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과 이민청, 양립 가능한가
...재외동포포럼 '정책토론회'
학계 등 민관 전문가 참석, 열띤 토론
법무부장관이 쏘아올린 '이민청 신설' 논의
750만 재외동포 사회 '당혹'
재외동포정책, '큰그림' '긴안목'으로 가야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사단법인 재외동포포럼(이사장 조롱제) 주최 '재외동포청과 이민청 설립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황복희 기자]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재외동포청 설립은 재외동포 사회의 오랜 숙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공약에 이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재외동포청 신설을 재확인하기도 했다. 이에 750만 재외동포들의 기대치가 한껏 고조된 시점에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다. 다름아닌 ‘이민청’ 신설이다. 윤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 5월 취임식에서 이민청 설립 검토를 들고나오면서다.

실세 장관이 쏘아올린 ‘공’에 뜨악해진 건, 기대감에 부풀었던 재외동포들이다.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은 성격 부터가 다르다. 전자는 해외에 거주하는 250만 대한민국 국적 소지자들을 포함해 750만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며, 후자인 이민청은 국내로 들어온 이민자, 즉 다문화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법무부 장관의 발언으로 재외동포청 신설의 당위성이 ‘재외동포청이냐 이민청이냐’로 옮겨붙은 양상이다.

이같은 국면에 3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사단법인 재외동포포럼(이사장 조롱제) 주최로 재외동포 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재외동포청과 이민청 설립 정책토론회’를 열어 관심을 모았다. 이날 오전10시 시작된 토론회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3시간 가량 이어졌다.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대표가 좌장을 맡은 가운데, 재외동포 사안을 20년가량 연구해온 임채완 전남대 명예교수와 윤인진 고려대 교수(사회학)가 발제자로, 곽승지 전 연변과학기술대 교수(정치학 박사),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 김태환 한국이민정책학회 명예회장(명지대 법무행정학과 교수), 지충남 전남대 세계한상문화연구단 연구교수 등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또 임종성, 이형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당혹감에 휩싸인 750만 재외동포

‘재외동포 문제는 계륵인가.’ 이날 토론회에서 임채완 교수의 이같은 문제제기는 재외동포청 설립을 두고 진행돼온 그간의 과정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재외동포청 설립은 매 대선때 마다 대통령 후보들의 단골공약으로 채택됐으나 정권이 들어서면 어느순간 슬그머니 없던 일이 돼왔다. 노무현 정부 때는 역점사업으로 추진되다가 좌초되는 등 정권 교체기 마다 논의의 대상만 됐지 결과적으로 불발이 되고마는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하와이 이민을 시초로 본 한국이민사 120년,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세계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120년전 인천항에서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밭으로 떠난 한인 노동자에서 부터 일제강점기 만주, 연해주 농업이주자, 60~70년대 독일로 건너가 외화를 벌어 모국으로 부친 파독 광부·간호사, 미국 투자이민, 유학생, 중동 건설노동자, 세계 각국으로 퍼진 무역 지사 직원  등등, 현시점 전세계 180개국에 750만 재외동포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들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모국을 향해 재외동포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처(處)’ 내지는 ‘청(廳)’ 단위의 컨트롤타워를 만들어달라고 하는 요구가 왜 실현이 안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해 발제자로 나선 윤인진 교수는 ‘전환기의 이민정책과 이민청 설립방안’이란 주제발표에서 재외동포청 설립을 위한 ‘사회적 합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윤 교수는 “국민공감을 못얻는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못하다”며 “(재외동포청 설립에 있어) 시민단체와 언론 등 영향력있는 집단과 인플루언서를 통해 국민여론을 형성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민여론이 어떤 태도를 갖고있는가’에 따라 정부의 정책추진이 적극성을 띨 수 있다는 지적이다. 윤 교수는 재외동포청 설립 등 그간의 선행연구에 있어 “제도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국민여론이 빠져있었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이민청이 화두 자리에 끼어들 수 있었던 것도 저출산, 노동인력 부족, 이주민 문제 등으로 인해 사회적 여론이 다문화정책을 다루는 이민청 신설의 필요성에 공감대가 모아지고 있는 배경이 뒷받침된 만큼 윤 교수의 이같은 지적은 설득력을 얻는다.

새 정부 출범 100일,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이 나란히 논의를 점하고 있는데 대해 곽승지 교수는 “지금 한국의 현실에서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이 둘다 만들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며 “선거때 외에는 별다른 관심을 못받는 등 무엇보다 사회적 관심에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재외동포청 설립을) 시혜적 관점에서 초점을 맞추다보니 절박함 내지는 시급함이 안느껴지는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문제 보다는 관심의 문제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외교부의 미온적 태도도 짚고 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외동포청 실현을 위해 발로 뛰어온 동포들은 실망감과 더불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31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사)재외동포포럼 주최  ‘재외동포청과 이민청 설립 정책토론회 모습.

이날 토론회의 논점이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의 양립’ 및 ‘어떤 방식으로 양립할 수 있을지’로 모아지자, 이효정 세계한인여성협회 총재는 “현 정부가 약조한 재외동포청 설치를 어떻게 구체화할지 논의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이민청과의 양립 내지는 재외동포정책을 이민청 산하에 두는 방안이 논의되는 것에 큰 실망을 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영국 거주 재외동포 김훈 씨는 “정치권의 이해타산에 의해 미루는데다, 재외동포기본법 제정이 안되고 있는 것이 재외동포청 표류의 원인”이라며 “재외동포들이 국내체류 및 비자관리 등의 대상과 동일시되는 것에 적극적으로 반대한다”고 어조를 높였다.

외교부 산하 재외동포재단을 이끌고있는 김성곤 이사장은 “이민청 산하로 갈바엔 재외동포재단으로 남아 설립 이래 지난 25년간 이어온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게 낫다고 생각한다”며 이민청이 재외동포정책을 다루는데에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앞서 김 이사장은 축사에서 “오늘 이 자리가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을 함께 논의하는 과정에서 ‘따로국밥’이 될지, ‘섞어찌개’가 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두 기관이 각각 따로 가야한다는 건지, 하나의 기관으로 통합돼 가야한다는 건지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재외동포청) 설립 보다는 어떤 내용과 비전을 담을 지가 더 중요하다”며 “750만 재외동포의 권익향상을 위한 노력 나아가 남북한 및 해외거주 한인을 포괄한 8500만 한인동포의 비전을 그릴 수 있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재외동포를 바라보는 시각, 그 중요성

전방위적 시대적 전환기에 750만 재외동포는 국가적 차원에서 소중한 '기초자산'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표밭'으로 보는 정치권의 시각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국가적 자원’으로 바라봐야한다는 의미다. 국적 소지 여부를 떠나 ‘한민족평화공동체’라는 비전에서 큰그림을 그리는 전환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임영언 재외한인학회장은 일본의 예를 들며 “일본의 경우 메이지시대 이후 해외로 나가 이민역사가 상대적으로 오래돼 거주국 정착 경향이 강하다”며 “재외동포 정책에 있어 외무성과 법무성의 역할분담이 확실한 가운데 재외동포들의 정체성 약화에 대비해 모국과의 끈을 어떻게 하면 놓치않게 하고 끌어당길 것인가에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 관료들은 그같은 관점에서 문화와 역사교육에 집중하며 장기적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채완 교수는 재외동포청이 해묵은 얘기가 되도록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해 UN 차별금지 규약, 중국과의 외교마찰, 부처 이기주의, 일부 국민거부, 병역의무 등 국민 4대의무 미준수 등을 거론하기도 한다. 국민적 공감과 이해를 위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다.

김성곤 재외동포재단 이사장은 “아웃바운드 코리안, 인바운드 코리안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재외동포청과 이민청으로 갈리는데 둘 다 글로벌 코리안”이라며 “한국이민사 120년이 흘러 이제 조국을 돌아보는 여유가 있는 재외동포들을 중심으로 조국을 위해 무엇을 기여할지도 같이 고민했으면 한다”고 제안했다.

토론회 좌장인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대표는 "전방위 FTA를 추구하는 자유무역국가인 대한민국이 ‘재외동포는 소중한 국가적 자산’이라고 말로만 할 단계는 지났다. 21세기에 저출산 인구절벽, 남북분단 등의 중차대한 국가과제를 앞두고 재외동포청 설립은 단순한 정부기구 설치의 문제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좀 더 큰그림으로 멀리 보며 풀어나갈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며 정부, 국회와 언론의 책임이 크다”는 말로 토론회를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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