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 모르는 물가·환율·금리 인상 압박
기업환경 악화-무역수지 적자 우려 ‘지뢰밭’
매출 적고, 신용등급 낮은 中企에 더욱 큰 압박
당국 "최적 정책조합으로 대응"...백년하청?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만에 1400원선을 돌파해 22일 오후3시30분 1409.7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사진은 이날 KB국민은행 여의도 딜링룸 모니터에 장마감 원달러 환율이 표시된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지속적인 물가·환율·금리 인상으로 우리 경제가 비틀거리는 가운데 미국이 기준금리를 다시 0.75%p 인상, 대내외 경제 상황이 더욱 심각한 상태에 돌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금리가 우리나라보다 0.625%p 높아지면서 환율 인상으로 빚어지는 수입물가 폭등과 물가인상 압박 심화, 이에 따른 불가피한 금리인상 압력의 증가로 가계를 옥죄는 한편 기업들, 특히 대응력이 미약한 중소기업의 경영악화는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사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기준금리를 0.75%p 인상했다. 잇따라 3번째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것이다. 한·미 금리차는 0.625%p로 재역전됐다.

“물가·환율·금리 인상 압박 지속”

이에 따라 한국은행은 22일 오전 이승헌 부총재 주재로 시장상황 점검회의를 가졌다. 미 FOMC의 기준금리 인상이 미칠 국제금융시장 상황과 국내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이 부총재는 회의에서 “미국 정책금리 75bp 인상은 시장 예상치에 부합했지만 향후 금리전망과 파월 의장 발언 등이 ‘hawkish(매파적)’한 것으로 평가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욱이 FOMC의 금리인상 전망을 나타내는 점도표상 정책금리 전망수준이 중간값 기준 연말 4.4%, 내년말 4.6%로 상향 조정된 상태라 국내 기준금리 인상이 점쳐지고 있다.

이 부총재는 "당분간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면서 큰 폭의 정책금리 추가 인상이 이어질 수 있다"면서 "국내 금융·외환 시장에서도 미 연준의 정책금리 긴축의 폭과 속도에 대한 기대변화, 주요국 통화의 움직임, 중국 경기둔화 우려 등에 따라 큰 폭의 변동성을 보일 것으로 판단된다"고 전망했다. 이는 이 총재가 지난달 기자간담회에서 “당분간 0.25%p씩 점진적 인상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던 것과는 달리, 다음달 12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스텝’도 나올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를 암시하듯 이 부총재는 “금융·외환 시장의 상황 변화에 따른 단계별 비상계획을 철저히 점검하는 한편 금융·외환시장 상황에 대한 정보를 정부와 긴밀히 공유·협력하고 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경우 적시에 시장안정화 조치를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과 금리격차를 줄이고, 환율 인상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도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환율 인상, 기업 환경 악화·무역수지 적자 폭증 ‘지뢰밭’

Fed의 기준금리 ‘자이언트 스텝’ 여파로 이날 오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미 연 2009년 3월 31일 이후 처음 1400원을 넘어섰다. 게다가 10월에는 원·달러 환율이 더 치솟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다음달 베이비스텝(기준금리 0.25%p 인상)이나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밟을 경우 원·달러 환율이 1410원~1434원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봤다.

걷잡을 수 없는 환율 인상으로 국내 기업들은 경고음을 넘어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일반적으로 달러 가치가 오르면 수출기업은 원화 환산 매출과 이익은 증가해 기업에 도움이 된다. 일례로 지난 2분기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기업이 대금을 달러로 결제 받는 과정에서 고환율로 인해 영업이익이 늘어나는 효과를 봤다.

그러나 현재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이 함께 나타나고 있어 환율 상승은 되레 기업에게 비용 부담의 짐을 얹어 수출기업에게는 악재로 작용될 것으로 분석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21일 내놓은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무역수지 및 환율 전망' 보고서 결과에서도 이런 우려를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의 3분의 2(66.7%)가 고환율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원자재가격 상승 등 환율로 인한 비용부담이 수출증가를 상쇄’할 것이라고 파악했다. ‘비용부담이 더 크다’는 응답도 26.7%나 나왔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상반기 고환율 등으로 인해 기업들의 생산비용은 전년 대비 8.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나 2009년(10.8%) 이후 최대 증가폭을 보였다.

이처럼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기업들의 생산비용 부담은 무역수지를 악화시킨다. 리서치센터장들은 올해 연간 무역수지가 281억7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응답자 40%(6개 증권사)는 적자 규모가 3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1956년 무역수지 통계 집계 이래 최대 수준이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133억 달러, 1996년 외환위기 직전의 206억 달러 적자를 큰 폭으로 상회한 액수다.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4분기 무역수지 적자가 개선되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지만 적자 기조는 내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응답 증권사 중 90%인 13개 증권사가 적자폭 정점이 8~11월에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다만 증권사들은 평균 내년 2월까지 적자 기조가 계속돼 앞으로 5~6개월 간 수출보다 수입이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달러 환율의 최고가는 평균 1422.7원으로 내다봤다. 최고 1480원에 이른다는 예상도 나오면서 환율 상승이 수출 증가를 상쇄하게 될 것으로 봤다.

전경련 유환익 산업본부장은 “무역 적자와 고환율은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큰 위협”이라며 “금융 당국은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기업들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규제 개혁, 세제 지원 등 경영 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3高 현상’, 특히 중소기업에 부담

미국의 3연속 ‘자이언트 스텝’에 따른 고금리도 문제다. 한미 금리 재역전 상태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올릴 경우 기업들의 이자비용은 불가피하게 증가할 수밖에 없다.

대한상공회의소 연구기관인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는 21일 발표한 ‘기업 생산비용 증가 추정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한은이 빅스텝에 나서면 기업들의 대출이자 부담 규모는 약 3조9000억원 늘어날 것으로 관측했다. 이 보고서는 특히 매출 규모가 크지 않고 신용등급이 높지 않아 자금조달 시 주식·채권 발행보다 은행 대출에 크게 의존하는 중소기업의 피해가 클 것으로 내다봤다. 기준금리 0.5%p 인상시 대기업은 1조1000억원, 중소기업은 2조8000억원 가량 대출이자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지난 상반기 생산비용 증가율은 2009년(10.8%)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지난 10년 간(2011~2021년) 전 산업 생산비용 증가율 평균(1.9%)의 4.6배 수준에 달했다.

보고서는 “하반기에도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고 임금인상 압력도 커져 기업의 생산비용 충격이 지속될 것”이라며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직면한 기업들은 올해 투자계획을 전략적으로 연기하거나 축소하고, 리스크 관리에 주력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엎친 데 덮치는 격으로 미국의 금리 인상 속도가 가파르고 원화환율 평가절하 기대심리에 따라 외국인자금이 유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국인자금이 대폭 유출될 경우 원·달러 환율은 더욱 높아져 원화의 가치가 더욱 떨어지고, 그에 따른 기업의 비용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경연 추광호 경제정책실장은 “한·미간 기준금리 역전에 따른 환율 상승압력을 완화하기 위해 기업의 수출 경쟁력을 제고하고, 원자재 수급 애로를 해소하는 등 무역수지 관리 중심의 외환시장 안정대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일 중소벤처기업부는 복합위기 대비 기업리스크 대응 전략을 발표했다.

리스크 식별 및 진단·평가 단계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한 완화적 통화정책이 전 세계적인 고물가 상황을 일으켰고, ▲미국을 중심으로 금리 인상과 이에 따른 달러 강세의 상황이 국내 중소기업·소상공인 회복·도약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저성장·양극화 우려를 낳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 상황에서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리스크 대응·관리 및 모니터링 단계에서는 중소기업, 벤처·창업, 소상공인 분야별 추진전략과 데이터 기반 모니터링 체계를 마련, 데이터 기반 구축과 관련해 중소기업 속보성 통계지표 대시보드를 다음 달부터 공개·운영한다. 아울러 조기경보 체계 구축을 통한 지역 위기징후 모니터링 강화와 벤처기업 경기전망을 파악할 계획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10대 주요 정책 등을 통해 기업리스크 대응 전략을 구체화해 나가고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분야에 대한 선제적 점검과 진단, 현장애로 과제에 대한 맞춤형 지원을 차질없이 이행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추 부총리 “불확실성 지속 가능성, 최적 정책조합으로 대응”

앞서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22일 오전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금융·외환시장의 높은 불확실성이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내년 이후의 흐름까지 염두에 두고 최적의 정책조합을 찾아 대응하겠다“고 했다.

또한 추 부총리는 “미국·유럽 등의 고물가 대응을 위한 고강도 금융긴축이 가속화되고 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황 악화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면서 불확실성이 장기화 되는 원인을 설명했다.

아울러 지난 8월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도 비쳤다. 추 부총리는 “8월 경상수지가 다소 우려스럽게 나타날 수 있다”면서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최근 환율 급등과 관련, 추경호 부총리는 “최근 환율 상승에 따른 투기 심리가 확대되는 등 일방적인 쏠림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면서 사실상 구두 개입, 시장 개입을 하겠다는 의지를 암시했다.

앞서 지난 16일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주최한 ‘중견기업 CEO 오찬 강연회’에서 ‘최근 경제 상황 및 정책 방향’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최우선 정책 목표인 물가 및 민생 안정을 위해 가용한 수단을 총동원하고,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를 통해 침체된 경기를 끌어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으로 늘어난 중견·중소기업, 서민·중산층의 부담이 빠르게 완화되도록 법인세와 소득세 개편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은은 구체적인 대응책으로 국민연금과 14년 만에 통화스와프를 추진하기로 했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가 원화 약세 압력을 키운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두 기관이 환율 방어를 위해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통화스와프 계약이 성사될 경우 국민연금은 한국은행에 원화를 제공하고, 외환보유액을 통해 공급받은 달러로 해외 투자를 할 수 있게 된다. 사실상 국민연금이 한국은행에서 빌린 달러로 해외 투자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정책당국의 대책에 대해 한 중소기업 대표는 “정부는 전반적으로 ‘늑장대응’의 양태를 보이면서도 습관처럼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다”면서 “하지만 때늦은 대책이라도 ‘중소기업계’라는 윗목까지 데우기 위해서는 ‘백년하청(百年河淸)’만 반복될 뿐이라 올 겨울을 걱정하는 유럽보다 나을 게 없다”고 안타까운 속내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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