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들 우려, “금리인상, 일관된 거시정책과 병행돼야”
정치권 일각 “한국은행 무조건 금리인상만이 능사 아니다”
고용안전, 소득보장, 사회안전망 위한 재정정책 뒷받침 중요
중기연구원 “금리인상 대응, 신속한 소상공인 부채관리시스템 필요”

남산쪽에서 바라본 한국은행 원경.
남산 쪽에서 바라본 한국은행 원경.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미국의 연이은 빅스텝, 자이언트 스텝에 이어 한국은행도 12일 기준금리를 2.5%에서 3%로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그런 가운데 국내 전문가들 일각에선 “과연 이대로 미국을 따라잡기만 해야 하나”라는 회의섞인 비판이 제기돼 눈길을 끈다. 금융계 일부와 경제연구소, 그리고 정치권 일각에서도 이같은 맥락의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의 박성욱 연구원은 최근 자체 ‘금융브리프’를 통해 “미 연준을 포함해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빠르게 금리인상을 하고 있지만 전쟁, 코로나19 여파, 부동산 부실, 장기간 수요부진 등의 문제로 (우리나라는) 미국만큼 금리를 올리기는 어려운 실정”이라고 진단하면서 “향후 상당 기간 미국의 금리인상에 따른 강달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면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현재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우리는 대외불균형이 심화되지 않도록 하는 데에 우선순위를 두고 일관성 있는 거시정책을 펼침으로써 경제안정에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미국의 의도적인 강달러 정책과 연이은 금리 인상을 수동적으로 쫓기만 해선 곤란하다는 함의가 담겨있는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 대해서도 일종의 국제적 책임을 요구하는 듯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즉 “미국은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급속하게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고 있는 만큼, 통화스왑 등 국제공조를 통해 국제금융체제의 복원력 유지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라고 했다.

동시에 그는 “각국이 강달러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역으로 미 국채시장의 안정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면서 “이는 다시 국제금융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므로 이러한 역파급 효과를 최소화하려면 미국 역시 국제공조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력 주문했다. 미국 스스로에게도 지금과 같은 고금리 행진과 강달러 전략이 이롭지많은 않다는 간접적인 충고로 해석될 만하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 일각에선 이번에 빅스텝을 단행한 한국은행의 맹목적인 ‘미국 따라잡기’를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와 눈길을 끈다. 기본소득당의 오준호 대표는 최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을 통해 “연준 따라가기만 할 거면 한국은행 왜 존재하나”고 강하게 질타했다. 그는 “정부의 적극 재정 없는 계속된 금리 인상은 명분이 없다”며 연이은 빅스텝 행진을 비판하고 나섰다. 오 대표는 “기준금리가 이처럼 빨리 오르면 이자 부담은 급증하고 체감 경기는 얼어붙는다”고 ‘대책없는 금리인상’을 비판하면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현실에서 금리 인상은 과감한 재정정책과 병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오 대표는 특히 중앙은행의 “안일한 대처”를 비판하면서 “연준의 조치를 기계적으로 뒤따르는게 전부라면, 대한민국 최고 엘리트라는 한은의 금융통화 전문가들은 무얼 하는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하며 나름의 대안을 제시했다. 즉 “지금의 인플레이션은 공급 요인, 곧 전쟁과 고유가와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서 비롯한 것이어서, (금리조작과 같은) 통화정책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금리 인상이란 정책 수단을 쓰려면 정부는 고용 유지, 복지 확대, 최소소득 보장에 적극적으로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한국처럼 재정정책 없는 통화정책, 사회안전망 없는 기계적 금리 인상은 매트 없이 장대를 뛰라는 셈”이라고 했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무작정 ‘미국 따라잡기’에만 매몰될 경우엔 “투자 위축과 소비 둔화에 따른 소득 감소, 실업의 고통이 응달의 이끼처럼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한편으론 부자와 고소득자 감세정책을 펴고 있으면서도, 재정긴축을 고수하고 있는 현 정부의 기조와는 다른 처방이어서 눈길을 끈다.

특히 미국에 대해선 “미국발 금리 인상을 아예 안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지금의 금리 인상은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당연히 취할 금과옥조가 아니며, 패권국가 미국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강행하는 수법이란 점”을 환기했다. 또 “미국은 가파른 금리 인상으로 '킹(King) 달러'를 능가하는 '갓(God) 달러'로 수입물가를 낮추지만, 신흥국과 개도국은 외환이 유출되고 고환율로 물가가 오르고 경기 위축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고 있다”면서 “지난 4일 유엔무역개발회의가 미국에게 금리 인상이 신흥국에 타격을 줄 뿐이라며 다른 수단을 촉구한 것도 이런 이유”라고 되새겼다.

​그는 결론적으로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는 그저 견뎌야 할 운명이 아니다”면서 “(미 연준을 따라잡기에 급급해하기 앞서) 새로운 경제의 판을 짜고 재편한다면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고 고언했다. 즉 “고물가·고금리 국면에 초과이득을 올린 화석연료기업과 은행에게 횡재세를 걷고, 시민에게 얻은 빅데이터로 급성장한 플랫폼기업에게 데이터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보장하고 녹색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전환에 과감히 투입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중소벤처기업연구원도 “현재 2.50%인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올라 3%가 될 경우 개인사업체는 약 4만969개, 소상공인은 약 5만8919명이 추가로 도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통해 같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당시 정은애 연구위원은 ‘금리인상에 따른 부실 소상공인 추정과 시사점’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소상공인 부실은 금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지적하고 “소상공인의 금리상승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물가상승과 금리 인상에 대한 한계 소상공인의 변화를 시나리오별로 진단한 뒤 이에 따른 연착륙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정 연구위원은 그러면서 ▲업종, 매출, 신용도, 추정소득 등에 따른 특화된 부실·한계 소상공인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고, ▲금리상승에 대비한 면밀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소상공인 부채 관리 시스템을 촉구했다. 또 ▲경영 여건이 양호한 소상공인의 흑자도산에 대한 대책과 함께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의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 역시 대안과 대책을 전제로 한 금리인상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맹목적인 ‘미국 따라잡기’식과는 결을 달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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