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한일·한중 항로 해상운임 담합 제재
시정명령, 과징금 800억원 부과
“조직적, 체계적…죄질 매우 나빠”

사진은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수출입 선박 모습. 본문과 직접 관련은 없음.

[중소기업투데이 이상영 기자]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인력부족과 항만적체로 산업계 전체가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대규모 해상운임 담합과 불공정거래가 적발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특히 국제 수요가 폭증하고 있는 가운데 컨테이너 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이다. 중소기업을 포함하여 해외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산업계를 더욱 어렵게 한 것이란 비판도 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한-일 항로에서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운임을 합의한 15개 선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800억 원(잠정)을 부과했다”면서 “한-중 항로에서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운임을 합의한 27개 선사에 대해선 시정명령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번에 적발된 선사들 중 한-일 항로의 14개 국적선사, 1개 외국적선사는 해당 노선의 시장점유율이 86.5∼93.7%에 달한다. 또 한-중 항로의 경우 16개 국적선사, 11개 외국적선사가 적발되었는데, 이들이 해당 노선 시장점유율은 70.1∼83.5%에 달한다. 사실상 각 노선을 독점하다시피 하며, 이를 악용해 운임을 담합한 것이다.

이들 선사들은 약 17년간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각종 부대운임 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 등 각종 운임에 대해 답합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일 항로는 2003년 2월부터 2019년 5월까지 총 76차례, 한-중 항로는 2002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68차례 컨테이너 해상 화물운송 서비스 운임에 대해서 합의하고 이를 실행하였다.

공정위는 “한-일 및 한-중 항로 운임을 인상 및 유지할 목적으로 기본운임의 최저수준, 부대운임의 신규 도입 및 인상, 대형화주에 대한 투찰가격 등을 합의하고 실행했다”면서 “2003년 10월 한-일, 한-중, 한-동남아 등 3개 항로에서의 동시 기본 운임 인상을 위해 고려, 남성, 흥아 등 주요 선사 사장들 간의 공감대를 형성한 것을 계기로 공동행위 기간 내내 최저운임(AMR)을 합의하고 실행했다”고 밝혔다.

선사들은 또 운임 인상 및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EBS(긴급유류할증료) 및 THC(터미널 조작 수수료) 등 다양한 부대비용[CCF(컨테이너 청소비), DOC(서류발급비) 등]의 신규 도입 및 인상을 합의하고 실행했다.

특히 대형화주 투찰가도 담합했다. 선사들은 대형화주들의 입찰이 이루어지는 시기를 전후로 회합 및 이메일 등을 통해 대형화주 등에 대한 투찰가격을 합의했다. 즉 “선사들이 합의한 최저운임의 연장선상에서 결정되었으며, 선사들은 담합을 숨기기 위해 합의 운임에서 10달러를 높여 투찰하기도 하고, 낙찰된 선사 이외에는 화물 선적을 금지하기도 하였다”는게 공정위의 조사 결과다.

선사들은 합의한 기본운임의 최저수준(내지 인상 수준)을 기준으로 화주의 화물을 유치하고, 합의된 부대 운임을 화주에게 징수하며, 합의한 투찰가를 입찰 시 적용했다. 예를 들어 한-일 항로에서 선사들은 이로 인해 2008년 한해에만 620억 원의 수익(비용절감 120억+추가 부대비 징수 500억 원)을 달성한 것으로 확인되는 등 운임 수입이 증대되고, 흑자경영을 달성했다.

선사들은 합의 이후 후속 회의 등을 통하여 합의 실행 여부를 면밀히 점검하고, 운임에 대한 감사를 벌이거나, 벌과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또 상호 간에 합의 위반사항을 감시‧지적하고, 선사 간 협의체인 ‘한근협’이나 ‘황정협’에 합의 위반 선사를 제보하기도 했다. 심지어는 ‘US$500/TEU의 페널티’를 부과하고, ‘6개월간 선복 제공을 중단’하기도 했다. 선복을 제공받지 못할 경우 해당 선사는 물론, 화주와 일반 수출기업도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다.

또한, 합의 위반 횟수에 따라 경고나, 공식사과, 공동운항 제외, 회원자격 검토 등 단계별로 가중되는 페널티도 가했다. 운임 합의 실행여부를 감시할 목적으로 중립감시기구, 중립관리제, 실태조사, 거래현황 점검 등의 이름으로 감사를 실시하곤 했다. 그 중 국적선사들은 근해 3개 항로(동남아, 중국, 일본)의 운임 합의 실행 여부를 보다 치밀하게 감시할 목적으로 2016년 7월에는 3개 항로 합동 중립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중립위원회는 2016~2018년 기간 중 7차례 운임감사를 실시해, 한-일 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2억8000만 원의 벌과금을 부과했으며, 한-중 항로에서 합의 위반 선사들에게는 총 8000만 원의 벌과금을 부과했다. 선사들은 또 ‘기거래 선사 보호 시스템’을 통해 화주를 선택하거나 물량이동을 제한하여 경쟁을 제한하고 화주에 대한 협상력을 높여 운임을 인상시켰다.

나아가선 운임을 높여 받을 수 있을 때까진 회원사 거래처의 화물을 유치하지 않기로 상호 확약했다. 또 신규업체나 새로운 화주가 선적을 의뢰할 경우에는 이미 협의한 운임보다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하여 다른 선사들도 덩달아 원하는 운임을 받을 수 있도록 ‘꼼수’를 부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선사들은 이런 담합행위의 위법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매우 은밀하고 지능적인 방법으로 이런 사실을 은폐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대외적으로는 “한근협 또는 황정협 소속 선사들 간 공동행위가 아닌 개별선사 자체 판단으로 운임을 결정하였다”고 위장했다. 담합으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운임인상 금액은 천 원 단위, 그리고 시행일은 선사마다 제각기 2~3일 정도 차이를 두기도 했다.

또한 대형화주의 이름을 머리글자(이니셜)로 처리하거나, 주고받은 이메일 등 담합의 증거가 될 수 있는 것은 삭제하도록 해 증거를 인멸하는 등 전형적인 담합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 가운데 한근협과 황정협은 각각 한-일 항로 15개 선사와 한-중 항로 27개 선사들의 운임 담합을 위한 회의를 소집하고 합의된 운임의 준수를 독려했다. 선사들에게 회의 개최 일시, 안건 등을 전달하고 회의 장소를 섭외하는 한편, 회의 시 합의한 결과를 정리한 회의록을 작성해 선사들에게 배포했다. 또한, 전자우편, 카카오톡 채팅방 등 기타 의사 연락 수단을 통해 운임 합의 준수를 독려한 것으로 밝혀졌다.

일단 공정거래법 제116조는 ‘다른 법령에 따라 행하는 정당한 행위’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하고 있으며, 해운법 제29조는 ‘정기선사들의 공동행위’를 일정한 절차상·내용상 요건 하에 허용하고 있다. 그러나 판례는 일관되게 ‘다른 법령에 따른 정당한 행위’를 “다른 법령의 범위 내에서 행하는 필요·최소한의 행위”로 보고 있다.

이처럼 해운법에 따른 공동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절차적으로 선사들은 공동행위를 한 후 ①30일 이내에 해수부장관에게 신고해야 하며(공동행위 내용 변경 시에도 동일) ②신고 전에 합의된 운송조건에 대해 화주 단체와 협의해야 한다고 돼있다. 또한, 내용적으로도 부당한 운임 인상으로 인해 경쟁이 실질적으로 제한되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공정위는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해운법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절차적 문제 뿐만 아니라, 화주에 대한 보복, 합의를 위반한 선사에 대한 각종 페널티 부과 등 내용적인 한계도 크게 이탈했다”면서 “이같은 운임 담합은 해운법에 따른 정당한 행위가 아니며, 이러한 불법적인 공동행위는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선사들의 한-일 항로 76차례, 한-중 항로 68차례 운임 합의는 해운법 상 신고와 협의 요건을 준수하지 않은 위법한 공동행위에 해당된다”면서 “특히 전체 합의 중 한-일 항로 69차례, 한-중 항로 61차례의 운임 합의는 화주단체 협의와 해수부에 신고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신고의 외관을 갖춘 한-일 항로 7차례, 한-중 항로 7차례 합의의 경우에도 최저운임(AMR)을 합의하고도 운임회복(RR)으로 협의하고 신고했다”고 밝힌 공정위는 “화주 단체와 해운당국이 구체적인 합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게 허위로 협의하고 신고했다”고 이번 제재의 배경을 밝혔다. 특히 “화주에게 합의수준보다 낮은 운임을 제시하는 선사를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하며, 공동운항노선에서 배제시키고, 벌과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선사들의 동참 및 이행을 강제하였고, 화주들에게도 선적거부 등을 통해 합의운임을 관철시켰다”고 그 질이 매우 나쁜 불공정행위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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