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높은 LTI 해소, 소득제고 노력, 주택연금 조기가입” 등 제안
전체 가구의 17%, 연평균 소득 4600만원에 채무 원리금 상환 4500만원

사진은 서울 시내의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본문과는 관련없음.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번 돈의 대부분을 빚갚는데 쓰거나, 아예 빚보다 소득이 적은 ‘적자 가구’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이에 가계소득을 높여 적자가구의 가계수지를 개선하고, 고(高) LTI를 낮추는 금융정책 등 가계부채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의 한국금융연구원이나 하나금융연구소를 포함해 한국개발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등 대부분의 금융․경제 전문연구기관들이 수 년 전부터 이같은 우려와 함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 주 “우리나라의 전체 가구 중 17.2%는 연 소득의 대부분을 빚을 갚는데 쓰는 이른바 ‘적자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다시금 이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 5월 통계청 정의에 따르면 전체 2,052만 가구의 14.0%인 287만 가구가 적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같은 시기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한국금융연구원 주장대로 전체의 17.2%인 354만 가구가 적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따르면 적자가구의 연평균 경상소득은 4600만원, 채무의 원리금 상환액은 연 4500만원으로 원리금 상환이 적자 부담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적자가구와 흑자가구의 재무상태를 비교해보면, 만기 일시상환 대출비율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득에 비교한 금융 부채의 크기를 나타내는 ‘LTI’에서는 LTI가 5배 이상인 '고(高) LTI 가구’의 비중이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고 분석한 금융연구원은 “결국 금융부채 규모가 소득에 비해 너무 크다는 점은 적자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고 파악했다.

이에 금융연구원은 “적자가구의 재무적 취약성을 방지하고 가계부채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高 LTI문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먼저 전세가격이 하락할 경우, 취약가구의 보증금 상환 문제가 또 다른 경제충격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할 필요가 있다. 적자가구의 18.6%가 세입자로부터 전월세 보증금을 받고 있고 이를 통해 적자를 메우고 있을 가능성이 큰 만큼, 부정적 파급효과에 대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또 “LTI에 상한을 설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는게 연구원의 주장이다. 즉 “담보실제가치 대비 은행대출금액(LTV)이 적더라도,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의 비율(PIR)이 커지게 되면 결과적으로 LTI 역시 높아질 가능성이 큰 만큼, LTI 상한 설정을 통해 LTV의 무력화나 가계부채 급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또 “주택연금의 가입연령 등을 가계의 재무상태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나름의 방안을 제시했다. 이미 2020년 4월, 가입 연령이 55세로 낮아졌지만 高 LTI가구 중 적자가구의 평균 만 나이는 51.5세로, 적자가구에 대한 주택연금 가입 연령을 선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특히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 역시 연일 상승하고 있고 물가도 치솟는 상황에서, 가계부채의 원리금 상환 부담도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그렇게 되면 필수적인 가계 소비지출이나 이자지급액이 증가하면서 흑자가구의 가계재무 상태도 취약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과도하게 빚 부담이 늘어나지 않도록 채무 관리 등 가계차원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곁들였다.

이보다 앞서 지난 5월 하나금융경영연구소도 비슷한 조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연구소는 당시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이용하여 금융채무의 이행 및 필수적인 소비 활동의 결과로 적자 상태가 된 가구(이하 적자가구)의 특징을 파악했다”면서 상황을 우려했다.

특히 “적자가구와 흑자가구의 재무상태를 비교해 보면, 유동성 위험을 파악하는 저축액 대비 금융부채 비율과, 가계의 채무이행 부담을 보여주는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상환액 비율이 두 그룹 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면서 “금융부채 규모가 소득에 비해 너무 큰 것이 가계적자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국금융연구원과 동일한 진단을 내렸다.

하나금융연구소 역시 ‘高 LTI’ 예방을 위한 LTI 상한 또는 유사 정책수단의 활용, 주택연금 가입연령의 탄력적 운영 등 앞서 한국금융연구원과 동일한 대안을 제시하는 한편, “임대보증금 부채를 통한 경제충격 파급경로 파악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곁들였다. 즉 “적자 가구가 빚을 내어 사들인 집을 세놓고, 다시 세입자로부터 받은 전월세 보증금(부채)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부정적 파급 효과의 방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KDI도 이미 2020년경부터 적자 가구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당시에도 KDI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한 가계수지(=수입-지출) 적자에 대응하여 활용할 수 있는 유동성 자산이 부족한 가구는 심각한 재무적 곤경을 겪고 있다”면서 “특히 소득하락의 폭이 크고 소득하락 충격에 노출된 가구가 많을수록 유동성 위험 가구 규모가 증가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KDI는 또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가계 유동성 위험은 소득·순자산 기준으로는 하위 분위, 종사상 지위별로는 임시·일용직과 같은 경제적 취약계층에서 더욱 높게 나타나고 있다.”고 같은 적자가구 중에서도 차이가 있음을 적시해 눈길을 끌었다.

KDI는 특히 ‘유동성’ 측면에서 해법을 모색했다. 즉 “유동성 위험 가구가 소득 하위 분위에 집중됨에 따라 적은 금액(예컨대 100만원)의 단기 소득지원만으로도 해당 가구의 유동성 위험 완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 경우 소득 지원은 취약계층에 집중하되, 담보여력이 있는 자산 보유 가구에 대해서는 신용(담보대출 등)을 지원하는 선별적 방식이 유동성 위험 완화와 재정절감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했다. 이는 당시 전국민 혹은 소상공인 대상의 재난지원금과 손실보상급 지급에 즈음한 방법론의 하나란 점에서 항구적인 적자가구 해소방안과는 구분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제기한 점에선 맥을 같이한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최근 적자 가구의 해법을 제시한 바 있다. 연구원은 “가계소득을 높이는 경제정책이 최우선이며, 이와 함께 가계부채 부담을 완화하는 대책, 그리고 가계의 품목별 및 소비별 소비구조를 고려한 지원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이처럼 진단과 해법은 다소 결이 다를지라도, 거시경제 차원의 가계부채 뿐 아니라, 미시적 수요 측면의 적자가구 해소가 우리 경제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란 점에서는 전문기관들의 시각이 일치된다. 특히 “국내 적자가구의 가계수지 부실은 결국 장기적인 국내 경제 활력 저하로 이어질 것”이라는 현대경제연구원의 우려가 이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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