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융합산업학과 교수
가족기업학회 차기 회장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차기 회장
윤병섭 가족기업학회 차기 회장

세계적으로 성장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스위스 등 장수기업은 여러 대에 거친 경험을 노하우, 기술축적으로 내재화해 경영철학으로 다졌다. 선대의 숙련된 손으로 수십 번의 작업을 거치는 핸드메이드 방식의 정밀 가공과 조립은 선대의 성공은 물론 실패에 대한 존경과 사랑, 추억을 담아 성공 방정식을 만들었다.

장수기업의 역사는 실패에 도전한 역사며, 거친 아이디어를 자산으로 삼아 구성원이 공유하고 다듬어 성공으로 이끌었다. 신제품을 개발한 장수기업은 복잡하고 난해한 기술을 성공과 실패한 경험의 다양한 지식에서 풀어내 까다로운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는 기업가정신이 몸에 배어 있다.

1637년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오쿠라 지에몬(大倉治右衛門)은 일본 교토 남부 가사기(笠置)에서 후시미(伏見)로 사케 양조장을 옮기고 새로이 개업했다. 옥호(屋號)를 가사기야(笠置屋)로 정하고 다마노이즈미(玉の泉)를 빚어 겟케이칸(月桂冠)의 역사를 시작했다. 385년 역사의 힘은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새로운 도전을 장려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기업문화였다.

세균이 번식하지 못하게 술통을 관리하는 요령, 술 빚을 쌀 빻는 기술, 쌀 씻고 찌는 방법, 술 빚기용 누룩 만드는 지식 등에서 체험한 수많은 실패 사례는 주의할 내용을 담은 장부에 가감 없이 기록해 후대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전수했다.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청주, 사계절 내내 내리는 사케, 뚜껑을 술잔으로 쓰는 술병, 당질 없는 술, 상온에서 유통할 수 있는 나마자케(生酒) 등은 월계관이 처음 개발한 상품들이다.

1875년 교토에서 시마즈 겐조(島津源蔵)가 창업한 시마즈제작소(島津製作所)는 계측기, 의료기기, 항공기기 등 정밀기기를 제조한다. 당장 어떤 사업에 적용하지 않더라도 개발해두면 언젠가 사회에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로 연구한다. 연구자에게 단기 성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10년 넘게 걸려 개발한 현미경도 있다. 긴 안목을 보고 기술을 개발한다.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모노즈쿠리(ものブくリ) 정신을 지닌 기업이다.

연구원 스스로 연구 주제를 정하고 실험하다 발생한 실패에 대해선 책임을 묻지 않는다. 일본에서 처음 발명한 엑스선(X-ray) 발생기는 시마즈 연구원들이 범용 X선 시스템 기술을 배우면서 방사선에 피폭돼 많은 희생이 따랐다. X선, PET, CT 등 의료 영상 진단 기기의 연구와 생산 과정에서 희생한 선조들의 발자취가 노벨상을 배출한 시마즈제작소의 힘을 증명한다.

1902년 사업을 잘 모르던 철도원, 의사, 변호사, 정육점 주인 등 5명이 설립한 3M은 실패를 혁신의 기회로 만든 기업이다. 연마제 휠 제조용 미네랄 채광을 목적으로 창업한 광산업에 실패하고 사포(sandpaper) 생산을 시작해 갖은 어려움을 극복한 글로벌기업이 됐다. 하지만 미네소타채광․제조회사(Minnesota Mining and Manufacturing Co.) 명칭은 혁신을 채굴로 여기고 연구개발 실패지식을 활용한 선대의 정신을 대물림했다. 100주년이 된 2002년 회사명을 약칭한 3M으로 변경해 선조의 기업가정신을 조명하고 있다.

3M이 신제품 연구개발에 실패해온 일련의 과정에서 축적한 접착제 다루는 기술은 마스킹 테이프, 스카치 테이프, 포스트-잇 등으로 세계 최고가 됐다. 실패에 도전해 끈질기게 집착한 노력이 이룬 마스킹 테이프 생산기술은 수백 가지 용도의 제품으로 파생되고 응용됐다.

3M 사업의 다각화를 열었고 ‘15% 규칙’을 정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3M에선 누구라도 업무시간의 15%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쓸 수 있다. 이 15%의 시간은 회사에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아이디어나 프로젝트라면 자신의 직무와 상관없어도 된다.

“실수를 장려하라. 경영층이 실패를 용인하지 못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견지하면 사원의 창의성이 말살된다.” 3M을 43년 동안 이끈 맥나이트(William L. McKnight)의 리더십이다. 3M은 신제품개발 실패를 성공의 씨앗으로 만들고 이 사례들을 널리 전파함으로써 모든 구성원이 실패를 무릅쓴 과감한 도전, 성공을 향한 열정과 끈기를 앙양시켰다. 3M 연구원이 신제품개발 실패 경험이나 원인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공유하면 내부적으로 철저히 보호하되 절대 처벌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다.

3M은 의외로 쉽게 이해하는 아이디어는 ‘평범’이라는 벽을 넘지 못해 실패하고 오히려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성공한다는 점을 경험에서 터득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상식이라는 흉기로 죽이지 않도록 1951년부터 내려오는 기술포럼, 실패파티를 열어주고 실패로부터의 학습을 권장하는 잘 의도된 실패원칙, 창의적인 소수의견을 권장하고 채택하기 위해 보고할 때 소수의견을 병기하게 의무화한 마이너리티 리포트 제도, 상사가 모르는 비밀프로젝트를 권장하는 밀주제조(bootlegging) 제도, 아이디어가 나오면 각 부서가 모여 그것만을 위해 조직을 따로 만드는 제품챔피언제도 등 여러 유형의 제도를 두고 있다.

창의적인 생각과 협업을 중시하는 문화는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고 혁신을 가져온다. 아이디어는 또 다른 아이디어와 결합하고 결합한 아이디어가 제품이 될 때 고객은 누군가의 혁신으로 윤택한 삶을 영위한다. 오늘도 3M은 최근 1년 이내에 개발한 신제품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10%에 도달해야 하는 ‘10% 규칙’, 최근 4년 이내 개발한 신제품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30%에 도달해야 한다는 ‘30% 규칙’을 준수하고 있다. 이 바탕에는 연구개발 실패지식을 활용하는 혁신의 뿌리 3M의 철학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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