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으로 가격 조종하는 ‘돌려막기’ 방식이 원인 지목
무늬만 페깅, 투자자 코인으로 사고파는 ‘다단계’
일종의 ‘선물’ 거래 시도, 다단계 사슬 붕괴
...무한 폭락 촉발

사진은 테라 루나 발행처인 테라폼랩스코리아의 홈페이지 화면 일부를 캡처한 것임.
테라 루나 발행처인 테라폼랩스코리아의 홈페이지 화면 일부.

[중소기업투데이 조민혁 기자] 최근 테라․루나의 폭락은 암호화폐 시장은 물론, 국내 금융시장 전반에 충격을 주고 있다. 이는 시가 총액이 무려 51조5000억원에 달하면서 한때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시가총액 기준 8위까지 랭크되었다. 그러나 일종의 ‘선물 거래’ 노드로 추정되는 거래가 계기가 되어 무한 폭락을 거듭하며 시가 총액의 99.9%가 허공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여러 가지 원인이 지목되긴 하지만, 무엇보다 발행사인 테라폼랩스사(대표 권도형)의 ‘돌려막기’식 운영이 결국 한계에 달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스테이블 코인 답지 않은 부실한 코인 운영이 그 원인이기도 하다. 테라는 일단 ‘스테이블 코인’이긴 하나, 페깅(1달러와 1코인의 연동)이 아닌, 폰지(다단계)에 가까운 알고리즘으로 작동함으로써 사실상 ‘언스테이블’(불안한) 코인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사고 있다.

본래는 스테이블 코인으로서 연동된 달러 기능으로 코인 가격을 지지해주는게 정석이다. 그러나 테라는 매우 변칙적이고 도박이나 다름없는 무모한 거래 방식을 구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코인을 1달러에 처음에 팔았다가, 매물이 나와서 다시 1달러 밑으로 가면, 그걸 되사서 1달러 될 때까지 되사주는 식이다. 문제는 이때 되사는 방법이다. 정상적이라면 연동된 법정화폐(달러)를 쓰는 게 아니라 새로 다른 코인을 발행해서 그것의 가격이 1달러가 될 때까지 사준다.

다시 말해 첫 번째 코인 가격(테라)이 떨어지면 달러가 아닌 다른 코인(루나)으로 이를 사들여 유통량을 줄인다. 이를 두고 암호화폐 전문가들은 “마치 시소처럼 두 코인 가격의 평형을 맞춘다”고 표현한다. 서로 균형을 맞춰주기 위해서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방식인데, 이는 흔히 ‘재정거래’(arbitrage)로 불리기도 하며, 암호화폐 시장에서 즐겨 활용되고 있는게 문제다.

더욱이 테라폼랩스코리아 권도형 대표는 투자자들에게 ‘사고팔고’ 과정에 참여하도록 사실상 ‘유인’하기 위해 테라를 사면 연간 20% 수익을 주겠다고 약정했다. 이자를 그 만큼 준다는 얘기다. 굳이 코인 두 가지를 왔다갔다 하면서 사고팔고를 거듭할 필요가 없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인 셈이다. 이를 위해 테라측은 또 다른 코인을 발행해서 충당하곤 했다. 즉 또 다른 코인이 가격이 계속 올라가도록 돈이 유입되어야만 20%의 재원이 마련되었던 셈이다. 결국 코인을 나중에 산 사람이 먼저 구입한 사람의 이자와 이익을 보전해주는 식이다. 시장 전문가들이 “전형적인 폰지로서, 일종의 폰지 사기로 의심받을 만하다”고 지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처럼 다단계를 닮은 가격 사슬은 그러나 늘 ‘몰락’과 ‘폭락’의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이미 많은 금융전문가들이나 금융권에선 테라의 이런 운영방식에 대해 ‘시한폭탄’과 다름없다는 주의보를 발했다. 그러나 “내것만 손해 안 보면 된다”는게 대부분 투자자들의 입장이다보니, 이를 아랑곳 않는 분위기가 지속되어 왔다. 미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암호화폐 시장이 발달한 한국에서나 있음직한 풍경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다가 모종의 ‘선물거래’ 세력으로 추측되는 거래가 끼어들면서 마침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투자자들이 계속 시소게임처럼 구매와 매도를 반복해줘야만 하는데, 개인 혹은 집단이 일종의 ‘선물’에 배팅하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선물 거래가 시작되면서 두 코인의 가격은 시소게임이 아닌 동시 하락으로 이어졌다.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다른 코인이 이를 지지해줘야 하는데, 공매도와도 비슷한 ‘숏(short)’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보니 실물이 뒷받침되지 않고, 그나마 페깅(달러 연동) 기능도 없다시피 한 테라의 무한 추락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0원’에 수렴되는 악순환 고리에 빠져버렸다.

이런 경우 암호화폐는 증시와는 달리 ‘하한선’이 없다. 증시의 서킷 브레이크 따위도 없다. 그렇다보니 한 순간 신뢰를 잃어버리면서 투자자들 모두가 아우성치며 ‘팔자’에 나섰고, 무한정 추락하면서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어 버린 것이다. 그저 코인을 코인으로 메꾸는 ‘돌려막기’ 식의 고리가 중간에 ‘펑크’난 결과다.

정부나 관계 당국이 개입할 여지도 전혀 없다. 애초 투자자들에게 권 대표가 약속한 ‘20%’ 약정도 확실한 계약서 한 장 없는 ‘립서비스’에 불과했다. 결국 투자자들로선 고스란히 손실을 감당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투자자들 스스로도 무분별한 선택을 한 것이므로,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이번 사태가 암호화폐 시장에 미칠 영향을 두고도 관심이 크다. 이미 비트코인 가격도 크게 떨어지는 등 충격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인 미국 바이낸스의 창펑자오 대표는 “우리가 (선제적으로) 루나 거래를 중단했으나, 테라 검증자(발행자) 측이 몇 시간 내에 다시 테라 네트워크를 재가동했다”며 ‘그것 보라’는 식으로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문제는 아직도 테라․루나와 유사한 알고리즘을 운영하는 코인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아직은 테라와 비슷한 알고리즘을 운용하는 코인 가격은 테라 사태 이후에도 큰 변동이 없다. 이를 두고 암호화폐 투자를 오랫동안 해온 한 관계자는 “투자자들 대부분은 작동 방식이야 어떠하든 나만 차익을 챙기면 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런 가운데 금융권과 관련 당국에서도 뒤늦게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책을 논의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아직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 가운데 테라 버전의 페깅 알고리즘은 여전히 암호화폐 시장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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