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평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원장(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
장태평 전 농림부 장관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기회를 갖는다. 왕정시대에는 왕족, 귀족, 평민, 노비 등 신분이 세습되어 직업 선택이나 관직 등에서 차별적 취급을 받았다. 오늘날에도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주거나 직업에서 평등한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국가에서는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교육받을 수 있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평등하게 투표권을 가지고, 평등하게 공직에 취임할 수 있다. 현대 국가에서는 평등한 기회가 공정이다. 국민은 공정한 기회를 통하여 각자 타고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한다.

공정한 기회가 어떤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대학교에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등한 기회다. 그러나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이 많으면, 시험을 치러 성적순으로 입학을 허용한다. 이 입학 기준과 절차는 모두에게 주어진 ‘평등한 기회’를 성적으로 차별화하는 결과가 된다. 그리고 부유한 도시 학생들은 교육여건이 좋아서 일류 대학에 가기가 쉽지만, 소년 소녀 가장이나 농어촌 지역 학생 등 교육 여건이 불리한 학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대학에 가기가 어렵다. 이것은 공정한 기회에 반하는 결과다. 교육은 인간이 가진 잠재 능력을 계발하는 과정이다. 어린 시절 열악한 교육 여건으로 경쟁에 뒤진 학생들에게도 좋은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라 하겠다. 따라서 이들의 구제책이 필요하다. 그래서 대학별로 농어촌학생, 저소득 학생, 특수 사정의 학생들에게 정원의 일부를 할당해서 입학전형을 한다.

생각에 따라서는 할당제도가 지나치다거나 부족해서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부족하다면, 특수학생들에게 할당제도 대신에 전체 점수에 특별 가점을 부여하는 제도는 어떨까? 아니면, 아예 고등학교처럼 평준화해서 대학을 강제 배정하는 제도는 어떨까? 그러나 이는 많은 일반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약하는 결과가 된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하여 우리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선택권, 교육의 창의성을 훼손하는 결과도 된다. 교육권에는 교육을 선택할 권리와 학교의 자율권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특목고와 자사고 제도를 폐지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은 문제가 많았다. 기회와 선택권을 빼앗는 정책이었다. 입시의 공정 문제는 공동체에서 기회의 배분을 어떻게 합의하느냐의 문제다. 그렇지만, 이 합의는 법률이나 관습 그리고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면 안 된다. 오히려 공정성을 잃게 된다.

제도가 어떻건 입시전형과 관련하여 최근 부모찬스라는 말이 많다. 조국 사태와 정호영 사태에서 아빠가 입시제도의 틈새를 이용해 부정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공정해야 할 선택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불공정 사례가 너무나 많다. 가장 심각한 곳이 정치 분야다. 민주주의는 대의정치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선거제도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공정성을 잃고 있다. 중앙당의 공천 제도를 통하여 몇 사람의 당 권력자가 밀실에서 후보자를 결정한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지역갈등으로 당 공천이 곧 당락을 실제 결정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공정성을 크게 해치는 제도다. 자유로운 정치 기회의 극심한 참입제한이다. 이를 통해 정치권이 이익 집단화 되고 있다. 특히 비례대표 공천은 현대판 매관매직 제도다. 특히 우리나라는 정당에 국가 보조금이 지급된다. 마치 기존 기업에 국가보조금을 지급하고 더 큰 대기업에는 더 많은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러면 새로운 기업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정치적 기회를 국가가 제한하는 제도다. 또한 양당 제도가 거대한 리바이어던이 되어 극단적인 대결과 갈등을 부추기며 봉건적 정치를 자행하고 있다. 정치 참여에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정한 정치가 이루어질 수 없다. 정치가 공정하지 않은데 어떻게 공정한 국가가 되고 민주국가가 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주인은 학부모와 학생이다. 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지역의 주인은 주민이다.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다. 주인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 주인을 주인답게 하는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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