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원·부자재 공급난...‘죽어나는’ 영세 제조업체들
[현장] 원·부자재 공급난...‘죽어나는’ 영세 제조업체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테리어․건축․포장재 등 원자재가 “자고 나면 ‘껑충’ 뛰어”
납품가 올렸다가 거래 끊어질라…가격 반영도 제대로 못해
운영비 절감, 매스컴 광고 중단 등 ‘허리띠’, 업태 변경도
협동조합 등 연대 움직임, 그러나 국제 공급난 해결때까진 지속
수도권 외곽의 한 중소 포장재 제작업체로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수도권 외곽의 한 중소 포장재 제작업체,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건축·인테리어 자재를 도매하는 A사는 최근 6개월 동안 공급업체로부터 제품가격 인상을 알리는 안내 공문을 두 차례나 받았다. 이번에 받은 공문에서 공급업체는 “세계적인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제품가격이 인상됨을 공지해 드린다”며 파격적인 가격인상을 예고했다. “인상폭이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이 회사 대표는 “가뜩이나 금리도 오를 것 같고, 주문 따려고 경쟁은 치열하고, 갈수록 힘든 세상”이라고 하소연했다.

새삼스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처럼 포스트 코로나에 접어들면서 그간의 만성 불황만큼이나 중소 제조업체를 괴롭히는 현실이 업계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알루미늄이나 철제품 등 원자재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관련 제품 가격이 덩달아 오를 수 밖에 없는 도미노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에 오랜 관행이다시피 하는 최저가 중심의 불합리한 입찰방식이나 수의계약, ‘일당쟁이’로 불리는 일용직 고임금과 비싼 장비 임대료, 게다가 거의 ‘아귀다툼’식의 덤핑과 발주업체의 ‘갑질’ 등이 영세 제조업체들을 괴롭히고 있다.

근래 들어 <중소기업투데이>가 만난 인테리어 자재나 건자재 업체, 광고·조형물 제작업체 중엔 “온갖 비용과 생산비를 빼고 나면 남는게 없다. 코로나가 한창일 때보다 더 어렵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원자재 도매, 유통업체들의 고통이 크다. 앞서 K사 대표는 “광고물이나 조형물 제작에 필요한 상·하바와 카바를 망라한 싸인탑, 채널바, 무피와 도장제품, 피막제품 등의 MF, 트러스바, 각종 알루미늄 제품 등이 모두 kg당 600원이나 올랐다”고 토로했다.

그에 따르면 건축이나 인테리어 자재값도 엄청나게 올랐다. 대표적으로 아연파이프가 20% 올랐고, 후판도 200원/㎡이나 올랐으며, 아크릴밀러도 15% 인상됐다. 알루미늄판도 색상을 막론하고 60%나 올랐고, 알루미늄 경관바도 15% 인상됐으며, 조명제품용 광확산PC는 kg당 300원, 전선류도 15%나 가격이 올랐다.

더욱이 공급업체측은 공문을 통해 “알루미늄 원자재 외에도 가파른 가격상승으로 인해 단가의 변동이 잦다”면서 “(추후 별도의) 알림은 없이 가격이 지속적으로 인상될 수 있는 만큼, 주문을 할 때 별도로 단가를 문의하기 바란다”고 추가적인 가격인상을 예고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이 회사뿐 아니다. 철제 받침대와 프레임으로 고정식 배너 안내표지판을 제작하는 한 업체 대표도 “대부분 중국 등에서 수입하는 자재들인데, 가격이 너무나 큰 폭으로 올라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해당 제품은 알루미늄과 철제, 각종 합금 자재가 필수다. 그러나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다보니, 가격이 크게 올라 타격이 크다. 회사 대표는 “이런 상태라면 물건을 만들어 팔아봤자, 남는 것도 얼마 없다”면서 “그렇다고 납품가를 올리면, 그나마 거래도 끊어질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같은 원자재 가격상승은 국제적으로 이른바 ‘위드 코로나’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게다가 미·중갈등의 여파가 지속되고, 우크라이나 사태가 발발하면서 공급난이 심화된데다, 움츠러들었던 원자재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가격이 뛰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국내 제조업계는 여느 산업 분야 못지않게 원자재와 반제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다.

특히 제조업계에서 소비되는 대부분의 원자재나 반제품이 중국과 베트남에서 생산되다보니, 가격 상승폭이 클 수 밖에 없다. 그로 인해 대기업보다는 영세한 제조업체들의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 고양시 사리현동에 있는 한 포장업체 대표는 “플라스틱이나 아크릴 가격이 너무 오르다보니, 물건을 만들 때 ‘로스(Loss)’를 최소한으로 줄이려고 노력한다”면서 “언제까지 지금과 같은 상황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업체 대표는 또 “모든 지출과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매스컴 광고도 모두 끊고, 불필요한 섭외 비용이나 직원들 유류비도 잠시 중단한 상태”라고 전했다.

고양시의 한 옥외광고업체 대표 A씨는 “재료비와 시공비, 스카이 차 임대료, 작업자 일당, 그리고 납품일 동안 직원들의 임금 등을 계산하고 나면 그야말로 ‘밑지는 장사’”라고 밝혔다. 특히 전체 생산원가의 절반이 인건비라는 이 업체의 경우 최근엔 아예 제작보단 일종의 에이전시 사업인 ‘기획사’로 업태를 바꿀 생각도 하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은 없다. 특히 대외적 여건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이므로 당장 법적, 제도적 장치로 해결될 문제도 아니란게 업계 이야기다. 그래서 최근 수도권 일대 3D프린팅 업계를 중심으로 연대와 협업으로 현실을 타개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달 3D프린팅 제조업체 30여 곳을 아우른 협동조합을 구성한 경기도 화성의 J사 대표는 “자재와 유통, 그리고 가능하면 판로까지 공동 협업으로 대처할 생각”이라며 “특히 3D프린트로 광고물, 인테리어 용품을 제작할 경우 공동구매를 통해 자재를 확보하면 그나마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이같은 움직임 역시 항구적인 대책은 되지 못한다. 대내외 공급난이나 물류난이 해소되고, 생산 수급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까진 근본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더욱이 금리인상과 매출감소 등으로 많은 업체들이 자금 경색까지 겪을 것으로 보여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이래 저래 영세 제조업체들이 겪는, ‘코로나19’보다 더 큰 고통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