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객원 편집위원(한서대 교수)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정말로 큰일났다. 한국에서 만든 전기자동차는 앞으로 미국 땅에 발도 못붙이게 생겼다. 소위 ‘인플레 감축법’ 탓이다.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1000만원의 보조금을 준다면, 누가 한국차를 살 것인가. 최악의 경우 연간 10만 여대의 차를 미국에서 팔지못할 수도 있다.

배터리도 같은 처지다. 중국산 재료가 들어가거나,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의 원료가 아니면 미국 시장에서 퇴출된다. 미국 시장뿐 아니다. 이게 나비효과의 빌미가 되어, 유럽과 다른 지역에서도 한국산 전기차가 급격히 위상이 떨어질까 두렵다. 그야말로 국가적 재앙이 따로 없다.

전기차는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다. 자율주행과 접목된 IoT, 첨단 라이더와 센서, 엣지, 스마트 보안, 그리고 반도체와 배터리 등 디지털기술의 총화다. 그저 산업의 n분의 1이 아니다. 그 부가가치와 연관산업 효과로 보아, 한 국가 경제와 산업의 향방을 좌우한다. 그래서 세계 주요국들은 사활을 걸고 있다. 오죽하면 미국에서 2위로 치솟은 현대차를 질투한 일론 머스크가 ‘인플레 감축법’의 배후라는 소문까지 나돌까. 믿거나 말거나지만, 전기차를 핵심으로 한 디지털 모빌리티 시장 주도권 쟁탈전이 그 만큼 치열하다는 뜻이다. 미국이 염치불구하고 미래 훔치기에 나선데엔 그런 절실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대체 사정이 어떠했길래, 세계 주요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 중에서 한국기업만 빼놓았을까. 알고 보면 ‘우리 정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한국정부를 탓할 수 밖에 없다. 간발의 차이로 미국의 ‘선택’을 받고 안정권에 들어간 독일이나 일본과도 비교된다. 약삭빠른 일본은 지난 5~6월경부터 이미 미 의회와 백악관을 상대로 민간과 기업, 정부가 하나가 되어 총력전에 나섰다. 특히 최종 상원 통과의 ‘키’를 쥐고 있는 조 맨친 의원을 표적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일본의 도요타와 혼다는 ‘예외’로 보조금 혜택을 따낸 것이다. 전기차에 있어선 한국보다 훨씬 뒤처졌던 일본으로선 상황을 역전시킬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

메르켈의 뒤를 이은 울라프 슐츠 독일 총리도 발로 뛰었다. 우스갯 소리로 ‘58년 개띠’ 답게 활력적이라고 할까. 배터리 광물 원산지 문제를 풀기 위해 직접 캐나다로 날아갔고, 현지 리튬업체와 어렵사리 거래를 트기로 했다. 메이저 완성차업체들도 정부와 혼연일체가 되어, 워싱턴 조야를 헤집고 다녔다. 덕분에 독일은 자국 7개 기업들이 보조금 대상이 되면서 사실상 미국 기업들과 똑같은 고지에 서게 되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 10년 쯤엔 미국과 독일, 일본, 유럽이 세계 전기차 시장, 아니 미래의 자동차 문화를 선도할 판이다. 20세기의 공고했던 세계 내연기관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그대로 반복되게 생겼다. 그 와중에 한국은 또 다시 변방의 ‘을’이 될 것인가.

그래서 더욱 한국정부가 원망스럽다. 진작에 미 의회의 실력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내한했을때도 그저 무심했다. 그 무렵은 일본과 독일의 의회 로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러다가 바이든이 법안에 서명한 후에야 비로소 바빠졌다. 바빠졌다기 보단, 지하철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 여느 누구마냥 허둥대고 있다. 차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이 급히 미국으로 갔고, 국장급으로 된 정부합동대책반도 미국을 찾았다. 그나마 한계가 있는 실무자들이다. 일부 부처 장관과 국무총리가 방한한 미 의원들을 만났고, 급기야 한·미 안보전략회의에서까지 우리쪽 안보책임자가 ‘선처’를 부탁했다. 그러나 때는 이미 한참 늦었다. 우리로선 이제 마땅한 선택지도 없다. 리튬과 니켈, 반도체 재료를 당장 중국 아닌, 다른 원산지로 바꾸는 것도 난망하다. 그런 갑갑한 현실이 벌써 2주가 넘었다.

이 즈음 미국의 속셈은 따로 있다. 겉으론 탄소절감과 기후위기 극복이 명분이나, 중국을 세계 경제에서 배제시키는게 목적이다. 물론, 중간선거 승리를 노리는 바이든의 계산도 들어있다. 또한 전기차와 배터리의 생태계를 미국 중심으로 재구축한다는 의도도 분명하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게 있다. 앨빈 토플러가 말한 ‘물결 전쟁’의 패권을 노리는 것이다. 전기·전자의 제2의 물결에 이어, 지금 세계는 정보통신과 축지법보다 신통한, 가상 내지 탈(脫)시·공간기술에 목을 매고 있다. 바로 제3의 물결이다. 그런 물결을 타고 미래를 선점하며, 최후의 승자가 되려는게 미국 나름의 원대한 전략이다. 그 정초(定礎)가 될 법한게 디지털기술의 완성판인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다.

정부당국이라면 최소한 이런 정도의 시류쯤은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쩌랴. 이제라도 해법을 찾아야 하지만, ‘워싱턴’을 통해선 불가능하다. 요즘 우리나라처럼 모법 취지를 넘어서는 ‘시행령 정치’를 할라치면 모를까. 미국 정치에서 대통령 서명까지 끝난 모법을 하위법령으로 다시 변질시킨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국내 언론도 조용하다. 둔감한 건지, 아니면 정권 교체기의 쏟아지는 갈등국면에 취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블룸버그나 AP, NYT, 로이터, WSJ, 현지 외신들이 더욱 충실한 장문의 분석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은 IMF사태보다 심각하다. 당시엔 어떻게든 ‘IMF 극복’이란 희망을 보고 내달렸다면, 이번 일은 시간이 갈수록 국가경제의 핵심인 모빌리티 산업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그런 악몽이 현실이 되면 이 나라와 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참으로 정부와 정권의 국가 경영능력을 되돌아봐야 할 지경이다. 그 와중에 피해 당사자인 LG엔솔이나 현대차, SK온 등은 미국 현지에서 제 살길을 찾고 있다. 타국 업체와 합작하며, 모국을 탈출하고 있는 것이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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