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금융지주 회장 증인 채택은 불발
은행권 횡령-이상 외환거래 집중 추궁할 듯
‘행장 책임론’ 제기, 징계·퇴진까지 가나?
가상자산·론스타 관련 증인도 결정

최근 금융권에서 불거진 직원횡령·이상 외환거래 등의 현안과 관련 5대 은행장들이 국정감사에 동시에 증인으로 설 예정이다. (왼쪽부터) 이재근 KB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 5대 시중 은행장들이 동시에 국회 정무의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 각 은행에 제기된 문제에 대해 의원들의 집중적인 검증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국회 정무위와 금융권에 따르면 정무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이재근 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 등 5대 시중은행장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의결했다.

이로써 증인으로 소환된 5대 시중은행장은 내달 11일 금융감독원 대상 국감에 나와 최근 은행권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바늘방석’에 앉게 됐다.

이밖에 가상화폐, 론스타 문제 관련 증인도 채택, 다음 달 국감에서 다뤄진다.

은행권 횡령·이상한 외환거래, 핫 이슈

이번에 채택된 5대 시중은행장들은 잇따른 은행권 횡령·배임·유용 사건과 외환 이상거래 등 내부통제 실패에 대해 그 원인과 책임, 재발 방지 대책을 집중 추궁 당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무위는 5대 금융지주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자는 의견을 애초에 제기했다. 하지만 이들은 ‘담합’이라도 한 듯. 오는 10월 11~14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는 일정을 잡았다. IMF·WB 연차총회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등 글로벌 금융계 인사들이 만나 세계 경제·금융 전망, 글로벌 정책 과제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인 만큼 국제금융계의 큰 행사다.

이에 따라 연차총회에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등이 나란히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안팎에서는 국감 회피용 해외출장이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됐다.

은행 관계자는 “전 세계 금융계 인사들이 모이는 데다 3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리는 행사에다 원래 오래전 잡힌 일정이라 지주 회장들은 참석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서 “회장들의 참석이 국정감사와 일정이 겹쳐 난감했는데 은행장들로 증인 채택 가닥이 잡혀 다행”이라고 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사실 금융지주 회장은 은행 뿐 아니라 전반적인 금융그룹을 관장하게 돼 직접적으로 은행 내부의 횡령이나 외환 거래 이상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힘들다”면서 “아마 이런 사유로 정치권과 ‘물밑 작업’을 통해 은행장 선에서 막았을 가능성이 짙다”고 분석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우리은행 700억원을 포함, 은행권에서는 지금까지 총 722억6700만원(15건)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우리은행 직원과 그 동생은 지난 2012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년 동안 총 8차례에 걸쳐 은행 돈 707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바 있다. 2017년 이후 횡령사고에 연루된 직원들에 대한 은행의 자체 조치는 면직 81명, 정직 2명이다. 10명은 사망이나 퇴직으로 조치가 없었으며 올해 발생한 사고와 관련해 7명은 조치를 기다리고 있다.

앞서 금감원이 정무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년간 은행 횡령사고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국민·신한·우리·하나·농협·SC·경남·대구·부산·전북·제주·수협·기업·산업·수출입 등 15개 은행에서 2017년 이후 98건, 총 911억7900만원의 횡령사고가 발생한 바 있다.

이와 함께 10조원이 넘는 외환 이상거래도 ‘뜨거운 감자’다. 최근 금감원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을 비롯해 외환 이상거래 의심사례가 파악된 12개 은행 검사·점검 결과, 현재까지 확인된 이상거래 규모는 72억2000만 달러(27일 환율 기준, 약 10조3029억원)에 달한다.

이는 금감원이 지난 6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이상 외화송금 의심거래 사실을 보고 받고 현장검사에 착수해 얻어낸 내용이다. 7~8월에는 검사 및 점검 대상이 모든 은행으로 확대됐고, 그 결과 두 은행 이외에 타 은행들에서도 외환 이상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 상황이다.

‘은행장 책임론’ 제기될 듯

다음 달 11일 열리는 정무위 국감에서는 이처럼 사회 문제로 비화된 잇따른 횡령 사고와 외환 이상 거래에 대해 ‘행장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이 금융 당국을 통해 직접적으로나 우회적으로 경고와 징계는 물론 경질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정무위 소속 A 의원은 “고질적으로 내부 통제 문제가 끊이질 않은데다 책임 소재마저 불분명하다”며 “감독당국의 감독 소홀은 물론 금융사 최고임원까지 내부통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인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은 “금융위는 금융 권역별로 연 1~2회 실시하고 있는 금융회사의 감사·준법감시 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통제 워크샵을 분기별로 늘려야 한다”면서 천문학적 수준의 우리은행 횡령 사건에 대한 현장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금융감독과 내부통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황운하당 의원도 “은행 횡령사고가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은행은 직원의 범죄행위에 대해 고발조치도 하지 않고 안일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반복된다”며 “내부프로세스정비와 처벌강화를 비롯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횡령사고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론스타도 도마에 올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도 대거 국감장에 출현한다.

다음 달 6일 금융위원회 국감과 관련, 민주당은 이정훈 빗썸 대주주와 신현성 차이홀딩컴퍼니 총괄을 증인·참고인 명단에 넣었고, 증인으로 채택됐다. 또한 국민의힘은 송치형 두나무 회장을 증인 명단에 올렸으나 송 회장 증인 출석은 불발됐다. 대신 이석우 두나무 대표가 증인으로 참석, 질의를 받게 된다.

이는 가상자산 가격이 하락한 가운데 주요 거래소만 이득을 취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특히 개인이 만든 가상화폐가 대폭락, 개인투자자들을 파탄에 내몬 루나·테라 사태가 발생, 이들을 증인·참고인 명단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같은 날 금융의원회 대상 국감에서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을 일으켰던 ‘론스타 사태’와 관련된 증인도 결정됐다. 2012년부터 론스타 사건의 정부 측 대리인단에 소속됐던 김갑유 법무법인 피터앤김 대표변호사, 하나금융지주 회장 당시 외환은행 인수를 결정했던 김승유 전 회장 등이다.

한편 정무위는 은행권 이외에 증권사 중 유일하게 한국투자증권 정일문 사장을 증인으로 포함시키려 했으나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2월 '공매도 제한 규정 위반'을 이유로 금융당국으로부터 과태료 10억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이 사실은 지난 7월 뒤늦게 알려졌는데, 지난 2017년 2월~2020년 5월까지 한투는 무려 3년 3개월 동안 차입 공매도 과정에서 차입공매도 표시 여부를 위반,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이 공표되면서 한투는 ‘불법 공매도 주범’이라는 투자자들을 비롯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연쇄적으로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등 개인투자자 단체는 금융당국이 한국투자증권을 불법 공매도로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국회에 의견서 등을 제출한 바 있다.

이런 연유로 증권사 중 유일하게 정 사장이 국감 증인으로 채택될 것은 당연하게 여겨졌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그렇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었다. 지난 7월 금융당국과 대검 등은 ‘불법 공매도 적발·처벌 강화 및 공매도 관련 제도 보안 방안’을 발표하면서 불법 공매도와 관련해 엄정하게 대처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이에 따라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이번 국감에서 불법 공매도 여부를 꼼꼼히 따질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정일문 사장과 한투에게는 행운(?)인지 최종 결정에서 국감 증인 채택이라는 올가미를 벗어났다. 이를 두고 한 정치 평론가는 “국민의힘 측은 정 사장의 증인 채택에 적극적이었다”며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호남 기업인 한투와 광주 출신 정 사장을 염두에 두고 증인 채택을 무산시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는 이어 “5대 시중은행장, 그리고 다른 금융권 인사들을 증인으로 채택. 꼼꼼히 따질 것은 따져서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자칫 금융권 인사들을 불러서 ‘면박 주기’나 ‘망신 주기’로 엇나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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