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최근 보고서…'미국 물가·경기상황, 우리와 달라'
독립적 통화정책 주장, “과거 사례 보면 자본유출 위험도 크지 않아”
'원화절하로 수출과 내수 경쟁력 커져, 경기회복 도움'

사진은 퇴계로에서 바라본 한국은행 본관 모습.
서울 퇴계로에서 바라본 한국은행 본관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빅스텝 내지 자이언트 스텝까지 거론되는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 속에서 지난 4월과 5월 한국은행도 두 차례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앞으로도 한은은 추가로 인상 수준과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의 금리인상 속도에 맞추어 한국의 통화정책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한국의 거시경제 여건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특히 KDI(한국개발연구원)는 자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은 굳이 미국 금리를 따라갈 필요없이, 우리 경제 상황에 맞는 ‘독립적 통화정책’을 펴는게 바람직하다”면서 ‘독립통화정책론’을 앞장서 주장해 관심을 모은다.

KDI의 정규철 선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과 한국의 정책 대응’이란 보고서에서 “미국의 금리인상이 한국 거시경제에 끼치는 영향은 금리인상의 요인과 한국의 통화정책 대응에 따라 상이한 것으로 분석된다”며 이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미국을 따라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되는 반면,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경우 일시적인 물가상승 외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특히 “사회후생의 관점에서 미국 금리에 동조하는 정책보다, 국내 물가와 경기 여건에 따라 운용하는 독립적인 통화정책의 효용이 더 큰 것으로 분석됐다”는 설명이다.

정 선임은 “미국과 소규모 국내 경제로 이루어진 ‘2국가 모형’을 설정하고, 통화정책의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명목가격 경직성(불변)이 반영된 뉴케인지언 일반균형모형을 이용했다”고 밝히며 ‘독립통화정책론’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미국경제에 동일한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한국의 통화정책 대응에 따라 파급 영향이 달라질 수 있으며, 이를 독립적인 통화정책과 금리 동조화 정책으로 나누어 분석했다. 그 중 독립적인 통화정책은 대내외 충격이 발생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국내 물가와 경기의 안정을 목적으로 삼는 정책이다. 즉, 한국의 통화정책 운용체계가 일시적인 물가변동에 즉각 대응하기보다는 중기(中期)적 시계에서 물가안정을 추구하고 있으므로, 인플레이션 대신 ‘기대 인플레이션’의 안정을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금리 동조화 정책은 미국의 기준금리에 맞추어 한국의 기준금리를 조정함을 뜻한다. 이는 달러화 가치와 연동, 결과적으로 환율이 안정되는 정책임엔 분명하다. 사실상 고정환율제도와 다름없는 효과를 나타낸다.

그러나 미국 (실물수요)증가를 동반하지 않고 금리가 ‘외생적’(제도적)으로 인상되면, 미국을 따라 금리를 인상할 경우 우리 경제에 경기 둔화가 그대로 파급된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할 경우 일시적인 물가 상승 외에는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게 정 선임의 분석이다. 이에 따르면 금리 동조화 정책에서는 미국과 동일하게 금리가 인상되므로 경기와 물가에 미국과 동일한 하방 압력(경기침체, 물가하락)을 받는다. 반면에 독립적인 통화정책에서는 일시적인 인플레이션 상승을 용인하면서, 기준금리를 거의 조정하지 않음에 따라 국내 경기와 인플레이션은 비교적 빠르게 안정될 것이란 기대다.

물론 그런 경우 한국 금리가 미국 금리보다 낮기 때문에 처음엔 환율과 인플레이션이 상승한다. 그러나 정 선임은 “환율 상승은 시장에서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면서 경기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그에 따라,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미국 수요 감소의 부정적 영향을 상당 부분 상쇄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더 진행되면, “금리가 낮은 원화가치가 점차 절상되고, 수입물가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인플레이션이 빠르게 안정될 것”으로내다봤다. 결국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중기적 시계의 물가안정에 더 효과적이고, 경기 침체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 선임은 그래서 “최근 우리 경제의 상황을 보면, 물가안정목표를 큰 폭으로 상회하는 높은 물가상승세가 지속되고 있어, 물가안정을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요구되긴 한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은 한국보다 물가상승률이 높고, 반면에 경기회복세도 견고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양국 간의 기준금리 격차는 용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으면 자본이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그는 2000년대의 사례를 들어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1999년 이후 한국과 미국의 금리 격차로 인해 대규모 자본유출이 발생한 적은 없다. 1999년 6월~2001년 2월의 기간, 그리고 2005년 8월~2007년 8월과, 2018년 3월~2020년 2월에 한국보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았다. 그러나 그 기간마다 대규모 자본유출과 외환시장 경색은 발생하지 않았다. 특히 “최근 한국의 대외건전성은 비교적 양호하다고 평가되고 있어, 급격한 자본유출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된다”는 얘기다.

오히려 “미국의 금리인상과 부분적인 자본유출에 따른 환율 상승(원화가치 절하)으로 인해 일시적인 물가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겠으나, 국내 시장에서 (수입 상품보다) 한국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수출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등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면도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또 물가상승률이 더 높고 경기회복세가 더 강한 미국과 유사한 정도의 가파른 금리인상이 우리 경제에 요구되는 상황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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