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 현실화 등
외생적 변수로 뚜렷한 해법 없어
재계 '비상경영체제', 서민경제 위축 우려
윤 대통령, 풀어야 할 숙제

인플레이션발 경제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서민경제 또한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편의점 모습.
인플레이션發 경제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물가가 가파르게 치솟으면서 서민경제 또한 위협받고 있다. 사진은 서울시내 한 편의점 모습.

[중소기업투데이 정민구 기자]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기화로 유가 인상, 식량 가격 폭등에서 비롯된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앞으로 예상되는 경기 후퇴에 대해 정책 당국이 딱히 손쓸 방법이 없는 등 난감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자이언트 스텝’(0.75% 금리인상)으로 우리나라 증시에서는 자금이 빠지고 있는데다, 금리를 올리려고 해도 주택담보대출 등 이자가 급증, 서민을 옥죌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고민이다. 덩달아 달러 대비 환율은 계속 오르고 있어 수출에 필요한 원유와 중간재 수입가도 높아지고 있어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가계-기업에 총체적 위기다. 인플레이션은 지속되고, 경기는 가라앉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오죽했으면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일 글로벌 경기 전망과 관련, “통화량이 많이 풀린 데다가 지금 고 인플레이션 고 물가를 잡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쓰고 있는 마당에 생긴 문제들이기 때문에 이걸 근본적으로 대처할 방도는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윤 대통령은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부의 정책 타깃은 우리 중산층과 서민들의 민생 물가를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서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민이 지금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한 (경제 민생) 정책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대응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야당의 협조를 구했다.

이어 21일 가계부채가 1900조원에 육박하고, 주담대 금리가 8%대를 넘어서고 있는 현상에 대해 기자들이 구체적인 해법을 묻자 윤 대통령은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전 세계적인 고금리 정책에 따른 자산가격의 조정 국면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정책 당국이라고 해서 여기에 대해 근본적인 해법을 내기는 어렵다”며 “하여튼 리스크 관리를 계속해나가야 할 것 같다”고 답했다. 궁색할 따름이다.

자료= 한국은행
자료= 한국은행

물가, 더 오른다?

한국은행은 이날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를 통해 “향후 물가 흐름은 국제유가 상승세 확대 등 최근 여건 변화를 고려할 때 지난 5월 전망 경로(연 4.5%)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달 26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1%에서 4.5%로 큰 폭으로 올려 상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도 채 안 지난 시점에 물가상승률이 이보다 더 높을 수도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한은은 “분기 기준으로 2008년 3분기(5.5%) 이후 처음으로 5%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면서 “최근 물가상승률은 2008년 급등기 고점(5.9%)에 근접한 수준”이라고 했다. 아울러 한은은 “과거에는 중국의 제조업, 부동산, 인프라 투자 확대에 따른 원자재 수요 증가가 상승세를 견인했으나 최근에는 감염병,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내 봉쇄 조치 등에 따른 공급망 차질, 친환경 규제 등 생산시설 투자 부진 등에 주로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최근 국제 식량 가격은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얘기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국내외 물가상승 압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면서 “현재와 같이 물가오름세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국면에서는 가파른 물가상승 추세가 바뀔 때까지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금리를 크게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이나 ‘빅 스텝’은 아니더라도 하반기 지속적인 금리인상의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죽 쑤는 증시, 떨어지는 원화가치

이날 연합인포맥스가 내놓은 ‘통화별 등락률 비교’를 살펴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지난 15일 0.75% 금리인상이라는 고강도 긴축에 돌입한 가운데 우리나라 원화가 일본 엔화 다음으로 약세 폭이 컸던 것으로 확인됐다.

‘자이언트 스텝’이라는 대폭 금리인상에 외국인의 국내 증시 매도 공세가 심해졌을 뿐 아니라 무역수지 적자와 대중국 경제 의존도 등이 원화 가치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가세했다는 해석이다. 이는 또한 글로벌 긴축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원화가 다시 변동성을 크게 보이는 등 시장의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통화라는 점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전일 달러 대 원화 환율은 전 거래일 대비 5.10원 상승한 1292.40원에 마감됐다. 외국인 주식 순매도에 따른 주식 급락세에 지난 2009년 7월14일 1293.00원으로 장을 마감한 이후 1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상승했다.

이달 1~20일 일본의 엔화는 미국의 가파른 금리상승에도 일본은행의 금융완화 정책의 지속으로 달러 대비 약 4.73% 떨어졌다. 한국은 일본의 뒤를 이어 4.27% 가치하락을 기록했다.

이처럼 원화 약세가 뚜렷하게 나타난 가장 큰 이유로는 외국인의 코스피 순매도가 꼽혔다. 외국인은 6월에만 코스피를 4조4000억원 가까이 순매도했다. 특히 국내 유가증권시장에서 반도체 등 기술주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 글로벌 금리인상의 충격파를 크게 만들었다는 해석이다. 전 거래일 기준 삼성전자 시가총액 비중은 코스피에서 약 19%를 차지했으며, SK하이닉스는 3.7%가량의 비중을 차지했다. 이에 따라 코스피 지수는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겼던 2400선으로 주저앉았다. 대표적인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외국인 순매도 폭탄에 52주 신저가를 경신하면서 ‘5만 삼성전자’도 위태롭다.

아울러 원화는 유동성이 풍부해서 베팅하기에도 좋은 통화인 데다 이달 들어 외국인은 지난 16일 순매수를 제외하면 매도세가 강해 원화가치는 떨어지고 증시의 돈은 빠져나갔다는 증권가의 분석이다. 자본유출이라고 확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달 들어 외국인이 주식 순매도를 이어가면서 국내 금융시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꾸준히 투자심리를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모습은 확연하다

실제로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이달에만 4조3546억원 넘게 순매도했다. 올해 전체를 봤을 때, 15조2983억원 정도 순매도, 환율상승 압력을 가했다는 분석이다. 시장에서는 환율 1300원도 가시화 가능성이 높다고 보지만, 당국의 개입 강도에 달렸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주식이 급락하거나 금리가 강하게 상승한다면 1300원을 훨씬 웃돌 수 있어 큰 걱정이다.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는 Fed의 내부 보고서를 인용,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려면 올해 안으로 금리를 최소 4~7%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진단했다. Fed 위원들의 금리 전망치를 취합한 결과, 올해 미국의 기준금리 예상치는 3.25~3.5%이다. 그러나 현재 물가 수준 등 각종 경제 지표를 감안하면 4~7% 인상돼야 인플레이션을 억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지난 15일 금리 0.75% 대폭 인상, 기준금리 1.5~1.75%가 됐더라도 앞으로 ‘자이언트 스텝’이나 ‘빅 스텝’이 또 이어질 것이 자명하다. 이에 따른 우리나라 증시의 변동성과 원화가치 하락에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Peter Wennink)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Martin van den Brink)                ASML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점검했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 위치한 ASML 본사에서 피터 베닝크 ASML CEO, 마틴 반 덴 브링크 ASML CTO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를 점검하는 모습 [삼성전자]

기업, 대책마련에 고심

국제적으로 퍼지는 인플레이션과 긴축 상황의 불똥은 당장 기업들을 초긴장시키고 있다.

당장 유럽출장에서 돌아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일 삼성 전자계열사 사장들과 8시간이 넘게 마라톤 회의를 가졌다. 아울러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주재로 긴급히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글로벌 시장 현황 및 전망을 논의하고 사업 부문별 위험 요인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아울러 21일부터 상반기 글로벌 경영전략회의에 들아갔다. 부정적인 반도체 업황과 대책 마련에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부터 모바일사업부를 시작으로 글로벌 전략협의회도 진행시켰다.

앞서 SK 최태원 회장은 지난 18일 계열사 최고경영자(CEO) 30여명과 확대경영회의를 열고 중장기 재무계획을 다시 살폈다. SK하이닉스 역시 반도체 사업 중장기 전략에 대해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현대차도 각각 확대경영회의, 해외법인장회의, 전략보고회 등을 갖고 시간을 다투면서 대외 환경 변수에 대처 방안 모색에 힘쓰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위기상황이다. 당초 올 하반기 메모리 시황이 반등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하락세가 이어지는 쪽으로 관측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예상외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길어지며 세계적 공급 불안, 전반적 인플레이션이 가중되고 있는 게 문제다.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반도체 D램 재고가 계속 증가하고 수요가 약세를 보이고 있어 3분기 가격도 3~8%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국내 수출을 전반적으로 이끌고 있는 반도체 산업은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수익성은 나빠지는 추세라는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의 하반기 실적 악화가 우려되면서 동시에 핸드폰, TV나 가전, PC 등도 실적 부진이 예상돼 긴급한 타개책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현대-기아차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수요가 위축되면 자연스럽게 전기차 활황세도 사그라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주요 수출시장인 미국은 소비가 경색되고 있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미국은 5월 인플레이션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가 반영돼 5개월 만에 소매판매가 줄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그룹은 오는 7월 현대차와 기아 해외법인장 회의를 열고 해외 권역별 전략 점검에 나선다.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두 번 열리는 회의는 각 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주재하고 권역본부장들과 판매, 생산 법인장들이 참석한다.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과 화물연대 파업 등 악재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해외시장별 점유율 확대를 목표로 짜임새 있는 전략 마련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으로 재계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저성장 등 '3고(高)' 복합 상황을 놓고 우려를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대한상공회의소는 최근 '3고(高)' 상황을 고려할 때 기업들의 조세부담 완화와 인센티브 강화 조치가 필요하다며 정부와 국회에 건의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가계의 위기, ‘주담대’ 이자 8%대?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연준(Fed)이 0.75% ‘자이언트 스텝’ 금리 상승을 실시한 이후 한국(1.75%)과 미국(1.50∼1.75%)의 기준금리 격차는 기존 0.75∼1.00%p에서 0.00∼0.25%p로 줄었다. 미국 연준이 시장에서 예상한 대로 다음 달 빅스텝만 단행해도 오히려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보다 높은 금리 역전이 발생한다. 금리 역전이 발생할 경우 외국 기관들은 우리나라에 투자했던 돈을 빼내 미국으로 돌릴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한국은행 역시 한·미간 금리 역전을 방어하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21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내놓은 ‘세계 부채 보고서’에는 올해 1분기 기준 세계 36개 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한국이 104.3%로 1위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금융지원이 끝나게 될 경우 기준 금리가 더 오르게 된다면 가계 연체율 발생 가능성은 매우 높다. 어쩔 수 없다는 게 금융시장의 판단이다. 시장은 한은이 올해 연말까지 모두 4차례(7·8·10·11월)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해 결국 기준금리가 연 2.75%~3% 수준에 달할 것으로 본다. 당연히 기준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 역시 오르게 된다.

가계 대출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주담대 중 고정형 금리가 더 오른 이유는 채권금리 상승세가 크기 때문이다. 주담대 고정금리 산출 기준이 되는 은행채 5년물(AAA·무보증) 금리는 올 들어 2.259%에서 4.147%로 1.888%p 급상승했다. 4대 은행의 주담대 혼합형(고정형) 금리 또한 연 4.3~7.1% 수준으로 불가 6개월여 만에 최고 금리가 2%p 넘게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변동형 상품 또한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상승폭을 매달 늘리면서 반년 만에 금리가 3.69~5.714%로 올랐다. 이같은 상승세면 연말 주담대 금리는 8%대를 넘을 주담대 이자율이 8%에 달할 경우 가계 부담은 차주들을 위기로 내몰 것이 불 보듯 뻔하다.

해법은?

‘퍼펙트 스톰(Perpect Storm:총체적 복합위기)’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시기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다 해도 코로나와 미·중 패권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불안은 여전히 남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극복 과정에서 풀어놓은 천문학적 유동성은 아직도 회수되지 못한 채 떠돌고 있다. 그래서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최소한 1~2년 이상은 더 갈 것이라는 게 금융권 전문가들의 우려다.

하지만 뚜렷한 대처 방안은 없다. 입에 발린 소리만 나올 뿐이다. 예를 들어 “인플레이션 차단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노력만으로 부족하다. 기업-가계-정치권은 물론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경제 주체들이 협력, 각자의 위치와 개별 영역에서 내핍과 고통 분담 노력을 함께 해야 한다”는 얘기가 그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재정지출 억제 및 긴축 재정 ▲물가인상 피해를 받는 중소기업 및 저소득계층의 안전망 확충 ▲기업의 생산성 향상 및 경비절감 ▲고용 유지 및 확대 ▲ESG경영으로 지속가능성 증대 ▲정치권의 노사상생 모델 법적-제도적 지원 ▲노사정 협력 강화 ▲일자리 유지 위한 노동자들의 노사 문제 유연성 발휘 등이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평가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긍정적 평가가 대부분 50%에 못 미쳤다. 특히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TBS 의뢰로 17~18일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당면한 경제위기 대처를 두고 ‘잘못하고 있다’(50.2%)가 ‘잘하고 있다’(44.9%)보다 높았다. 국정 수행 지지율이 50%를 밑도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경제위기 돌파는 윤 대통령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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