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칼럼니스트
고양생명의전화 상담 매니저, 심리학자

이선미 칼럼니스트
이선미 칼럼니스트

“가끔 모든 사람에게 그들이 없어도 내가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하면 우정이 더 돈독해질 것이다. 아니, 실은 대부분의 사람을 대할 때 이따금씩 약간의 무시를 하는 것도 나쁠 게 없다. 그러면 그들은 나와의 우정을 더욱 가치있게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로 누군가를 높이 평가한다면 그 사람한테는 그 사실을 숨겨야 한다. 왜냐하면 누군가에게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면, 사람은 고사하고 늘 애정을 갈구하는 개(dog)조차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말이다. 스마트폰 시대에 어느새 ‘카톡’ 은 우리 일상의 가장 가까운 소통 매개체가 되었다. 처음 ‘카톡’이라는 단어가 생소한 시절 그저 ‘무료’라는 말에 너나없이 가입했다. 이젠 이 신통한 매개체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젠 핸드폰을 묵음으로 놓지 않으면 ‘까똑, 까똑’ 하는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 되었다. ‘카톡’의 각종 이모티콘이 인기 상품이 되었고, 한때 인기를 끌던 이모티콘은 눈 깜짝할 사이 다시 옛 유물이 되고 만다. 센스있는 사람이라면 최신 버전의 이모티콘은 기본이다. 새로 만들어지는 ‘신조어’나 ‘신종 언어’를 사용해야 시대에 맞는 사람쯤으로 여겨진다. ‘카톡’에 문자를 보내고 바로 오지않으면 그 또한 괴로운 일이다. 하루 종일 답신을 기다리느라 할 일마저 제대로 못한다.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다.

지금 우린 외로움을 달래려 서로가 너무 가까워지다보니, 오히려 더 외로워한다. 디지털 시대의 역설이다. 디지털 문명 덕분에 과거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구속과 규제 속에 살고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다닌다. 인간 행동의 온갖 측면을 규제하는 제도와 법규도 그 어느 때보다 많다. 움직임 하나하나, 생각 하나하나까지 드러나고, 제약을 받다보니 늘 신경쓰이고 때로는 좌절을 느낀다. 하지만 자업자득이랄까. 우리는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사이 자발적으로 통제의 울타리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이다. ‘나’를 감추고 싶어도 늘 온 세상에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시대다. 그 속에서 서로를 견주다보니,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인정의 욕구’도 그 어느 때보다 불타오른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사람이든, 제 아무리 좋은 사물이나 재물이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게도 하지 말자. 참 그럴 듯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인간관계가 항상 매끄럽고 세련되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는게 문제다. 때로는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어설픈 감정들이 사람 간에 오가곤 한다. 그러다가 죽고 못살던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적당한 거리두기는 ‘코로나’뿐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에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디지털시대엔 참 어려운 이야기다. 고화질 TV나 스마트폰, 심지어 가상세계에서마저 ‘나’의 은밀한 사생활들이 타인들에게 가감없이 노출되곤 한다. 말하지 않고 감추는 것보단, 모든 것을 노출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 있다. 대중적 관음증이 곧 ‘사회성’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우리에겐 ‘편지’라는게 있었다. 편지 쓰기는 불편하고 쉽지 않은 ‘노동’이었다.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한 후 빨간 우체통에 넣어지면 그나마 다행이다. 걸러지고 걸러낸 생각들을 추리고 추려 편지에 담았지만, 때로는 끝내 부치지 못하고 휴지통에 버리기도 했다. 편지는 즉각적이지 않고 오랜 시간의 이야기들을 담은 선물 바구니였다. 사람의 마음을 더 애닳게 하거나 그립게 하거나 보고싶게 만들었다. 상상력이 동원되었고, 이야기는 더 증폭되었다. 그것이 상대에게 전달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기에 더욱 소중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표현되고 보여지는 시대다. 그렇다고 다시 시대를 거꾸로 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디지털 도구와 매체를 능동적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일종의 ‘디지털 리터러시’라고 할까. 디지털 시대야말로 나의 언어를 다듬고 정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카톡’을 보낼 때도 좀 더 신중히 생각하고, 내 감정을 한번 더 다듬어 보내면 어떨까. ‘보내기’를 누른 문자는 다시 되돌릴 수 없다. 너무나 빠른 세상에서 ‘느림’이 회자되고 있지만, ‘느림’ 아닌 ‘정제’라는 말로 대체해 봄직도 하다.

때로는 스마트폰과 디지털도구로부터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디지털 매체를 가까이도, 멀리도 하지 말자.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오지않는 답신을 너무 기다리진 말자. 대신 혼자서 지내는 시간도 중요하다. 그래서 나만의 충만함을 주체적으로 만들어 보자. 참으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의 지혜가 필요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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