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88칼럼/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수석연구위원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수석연구위원
중소기업연구원 백필규 수석연구위원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전체 사업체수의 99%, 종업원수의 88%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서 ‘9988’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말은 별로 자랑할 게 못된다. 다른 선진국의 사업체수 비중도 99%로 비슷하지만 종업원수 비중은 미국 49%, 독일 62%, 일본 76%로 우리나라보다 상당히 낮다. 그만큼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이 많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는 인구당 사업체 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고 사업체당 종업원 수는 가장 적은 편에 속해 전형적인 영세기업 중심의 나라다. 이렇다보니 경쟁력이 취약한 영세기업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생존 자체가 쉽지 않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또 강자들이 압도적인 교섭력을 갖고 있는 시장에서 불공정거래를 할 수 밖에 없고 대응능력도 부족해 혁신을 통한 경쟁력 제고보다는 정책보호에 의존하는 일도 적지 않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먼저 기업의 출발인 창업부터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창업의 특징을 요약하면 준비 안 된 창업, 생계형 창업, 나홀로 창업이라고 할 수 있고 창업지원정책도 이런 창업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 이래서는 창업생존율 최저, 영세기업 비율 최고, 대중소기업간 격차 최고라는 우울한 현실을 바꾸기 어렵다.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창업을 준비된 창업, 기술형 창업, 힘모아 창업으로 바꾸어야 한다. 즉 취업중심 패러다임을 창업중심 패러다임으로 바꾸고 창업정책지원도 준비된 창업, 기술형 창업, 힘모아 창업을 집중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말은 꼭 강조하고 싶다. 창업의 변화만으로 이야기가 끝이 아니다. 창업한 기업이 강소기업이나 중견기업이 되려면 성장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기업성장을 위한 기업 스스로의 혁신노력이나 이에 대한 정책지원은 크게 부족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인력난을 호소하면서도 인재를 끌어들일 인적자원 관리에는 관심 없는 중소기업이나, 중소기업을 벗어나면 지원은 축소되고 규제만 확대된다는 이유로 성장보다는 난장이 피터팬의 길을 택하는 중소기업이 적지 않고, 정책지원도 성장가능 기업을 제대로 식별하여 집중 지원하기보다는 기업정보가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발 빠르게 신청하는 기업에 소액살포식의 ‘묻지마 지원’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 크고 강한 기업에게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의 시정도 지지부진한 상태여서 중소기업 성장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새 정부는 공정경제, 혁신성장을 통해 지금까지의 이런 질서를 바꾸고 중소벤처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만들겠다며 중소벤처기업부도 출범시켰지만 5개월이 지나도록 그 수장도 결정되지 않고 있다. 하루빨리 중소벤처기업중심 경제구조의 비전과 전략을 가진 수장이 결정되고 지금까지의 편향된 대기업 중심의 경제 질서를 혁신하여 제대로 된 창업과 제대로 된 중소기업 성장이 이루어져 ‘9988’을 넘어 강소기업과 중견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선진국형 경제구조가 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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