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2분기 제조업 재고지수 18.0% 증가... 4분기 연속 상승'
재고자산 1년새 39.7%↑, 비금속광물, 석유정제, 전자·통신장비 재고 급증
지난해 하반기부터 생산-출하 ‘디커플링’...생산, 오버슈팅 이후 급감시 경기침체 직결 우려
수출전략 조기 실행, 내수 진작책 마련 필요...기업 고비용구조 해소 방안 추진해야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경상남도 소재 석유정제업체 A사는 최근 늘어나는 재고 때문에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정제마진 회복으로 큰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A사는 유가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 원유 구매량을 늘리고 설비가동률도 높이는 등 경기 회복에 대비해 왔는데, 올해 상반기 이후 경기침체 위험이 커지면서 수요가 줄어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것.

A사 경영지원팀장은 “유가 상승에 대비한다고 선제적으로 원유 구매량을 늘린 게 오히려 독이 됐다”며, “재고는 느는데 수요는 좀처럼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올해 매출 목표 달성은 물론이고 영업이익을 흑자로 가져갈 수 있을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소재 통신기기부품 제조업체 B사는 지난 여름휴가 이후부터 공장 가동률을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조만간 더 줄일 예정이다. B사 대표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고가 늘어나기 시작했는데 올해 상반기 들어서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공장 내부에 적재 공간이 없어 주변 창고까지 임대하고 있지만 더 이상 보관할 곳이 없다”고 말했다. “상반기에 자금이 다소 모자라 원자재 확보가 늦어졌는데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껴질 정도”라는 말도 덧붙였다.

B사 대표는 “2~3개 해외 업체와의 수출계약이 진행 중인데 만약 체결되면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4분기부터는 일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급휴직에 들어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최근 기업재고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두고 대외변수에 따른 일시적 조정이 아닌 본격적인 경기침체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대한상공회의소(회장 최태원)는 14일 ‘기업 활동으로 본 최근 경기 상황 평가’ 자료를 통해“지난 2분기 산업활동동향의 제조업 재고지수 증가율(계절조정 전년동기비)이 18.0%를 기록해 분기별 수치로는 외환위기 직전인 1996년 2분기(22.0%) 이후 26년만에 가장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재고는 경기 변동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줄어들게 마련이지만 최근 재고 증가 흐름은 지난해 2분기를 저점으로 4개 분기 연속 상승하는 이례적인 모습이며 이처럼 분기 기준 장기간 재고지수가 상승세를 보인 것은 2017년 이후 4년만에 처음이라고 설명했다.

기업 규모별로는 작년 2분기 대기업의 재고지수 증감률이 -6.4%에서 올해 2분기에는 22.0%로 치솟았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1.2%(’21년 2분기)에서 7.0%로(’22년 2분기) 상대적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제로 대한상의가 한국평가데이터에 의뢰해 매분기 재무제표를 공시하는 제조업체 상장기업(약 1400여개)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대기업의 재고자산은 지난해 2분기 61조 4770억원에서 올해 2분기 89조1030억원으로 증가해 중소기업 재고자산의 증가분(7조 4370억원→9조 5010억원)을 압도했다.

제조업 전체로는 지난해 2분기 대비 올해 2분기 재고자산이 39.7% 증가했으며, 세부 업종별로는 ▲‘비금속 광물제품’(79.7%) ▲‘코크스·연탄 및 석유정제품’(64.2%) ▲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58.1%) ▲‘1차 금속’(56.7%) 등의 재고자산 증가율이 특히 높게 나타났다. 특히 재고자산 물량이 가장 많은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제조업’의 경우 전체 제조업 재고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2분기 24.7%에서 올해 2분기 27.9%로 확대됐다.

대한상의는 보고서에서 “최근 재고가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①작년 하반기부터 코로나19 특수 대응 차원에서 공급을 늘렸고, ②국제유가·원자재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들이 원자재를 초과 확보해 제품 생산에 투입한데다, ③글로벌 공급망 차질로 인해 제품 출하가 늦어진 것이 기본 원인”이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단기적인 이슈들인 만큼 글로벌 수요만 받쳐준다면 곧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기업들이 기대해 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대한상의는 “문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글로벌 인플레이션, 미국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 등으로 글로벌 수요 기반이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를 반영하듯 제조업 생산지수와 출하지수는 4개 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출하의 감소폭이 생산 감소폭보다 더 커 생산-출하간 디커플링(격차)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판매(출하)가 줄어들면 제품이 쌓이고(재고), 기업들이 이에 맞춰 생산을 감소시켜 생산-출하가 비슷한 추세를 보이게 된다. 그러나 최근의 생산지수-출하지수 디커플링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다.

이는 기업들이 판매(출하) 부진에도 불구하고 생산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지 못하고 오버슈팅(Over-shooting)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분기 말부터 기업들이 일부 생산을 조절하고 있으나 재고가 이미 높은 수준이라 3분기부터는 생산 감소가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대한상의는 내다봤다. 기업들이 공장 가동률을 낮추게 되면 유휴 인력이 발생하고 그만큼 고용과 신규 시설투자가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미 상당수 기업은 올해 채용 및 시설투자를 재검토하거나 보류하는 추세다.

대한상의는 “우리 경제는 대외여건의 악화로 인해 수출증가율이 둔화되고 무역적자가 심화되는 등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는데다, 고물가와 금리 인상으로 내수 진작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기업 재고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동안 오버슈팅되어 왔던 생산이 급감할 경우 경기 급락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하반기 정책당국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졌다”라고 강조했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가용 가능한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정부가 최근 무역수지 개선, 중장기 수출경쟁력 강화 지원 등 수출 종합 전략을 발표한 만큼 이를 조속히 실행에 옮기는 한편, 코세페(코리아 세일 페스타)·동행세일 등 내수 진작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반기 중 마련·실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생산 감소, 고용·투자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규제·노동·금융·교육 등 구조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해 나가는 것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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