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합 위기상황, 대·중소기업 ‘각자도생(各自圖生)’에 나서
교역조건 17개월 연속 악화...무역수지 6개월 연속적자 가능성
'경기 비관적', BSI 78에 불과...1년 7개월만에 최저치
대·중소기업, 전쟁상황으로 여기며 대안 마련에 총력

경기도 평택의 한 중소기업 공장 내부.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이른바 ‘3고(高)’ 탓에 휘청거리는 우리경제가 교역조건의 17개월 연속 악화를 기록하면서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이는 지난 8월 유가하락이라는 긍정적 조건에도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이 지속적인 약세를 보여 수입가격이 수출가격보다 크게 오르는 현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악화된 교역조건의 영향은 바로 무역수지 연속 적자로 이어졌다. 이달 1~20일 기준 무역수지는 41억500만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이 같은 흐름이라면 9월까지 6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경기와 향후 경기를 현장 기업들을 통해 보여주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도 현재, 미래 모두 암울하다. 불황에 이미 들어선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비상 상황이다.

이에 따라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이를 타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교역조건, 사상 최악으로 나빠져

29일 한국은행은 ‘2022년 8월 무역지수 및 교역조건’ 자료를 통해 지난달 수입금액지수는 184.49(2015년 100기준)로 1년 전보다 28.8% 상승했다고 밝혔다.

이는 2020년 12월(2.9%) 이후 21개월 연속 상승인데다 오름폭(28.8%)도 전달인 7월(22.6%)보다 6.2%p나 높아진 것이다.

품목별로는 우리가 수출과 국내 소비를 위해 불가피하게 수입해야 하는 원유 등 광산품 수입금액지수 상승률이 77.2%나 됐다. 이외에도 공산품 중 운송장비(35.1%)와 섬유·가죽제품(24.0%) 상승폭도 큰 것으로 집계됐다.

나란히 수입물량지수(136.17) 역시 13.4% 높아져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는 ▲운송장비(56.0%) ▲컴퓨터·전자·광학기기(26.3%) ▲농림수산품(25.8%) ▲광산품(23.7%) 등의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것이 원인이다.

8월 수출금액지수(136.84)와 수출물량지수(122.43)도 전년 대비 각각 7.2%, 5.1% 올랐다. 두 지수 모두 22개월, 2개월 연속 오름세를 보인 것이다.

개별 품목을 살펴 보면, 석탄·석유제품(110.8%), 운송장비(28.2%)의 수출금액이 많이 늘었고, 수출물량지수 기준 역시 석탄·석유제품(39.6%), 운송장비(29.7%)의 증가율이 눈에 띄게 높았다.

이에 따라 순상품교역조건지수(82.49)는 1년 전보다 10.3% 떨어져 17개월 연속 하락세를 이어갔다. 1988년 1월 관련 통계가 집계된 이후 가장 낮았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적으로 수입 가격(전년 동기 대비 +13.6%)이 수출 가격(+2.0%)보다 무려 6배가 넘어설 정도로 올랐기 때문이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 가격과 수입 상품 한 단위 가격의 비율로, 우리나라가 한 단위 수출로 얼마나 많은 양의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서정석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지난달 유가도 떨어졌지만, 최근 반도체와 석유제품 가격 악세 등으로 수출품 가격이 수입품 가격보다 7월에 비해 좀 더 하락했다"며 "이에 따라 순상품교역조건지수도 7월에 이어 역대 최저 기록을 경신했다"고 했다.

소득교역조건지수의 경우 수출물량지수(+5.1%)가 올랐지만, 순상품교역지수(-10.3%)가 내려 결과적으로 1년 전보다 5.7%나 하락한 상태다. 소득교역조건지수는 우리나라 수출 총액으로 수입할 수 있는 전체 상품의 양을 나타낸다.

비관적 현재 경기, 앞으로도 어두워

이처럼 ‘3高’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교역조건의 악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기업들은 현재와 향후 우리나라 경기를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대기업은 물론이고 중소기업은 중소기업대로 당분간 경기 상승은 힘들다고 봐 우리나라 경제가 이미 ‘장기적 불황’에 들어선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료= 한국은행
자료=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2022년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business survey index) 및 경제심리지수(ESI, economic sentiment index)’를 살펴보면, 이달 전체 산업에 대한 BSI는 전달보다 3p 하락한 78을 보였다. 2021년 2월, 76 이후 1년 7개월 만의 최저 수준이다.

BSI는 기업이 인식하는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다. 긍정적이라고 응답한 업체가 부정적이라고 답한 업체보다 많으면 100을 넘고, 그 반대면 100을 밑돈다.

이번 지수에서는 제조업 중심 하락세가 눈에 띄었다. 제조업 업황BSI는 전달보다 6p 하락한 74를 기록했는데 최근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요 둔화가로 전자·영상·통신장비가 무려 13p나 하락했다.

이어 1차금속도 냉연, 철근 등 1차 금속 주요제품 가격 하락이 이어지는 반면 환율 상승으로 인한 수입원자재 가격 상승 영향으로 11p나 떨어졌다. 건설, 철강 등 전방산업 업황 둔화에 따라 수요가 감소하며 기타 기계·장비(-9p) 부문도 하락에 합류했다.

하락세는 비제조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9월 비제조업 업황BSI는 전월대비 1p 하락한 81을 기록했다. 주택경기 둔화, 신규수주 감소,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건설업의 채산성이 떨어진 데다 소비자물가 상승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을 불러일으켜 도소매업도 하락했다.

10월 업황전망BSI도 전달보다 3p 하락한 79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제조업 업황전망BSI는 전자·영상·통신장비(-21p), 비금속 광물(-13p) 등을 중심으로 전월대비 7p 하락한 75를 기록했다. 경기 상황이 악화되면 악화되지 좋아질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기업들의 속내를 보여주는 것이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한 언론사 행사에서 “현재 복합적인 경제위기가 최소한 1년 이상 갈 것이다. 그렇기에 경제 정책의 추진동력이 필요한데, 정치권은 여전히 ‘갈라치기’와 ‘편가르기’ 라는 고질병에 매몰돼있다”고 우려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한 경제전문가는 “고환율을 누그러뜨리는데 일조할 것으로 기대됐던 한미스와프 문제를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해결해주기를 기대했지만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결국 외생적 악환경도 문제이지만 정치의 후진성이 우리경제의 걸림돌이라는 얘기다.

자료= 한국은행
자료= 한국은행

대기업·중소기업, “신발 끈 고쳐 맨다.”

대기업들은 비상 상황에 돌입했다. ‘3고(高)’의 대부분은 외생적 변수가 작용해 발생했다. 특히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을 목표로 밀어부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 의 악영향 등을 넘어서기 위해 비상경영을 가동했다.

대기업들은 현 상황을 전쟁이라고 보고, ‘워룸(war room·지휘통제실)’을 중심으로 비상 체제로 들어갔다.

각 그룹 총수들은 사장단 회의를 긴급 소집, ‘3고(高)’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향후 투자 계획 재고와 사업방향 재점검에 돌입했다.

지난 26일 삼성그룹은 2년여 만에 전자·금융 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이 모인 사장단 회의를 용인 소재 삼성 인재개발원에서 가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날 오찬을 함께하며 경영 환경을 체크하고 향후 전략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8일에는 서울 서초동 삼성 본사 사옥과 같은 건물에 있는 삼성생명을 찾아 30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젊은 세대) 지점장 7명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금융 계열사의 MZ세대와 직접 소통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만들어진 자리로 알려졌는데 이날 이재용 부회장 일정은 원래 예정에는 없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 삼성그룹의 기둥인 전자·금융을 먼저 챙기는 면모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이슈가 있는 현대·기아차그룹은 수시로 대책 회의를 열고 있다. 이로써 멕시코 기아자동차 공장 확충과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 전기자동차(EV) 공장 설립을 결정, 위기 상황을 정면 돌파한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29일 구광모 LG그룹 회장은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전자·디스플레이·화학 등 주요 계열사 사장단 참석, 2019년 이후 3년만에 대면 워크숍을 주재했다. 구 회장과 사장단은 복합 위기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안을 집중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구 회장은 주요 안건인 ‘고객 가치 강화’와 함께 강도 높은 위기 대응책 마련을 특별하게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SK그룹도 다음 달 최태원 회장 주재로 ‘CEO 세미나’를 사흘간 갖는다. 위기 상황에 대한 ‘컨틴전시 플랜’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배터리를 비롯한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 등 해외투자 확대에 따른 투자 비용 부담도 면밀히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그룹은 다음 달 사장단과 전 임원이 참석하는 그룹 경영회의를 연다. 7월 사장단 회의에 이어 3개월 만에 갖는 긴급회의다. 재고자산이 증가하고 철강 수요가 감소하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현금 중심의 긴축 경영 방안과 함께 최근 이슈가 된 리튬, 니켈을 포함한 전세계적 공급망 위기를 타개할 방책도 논의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별기업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현 상황을 뚫고 나가기 위해 그야말로 안간힘을 써야할 판이지만 속수무책인 곳들이 상당수다.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자료= 중소기업중앙회

최근 중소기업중앙회는 5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 중소기업 10개사 중 7개사(65%)가 현 경제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있고, 10개사 중 9개사(86.8%)는 현재 경제 위기가 최소 1년 이상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중소기업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요인은 ‘원자재가격 급등’(76.6%)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같이 심각한 상황임에도 조사대상 기업 중 22.5%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응답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계는 고물가 상황에서 필요한 정부 정책으로 ▲원자재 가격 및 수급정보 제공 지원 강화(67.8%) ▲원자재 구매금융·보증 지원 강화(35.6%) ▲납품단가 연동제 조속한 법제화(33.2%) ▲조달청 비축 원자재 할인 방출(14%) 등을 요구했다.

아울러 최근 미국의 선도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적 금리인상으로 국내 중소기업도 10개사 중 7개사(69.2%)가 부정적 영향을 받는다고 한 반면, 중소기업의 절대 다수(99.6%)가 고금리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계는 이 같은 고금리 극복을 위해 정부가 ▲중소기업 우대금리 적용 확대(40.4%) ▲ 만기연장·상환유예 대상 확대(37.8%) ▲정책자금 지원 확대’(34.6%) ▲재기 위한 자산매각 지원(21%) 등을 요청했다.

변기, 세면대·타일 등 욕실용품을 제조하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최근 들어 건설업도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태인데다 원자재 값, 인건비 모두 일제히 올라 올해를 어떻게 보내야할지 걱정”이라며 “정부가 대표 중소기업이나 동종업종 중소기업을 묶어 가격 변동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예전부터 중소기업계에서 요구했던 공동구매를 활성화 시켜 원가 부담을 줄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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