 맞게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례도 있다. LED조명제품과 SMPS(파워) 등을 생산해온 경기도 화성의 한 제조업체는 최근 태양광을 접목한 LED가로등 개발에 부심하고 있다. 이를 주도하는 인물 역시 이 회사 대표의 장남 M씨다. 갖 서른을 넘긴 M씨(공식 직함은 이사)는 젊은 패기답게 직접생산증명이나 조달등록, 안전인증, 성능인증, 특허 등을 일사천리로 끝낸 상태다. M씨는 “뭐니뭐니해도 앞으론 재생에너지 시대”라며 “아버지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저는 진작부터 태양광과 LED를 접목하는 방법을 고심해왔고, 이런 제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레거시(전통적인) LED 제품은 워낙에 경쟁도 심하고, 원가도 보장못할 정도로 덤핑이 심한데다, 친환경과 탄소중립이라는 시대 조류와도 안 맞다”고 취지를 밝혔다. 부친의 사업에 뛰어든지 2년째인 그는 “다음 달 있을 관련 산업전에도 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디지털 마인드로 무장한 2세들의 활약은 특히 눈에 띈다. 평범한 플렉스간판이나 네온사인 등을 제작하던 서울 은평구의 한 업체도 그런 사례다. 이 업체 역시 2세가 최근 경영에 적극 참여하며 “한물간 아이템은 접고, 과감히 혁신을 한다”는 각오로 미디어아트, 디지털사이니지 등에 도전하고 있다. 28년째 이 사업을 해온 이 회사 대표는 “몸도 안좋고 해서, 그만 사업을 접을 참”이었다. 그러나 굳이 자신의 아들이 ‘새출발’을 장담하며 의욕을 보여 물려주게 된 것이다.

경기도 성남 테크노파크의 조명업체 A사도 비슷한 경우다. 공연이나 경기장 등에 쓰이는 대형 전광판을 주로 생산해오던 이 회사는 최근 시장 전략을 크게 바꿔 주변을 놀라게 했다. 픽셀조명 개념의 전광판 대신에 빌딩 전면을 뒤덮을 만한 메타버스 조명기술을 선보였다. XR과 조명기술을 접목하여 기존 미디어 아트와는 또 다른 환상적인 외부 경관과 익스테리어 제품을 출시한 것이다. P 대표는 “내가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겠느냐”며 “전적으로 아들이 주도해서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했다.

실제로 디자인인테리어와 컴퓨터공학을 복수 전공한 아들 P씨는 자신의 재능을 사업에 접목시켜, 이 회사의 비전을 바꾸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최근 코엑스에서 열린 ‘2022 메타버스 페스티벌’에 그 기술의 일부를 출품할 정도로 사업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미 두 세 군데 판매 계약을 한 바 있어, 다음 달이나 연말 이전까지 납품해야 한다”는게 대표 P씨의 말이다.

이같은 현상은 주로 직원 20명 안팎, 혹은 그 이하의 소공인 업체나 소규모 제조업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특히 소기업들은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이 가속화되는 현실에서 이를 추진할 만한 자본이나 인력, 디지털 기술 등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렇다보니 젊고 현대감각을 갖춘 2세들이 전면에 나서는 사례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주로 조명과 포장재, 간판이나 사인물, CNC, 식가공, 포장재, 파레뜨 등 소규모 제조업종들에게서 볼 수 있다. 업계 사정에 밝은 한국광고산업협회의 한 회원사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라곤 해도, 쉽사리 IT기술을 접목할 수 없는 업종들일수록 그런 경향이 많이 감지되고 있다”면서 “그렇지만 이런 업체들의 2세 경영은 흔히 대기업처럼 부의 대물림 수단이라기보단, 시대에 뒤떨어지지않고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이들 2세 경영자들 중엔 앞서 A사처럼 파격적인 DX를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보다는 기회비용이 적은 방식, 예를 들어 센서기술을 응용한 자동화나, 홀로그램과 영상조명기술을 접목한 미디어 아트, 재생에너지 접목한 신개념 조명기술 등 ‘업그레이드’ 수준이 많다”는 얘기다. 즉, 부모가 일군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하기보단, 기존 사업의 외연을 넓히거나 발상을 전환하는 수준이다.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실용적 면모가 엿보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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