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무역, ‘재생에너지 100%사용 전력으로 생산한 제품만 거래’
전세계 급속 확산…국내선 삼성 비롯 24개 기업만 가입
국내 재생에너지 미미한 수준, “방치하면 기업들 해외탈출 이어질 것”

해상풍력발전소.(사진=두산중공업)
해상풍력발전소 [두산중공업]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IRA)에 이어, 완전한 재생에너지 전력 사용을 의무화한 ‘RE100’이 우리 경제의 또 다른 장벽이자 ‘발등의 불’이 되고 있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토론회에서도 ‘이슈’가 되었으나, 최근 삼성이 전격적으로 RE100 가입을 선언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주요 선진국은 물론, OECD 국가 중에서 한국은 재생에너지 비율과 RE100 가입률이 가장 낮아서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미 2022년 8월 현재 세계 ‘글로벌 기업’ 381곳이 RE100에 가입한 상태다. 사실상 ‘포브스’지 500대 기업에 들만한 곳 중 5분의4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들은 세계 경제를 좌우하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 기업은 특히 자신들에게 납품하는 업체들에게도 RE100 준수를 요구하고 있다. 즉,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만을 사용하여 만든 제품만을 수입하거나 구매한다는 방침이다.

애플이 대표적인 사례다. 진작에 RE100에 가입한 애플은 자사 제품에 들어가는 칩을 비롯해 모든 구매 품목에 대해 RE100 준수를 의무화하고 있다. 이 회사는 늦어도 2030년까지는 모든 자사 납품업체나 구매 품목에 대해 재생에너지 100% 사용 전력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삼성이 뒤늦게나마 RE100 가입을 선언한 것도 그런 점이 크게 작용한 때문”이라는게 업계의 해석이다.

앞서 국내 기업들도 2020년부터 RE100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는 했다. 재생에너지를 강조한 문재인 정부 당시의 분위기 덕분에 현재까지 24개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태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정부가 에너지 전환을 얘기했는데도 사실상 대부분의 기업들은 ‘먼산’을 보고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국제적으로 RE100이 급속히 확산되고, 무역 거래의 필수조건이 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다급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국내 재생에너지 비율이 미미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 “전 정부 시절에 최종적으로 (재생에너지 비율이) 30%였으나, 이것도 국제 기준으로 보면 적은 편”이라면서 “그러나 새 정부 들어 21.5%로 비율을 떨어뜨리고 원전 비중을 올렸다.”고 상기시켰다. 그렇다보니 삼성전자 한곳이 1년에 쓸 정도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에도 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말기에 태양광을 독려한 덕분에 그나마 연간 26~27테라와트 용량을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는 삼성전자의 1년치 사용량 26테라와트에도 채 못미칠 용량이다. 나머지 무역에 의존하는 수 많은 국내 기업들의 수요를 채우는 것은 현재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삼성의 경우 이미 해외 공장을 많이 두고 있어, 이들 국가의 재생에너지 정책에 따라 별 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삼성 등 대기업들은 만약 국내에서 RE100조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해외로 기지를 옮기는 사태도 잇따를 것”으로 우려하기도 한다. 이는 미국의 IRA에 이어 우리 기업들의 또 다른 ‘엑소더스’를 유발하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삼성전자의 라이벌인 대만 TSMC는 2020년 8월에 이미 RE100을 선언했다. 각종 보도와 자료를 보면 이 회사는 당시 920메가와트의 해상풍력단지에서 나오는 전력을 구매했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하나 정도 크기에 해당하는 발전량으로서, 이 정도 규모는 그야말로 역대급이란 평가다. 이 외에도 많은 대만 기업들은 재생에너지 전력화를 서둘러 완성했다. 역설적으로 이같은 대만의 RE100 실천을 뒷받침한 것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기업들의 기술 덕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많은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국은 세계 정상급의 해상풍력과 태양광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는데 동의하고 있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풍력 터빈과 발전기 기술과, 타워나 하부구조물, 해저케이블 시공 능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그래서 현재까지 대만에 납품한 규모만 3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이 외에 북유럽을 포함한 유럽과 북미 지역 등에도 한국의 풍력발전 기술이 대거 수출되고 있다. 그러나 해외 각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 기술이 정작 국내에선 외면받아온 실정이다. “그래서 더욱 서둘러 우리 기술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급속히 늘려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 정부는 원자력 발전 비율을 30%로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RE100에 원자력발전은 포함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일부 원자력 전문가들은 언론 등을 통해 “CF100, 탄소제로인 카본프리를 100% 충족시키는 조건으로 원자력발전을 가속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선 이런 주장이 나온 적이 없다. 그 때문에 “이미 RE100에 가입한 381개 글로벌 기업들을 상대로 일일이 (CF100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RE100 가입 글로벌 기업들은 풍력발전과 태양광 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바이오 연료는 재생이 쉽지 않다는 이유로 RE100에 포함되지 않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해는 RE100을 고려한 나머지, 정부가 전력회사들의 재생에너지 의무 사용 비율인 ‘RPS’를 설정하기도 했다. 이는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를 발전원료로 사용하는 비율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전력회사가 고정가격으로 실시한 태양광 입찰은 처음으로 미달 사태를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태양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현 정부와 일부 여론이 작용한 탓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는 또 다른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재생에너지 정책을 서두르지 않고, 기업들의 RE100가입도 소홀히 할 경우 앞으로 5년 후쯤에는 글로벌 기업이나 다른 주요국들과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세계 주요 국가나 기업과의 무역거래는 포기해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수출입에 의존하며, GDP 대비 세계 최고의 무역의존도를 보이고 있는 한국으로선 치명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는 우려다.

그런 가운데 대한상의도 이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 나름의 위기의식을 보이기도 했다. 대한상의는 해당 보고서를 통해 “회원 기업들 300개 이상을 조사해 보니 대기업들 기준으로는 거의 30% 정도가 이미 고객들로부터 (RE100 가입을) 요구받고 있다”면서 사실상 정부의 과감한 재생에너지 정책을 촉구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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