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원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
장태평 전 농식품부 장관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가 극단적으로 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국가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양당제도는 형식적으로는 상당 수준 정착되었으나, 오히려 정치적 갈등을 악화시키고, 사회 전체를 진영 간의 세력 싸움으로 확산시키는 근원이 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아마도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소위 ‘검수완박’(검찰수사 완전 박탈) 관련 법안일 것이다. 이 법안은 다수당이 곧 출범할 새 정부의 검찰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갑작스럽게 추진한 법안이다. 헌법과도 관련이 있는 범죄수사 제도의 중대한 변경임에도 불구하고, 촉박하게 기한을 정하여 처리함으로써 많은 문제점을 남겼다.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와 국민여론의 반영 과정을 생략하였음은 물론 국회의 처리 절차에도 흠결이 많았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과정이 핵심이다.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가 확립되어야 하고, 그 절차가 공정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지난 번 국회를 통과한 검수완박 관련 법안은 외견상 절차를 잘 지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그 절차에 실질적인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했다. 국회법에는 다수당의 일방적인 안건 통과를 방지하기 위하여 소위 ‘국회선진화’ 관련 조항들이 있다. 의원 3분의 1이상이 요구하면,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쳐 상당기간 안건을 검토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다수당 의원을 탈당시켜 법사위원회에 옮겨서 안건조정위원회에 소수당 의원 몫을 차지하게 하고, 제1소수당의 참여 없이 다수결로 통과시켰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상임위원회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 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회법에 정해진 소위 필리버스터(의사진행 지연을 위한 무제한 토론)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를 하루씩으로 쪼개는 편법을 썼다. 뿐만 아니라, 국회를 통과한 관련 법안이 정부로 이송되어 공포되는 일정이 관례대로 진행되면, 신임 대통령이 취임한 후에 공포하게 되었다. 당시 집권 세력은 새 대통령의 거부권을 우려하여 오전에 정해진 전임 대통령의 마지막 국무회의를 당일 오후로 미루어 오전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즉일로 공포하였다. 모든 절차가 형식은 갖추었으나 실질적으로는 탈법과 불공정한 절차 운영이었다. 우리나라 정치는 참으로 후진적이다. 정당제도, 국회제도, 선거제도 등에 공정성이 크게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거 후보자의 정당 공천제도는 민주국가인지 의심될 정도로 공정성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운동경기를 하는데, 규정대로 심판을 두고 판정한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절차와 과정에 공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운동경기는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심판으로서 자격이 부적격하거나, 심판이 편파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거나 또는 판정을 부정확하게 하면 안 된다. 재판을 포함한 사법제도에서는 그야말로 공정한 절차가 중요하다. 판사는 양심과 법률에 의해서 공정하게 재판을 해야 한다. 외형적으로 엄격한 형식을 갖춘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 공정성이 결여되어 있으면, 공정한 재판이라 할 수 없다. 형사소송에서는 적법절차가 더욱 중시된다. 범죄행위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수사당국이 적법절차를 위반하면, 무죄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의 우리 현실은 사법부문에 공정성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어 안타깝다.

적법절차의 원칙은 모든 행정 활동에도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정책결정과 집행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특히 첨예한 양당제도 아래에서는 정치적 중립성과 행정의 연속성이 중요하다. 이는 오직 공정성으로만 확보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론화위원회 등 의사결정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편파적이거나 비전문가들로 조직한다면, 공정성이 훼손되고 좋은 결정이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공직자를 공모한다면서 사전에 대상자를 정해 놓고 형식만 밟는다면, 적임자를 뽑기가 어렵고, 수많은 지원자가 허수아비가 될 것이다. 국민연금 운영이나 부동산 정책 등이 전문가들 의견보다 정치적 입장이 강하게 개입되면, 국민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우파정부와 좌파정부가 교차되면서 행정이 점차 포퓰리즘에 물들고 정치화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그리고 국가정책이 크게 요동치면서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

민주주의 정부에서 지켜져야 할 핵심 가치는 공정이다. 공정한 과정이란 실질적 내용이 공정하고 거짓이 없는 절차를 말한다.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공직자들이 공정을 기본 가치로 정립해 주기를 바란다. 그래야 민주주의와 시장주의가 확립되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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