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記] 예, 적, 운이 말한다. 겸허하라‧‧고
[山·行·記] 예, 적, 운이 말한다. 겸허하라‧‧고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봉산~적갑산~운길산, 14.1km 3만3천보
남양주시 조안면 조안리 해발 683m 예봉산 정상

[중소기업투데이 홍미식 객원기자] 6월 첫날, 예봉산 등산은 오전11시, 팔당역에서 시작했다. 예봉산은 경기도 남양주시 도곡리, 팔당리, 진중리, 조안리를 아우르고 있는 높이 683.2m의 산으로 산을 위한 제사를 지낸다 하여 영산(靈山)이라고도 한다. 세 개의 산을 넘기 위하여 처음으로 등산지팡이와 함께 무릎과 발목보호대를 착용했다. 미리 알아본 정보에서는 예봉산이 좀 험하다는데 진입로의 따갑게 내리쬐던 햇볕을 제외하면 한동안 큰 어려움이 없었다. '이 정도면 뭘...ᆢ' 하고 교만해질 즈음 산세가 점점 가파르고 경사가 급해지며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예봉산 특징은 내리막이 없다. 마냥 이어지는 오르막길에 간간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살짝살짝 내비치는 확 트인 풍경은 필자가 더위를 식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산을 오르는 길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길인지도 모른다. '너무 힘들어 더 이상은ᆢ...'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도 결국은 그 순간이 지나가듯 숨이 목까지 차오를 때쯤이면 정상은 늘 그렇게 다가오는...

오후1시쯤 예봉산 정상에 도착했다. 길게 이어지는 산등성을 내려다보며 잠시 숨을 고른 후 두 번째 목적지로 향한다. 다행히 적갑산은 쉬어가는 길목이다. 예봉산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1.7km 능선이 오히려 피로를 풀어주는, 그냥 스쳐 지나가기 딱 좋은 지점 바위틈에 높이 560m를 알리는 정상석이 숨은 듯 자리하고 있다. 가벼운 점심과 과일을 먹고 숨을 돌리니 어느새 오후3시. 그곳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운길산으로 가려는 우리를 말린다. 그리로 넘어가기엔 시간도 너무 늦고 등산로도 만만치 않다며 “산이 어디 가느냐”고 다음을 기약하란다. 달랑 둘의 단출한 일행도 이유였으리라.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북서쪽에 솟은 해발 610m 운길산 정상

잠시 고민 끝에 예정대로 운길산으로 향한다. 그때만 해도 지금 가는 길이 오르락내리락 그리 길게 수차례 이어질 줄 몰랐다. 유튜브를 찾아 다시 한번 방향을 확인하고 산길을 마냥 걸었다. 시간이 늦어서인지 오가는 사람 하나 없는 초행길을 걷는 마음이 살짝 불안하고 제대로 닦이지 않은 가파른 바위를 오르는 위험한 여정은 언제쯤 끝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 ‘아, 이래서 모두 말렸구나.’ 여럿이 말릴 땐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니 듣는 게 옳았다. 경솔했다는 후회도 밀려왔지만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막다른 지경. 길은 하나, 오직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혹여 하산 전에 불을 밝혀야 할 상황에 대비하여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아낀다. 가다가다 안되면 최악의 경우 119에 전화할 각오를 하며, ‘제발 그런 폐를 끼치는 상황까지 가지 않기’를 기도했다.

몇 차례 흙길과 계단과 바위를 오르내렸던가?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살며시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곧 정상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다. 겨우 힘을 내 올라가니 나무 바닥으로 넓게 조성된 쉼터. 아, 드디어 610m 운길산 정상이다. 이제야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 사이에 펼쳐진 절경이란ᆢ! 겹겹이 둘러싸인 산 아래 고물고물 자리한 정겨운 시골 마을을 따라 남한강인지 북한강인지 끝없이 이어진 물줄기, 산과 마을과 강. 자연의 조화가 이루어낸 멋진 모습. 사진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아, 이 순간을 위하여 오늘 하루 이렇듯 걸어왔던가!

남양주 운길산의 명소 수종사 경내,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 

어느새 시간은 오후6시를 지나고 아름다운 풍경을 오래 즐길 사이도 없이 하산길에 나선다. 마침 운길산에서 야영을 하러 오는 한 등산객을 만나 물으니 내려가는 길은 금방이란다. 길어진 여름 해에 감사하며 최종 목적지 수종사를 향하여 내려오는 길도 경사가 만만치 않다. 다행히 어둡기 전 오후7시쯤 수종사에 도착했다. 몇 모금 약수로 긴 산행에 목말랐던 목을 축이고 그제야 500살 은행나무 어르신에게 인사드리며 편안한 마음으로 두물머리를 바라본다. 수종사에서 내려오는 아스팔트 찻길은 참으로 지루했다. 어두운 산길보다 안전을 택한 대가라 여겨 보지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다시금 산길로 들어가 내려가고 싶을 만큼 굽이굽이 돌고 돌아 내려오는 포장도로가 지친 뚜벅이에겐 좀 버겁다. 오후8시쯤 드디어 운길산역에 도착했다.

총 길이 14.1km. 괴력의 3만3000보. 다소 무모할 정도로 용감했던 산행이 이렇게 무사하게 마무리된 것이 참 감사하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준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뿌듯하다. 힘들고 가파른 산행에 한마디 불평 없이 묵묵히 동참해준 친구가 고맙다.

-말문

시작은 그랬다. 작으나마 매일 동네 산을 다니며, 때로는 나홀로 등반도 기꺼이 즐기며, 산을 사랑한다는 사람이면,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곳 한라산 백록담은 다녀오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라 생각했다. 어쩌면 늘 마음에 걸렸던, 오래전 제주도에 두 달을 머무르면서도 폭우와 통과시간 등을 핑계로 한라산 중턱까지밖에 가지 못했던 필자의 게으름에 대한 사과였는지도 모르겠다. 2022년 새해를 맞으며 미뤄두었던 문제를 풀듯 가을에는 백록담을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에 대비하여 1월 안산, 2월 수리산, 3월 용마산 거쳐 아차산, 4월 인왕산 거쳐 북악산, 5월 경춘선 숲길 따라 봉화산 때보다는 진지한 마음가짐, 이를테면 가을 한라산 예행연습으로 6월 산행코스를 잡았다. 여러 산 중 예·적·운 코스, 팔당에서 내려 예봉산을 거쳐 적갑산을 지나 운길산으로 내려오는 산행으로, 산의 높이나 산세는 물론 길이까지 한라산 백록담 등반의 시험대로 적합하다는 판단에 따른 결정이었다. 다만 적갑산에서 만난 등산객의 말에 의하면 한라산 등반은 이번 산행보다 훨씬 수월해서 이 정도의 예행연습이 전혀 필요치 않다는 것, 그래도 극기와 겸손을 몸으로 느낀 초여름의 아주 값진 체험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