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령 전통’ 농협, 언제 바뀌나...금융권 '모럴 붕괴'
‘횡령 전통’ 농협, 언제 바뀌나...금융권 '모럴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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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올해 드러난 것만 8건...
직원들의 '횡령 놀이터' 자조·비난
금융권 전체로 퍼진 횡령 등 금융사고
'모럴해저드' 넘어 '모럴콜랩스'
내외부 통제·감독 ‘허술’...고삐 단단히 죄야
농협중앙회 충정로 본사   
농협중앙회 충정로 본사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농업협동조합법 제1장 총칙, 제1조(목적)에 따르면, “이 법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조직을 바탕으로 농업인의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를 향상시키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러나 최근 지역 농축협에서 잇따른 횡령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농협 내부에서는 농업인과 농업을 위한, 농업인이 주체가 돼야하는 농협이 농민들이 아닌 농협 직원들의 ‘횡령 놀이터’라는 자조 섞인 비난이 나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위험)’를 넘어 ‘모럴 콜랩스(moral collapse, 도덕 붕괴)’에 이른 것이라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주 오래된 악습이 돼 버린 상황이다. 비단 농협 뿐만 아니라 우리은행을 비롯 금융권에서도 잦은 횡령 사건이 발생, 내부 감사를 포함해 자율규제 강화와 실효성 제고는 물론 금융감독원 등 외부 감시가 촘촘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올해 드러난 ‘농협 횡령’만 8번째

먼저 올 들어서만 농협의 횡령 사건은 당국과 중앙회가 공식 확인한 것만 8번째다. 27일 농협중앙회, 파주경찰서에 따르면 파주시의 한 지역농협은 ‘수십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30대 직원 A씨를 수사해 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경찰에 접수했다.

파주 지역농협에서 A씨는 재고 관리 담당자다. 이와 관련, 회계장부 작성 시 매입 재고자산을 실제보다 수십 배가량 부풀려 회사에 구매 금액을 요청하면서 수십억원에 달하는 지역농협 돈을 본인 및 차명 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의심 받고 있다.

지역농협 측은 회계장부와 재고가 일치하지 않은 데다 최근 금융권 내부 직원의 횡령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인식해 자체 조사를 실시한 결과, A씨가 무려 5년 전부터 회삿돈에 손을 댔다는 정황을 파악해 이를 신고한 것이다. 처음 확인된 횡령액은 17억4000만원 규모였다. 하지만 지난 주말 추가로 확보 자료를 분석한 결과, 빼돌린 회삿돈은 약 70억원이나 되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에 따라 농협중앙회는 정확한 피해 규모와 경위를 파악하기 위한 내부 감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피고소인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횡령 혐의를 시인, 횡령한 돈을 가상화폐(코인) 투자나 외제차 구입에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농협 측에 관련 증거 자료 제출을 요구한 상태로 고소인 조사가 진행 중”이라면서 “이후 수사를 통해 정확한 피해 규모 등을 파악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에는 경기 광주시 한 지역농협에서 30대 직원이 자금 출납 업무를 하면서 타인 명의 계좌로 공금을 수십 차례 송금하는 방식으로 회삿돈 약 40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 또한 지난 5월에는 경남 창녕의 한 지역농협 간부급 직원은 내부 전산시스템을 조작해 고객돈 9800만원 상당을 횡령했다가 적발됐고, 같은 달 전남 지역 농협직원이 농자재 보조사업비 중 1억2700만원을 빼돌린 사건이 이어졌다.

4월에도 경남 진주의 한 지역농협에서 근무하던 과장급 직원이 2년여에 걸쳐 농민돈 5800만원을 횡령한 사실도 밝혀졌으며, 같은 달 전남 장흥농협 과장은 공금 4억6000만원에 손을 댔다 들통났다. 지난 2월에는 경기도 수원시 하나로마트직원이 3년간 8억원을, 지난 1월에는 경북 청송영양축협 직원이 6억2000민원을 각각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올해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에도 농협의 금융사고 액수는 은행권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이 최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2021년 업권별·유형별 금전사고 현황'을 보면 농협은행은 금융사고 금액에서 다른 은행에 비해 ‘출중’하다.

이 자료를 살펴 보면, 2021년 금융사에서 발생한 금융사기·배임·횡령 등 금융사고 총액은 134억5000만원이었고, 이중 은행의 금융사고 금액은 116억3000만원으로 금융권 비중의 무려 86%를 차지했다.

특히 농협은행은 67억6000만원으로 은행권 사고액의 약 58%로 드러났다. 타 은행에 비해 엄청나게 큰 규모다. 이어 부산은행 45억원, 하나은행 36억1000만원, 국민은행 4억9000만원, 우리은행 4억원,신한은행 2억7000만원, 기업은행 8000만원 순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횡령 유용 67억6000만원, 배임 41억9000만원, 사기 6억8000만원 순이었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연임을 꿈꾸는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권준학 NH농협은행장은 이같은 금융사고 사태에 대해 뼈아프게 반성하고 책임져야 하며, 지금이라도 재발방지를 위한 견고한 시스템을 정비, 더 이상 농축산인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여론이다.

금융사 임직원 횡령, ‘유행’인가?

더욱 심각한 것은 농협을 필두로 최근 금융권 임직원들이 회삿돈이나 고객 돈을 빼돌리는 사고가 마치 ‘유행’처럼 번져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7일엔 KB저축은행 직원이 6년간 대출 서류를 조작해 94억여 원을 빼돌려 도박에 탕진한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지난달 25일엔 새마을금고 직원이 예치금 돌려막기로 40억여원을 횡령해 체포됐다.

이어 27일 강릉경찰서에 따르면 자체 감사 과정에서 의심을 받던 직원 2명이 자수했는데, 이들은 지난 10년간 약 22억원을 빼돌린 것으로 의심된다. 경찰은 이들을 피의자로 입건하고 횡령·배임 등에 대해서 수사에 착수했다고 이날 밝혔다.

시중은행의 횡령도 이어졌다. 우리은행 본점 기업개선부의 A씨는 동생과 함께 2012년 10월~2018년 6월 사이 총 세 차례에 걸쳐 은행 돈 614억원을 포함, 총 660억원을 빼돌린 사실이 지난 4월 발각됐다. 형제는 이 돈으로 주가지수옵션 거래 등에 쓴 혐의로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더욱이 최근 우리은행의 한 지점에서 비정상적으로 큰 규모의 외환거래가 이뤄진 정황이 파악돼 우리은행은 물론 금융감독원이 바싹 긴장하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서울 우리은행 지점 한 곳의 현장 수시검사에 지난 23일 나섰다. 우리은행의 내부 감사 결과, 해당 지점에서 복수의 기업이 최근 1년간 8000억원 정도의 외환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포착했고, 우리은행측이 이를 금감원에 보고한 데 따른 조치다.

우리은행은 해당 지점에서 평소 다루던 규모보다 훨씬 큰 외환거래가 이뤄진 점이 수상하다고 여겼다. 또 거래를 한 법인들의 규모를 고려할 때 해외로 송금된 금액이 통상적인 수준을 벗어났다고 분석한 것이다. 더욱 수상한 점은 송금액의 일부가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로부터 유입된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는 가상자산이 해외보다 국내 거래소에서 더 비싸게 거래되는 ‘김치 프리미엄’을 이용, ‘환치기’(불법 외환거래) 혹은 자금 세탁 등에 해당 자금이 활용됐을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우리은행의 판단이다.

그 결과,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증빙서류 확인이나 의심거래보고(STR) 절차 등을 제대로 준수했는지, 자금의 출처가 어디인지를 샅샅이 확인할 방침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증빙서류 확인이나 의심거래보고 등 과정은 적법하게 처리된 것으로 파악돼 현재까지 은행 직원의 불법 행위는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검사 결과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했다. 자칫 은행 직원의 개입이 드러나게 되면, 우리은행은 역사상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농협이나 우리은행 이외의 대형은행인 신한은행에서도 횡령 사고가 났다. 지난 5월 12일에 신한은행 부산 모 지점에서 직원의 횡령이 적발된 것이다. 이날 신한은행은 부산의 한 영업점에서 직원 A씨가 시재금(고객 예금을 대출하고 금고 안에 남아있는 돈)을 횡령한 정황을 내부 통제 시스템으로 파악하고 자체 감사에 나섰다. 영업점 직원이 빼돌린 금액은 2억원 수준으로 전해진다.

‘쉬쉬하는’ 금융권, ‘백년하청’ 대책 금감원

이처럼 농협의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데는 농협 측 책임이 크다. 특히 지역농협은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해당 직원을 수사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를 의뢰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했다. 당연히 거쳐야 할 농협중앙회 차원의 감사 절차 없이 권고사직 형태로 퇴직시키는 것으로 무마하는 게 다반사였으며, 오죽했으면 이에 대해 농민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는 ‘웃픈’ 일도 일어났다.

끊이지 않는 횡령 사건에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농협중앙회는 “임직원들에 의한 금융 사고를 뿌리 뽑기 위해 내부 통제시스템을 강화하고, 윤리경영 사이버교육과 윤리경영 실천 월별 캠페인 등을 벌이는 등 자정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되뇐다. 하지만 별반 효과는 없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최근 횡령 사건과 관련, 전국 농·축협을 대상으로 불시 시재금 등 감사를 벌인 결과 추가적인 직원들의 비위 행위가 적발되지는 않았다”면서 “횡령 사건이 발생했을 때 무관용 원칙에 따라 해직 등 강력하게 조치하고, 직원들의 윤리교육을 강화했다”고 했다.

농협중앙회는 볼멘소리다. 이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내부 통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횡령의 유형별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산 감사 항목을 추가로 개발하는 등 재발 방지 대책을 가동했지만 개인의 일탈 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금융권의 금융사고에 대해 지난달 금융소비자연대회의는 논평을 통해 “시중은행이 자체적으로 대규모 감사실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횡령사고가 계속 발생하는 것은 내부통제시스템이 유명무실한 형식적 시스템에 불과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또한 김대종 세종대 교수(경영학부)도 “투자의 3대 원칙이 수익성·안전성·환급성이라는 점에서 은행만큼은 고객들이 믿고 돈을 맡기는 곳인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처럼 은행 직원들이 고객의 돈을 마음대로 횡령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부통제가 부실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것 자체가 부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어 2~3년을 주기로 순환근무를 시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은행들은 철저한 내부 감사, 윤리·도덕 등에 관한 직원교육, 서류 원본확인 등 기본적인 사항에 대해 차별화 된 강화를 거듭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여당 의원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금융권의 횡령 사건은 금융위원회의 금융감독 기능의 부재와 무능함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금융위는 금융 권역별로 실시 중인 금융회사의 감사 준법 감시 담당 임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내부통제워크숍 주기를 단축하고, 제대로 된 금융감독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형 기준을 높이는 등 횡령 범죄에 대해 전체적으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법무법인 담윤 박세영 대표변호사는 “나중에 적발돼 처벌받더라도 횡령금을 딴 곳에 은닉한 뒤 몇 년 실형을 살고 나와 살겠다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라며 “다른 범죄들과 형평을 비교했을 때 조심스럽지만 양형 기준을 올리는 등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금융사고의 당국자인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0일 오전 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최근 은행을 포함한 금융권에서 거액의 금융사고가 지속되고 있다”며 “자산시장에서의 가격 급등락 등으로 금융사고 발생위험이 커질 수 있어 내부통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은행 금융사고 검사가 마무리되면 금융위원회와 함께 금융사고 예방을 위한 내부통제제도 개선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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