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회장 후보 추천제' 도입 놓고 갈등고조
조합이사장, 현직 회장 위한 ‘셀프 제도개편’ 불만
피선거권 침해, 공직선거법 도입이 ‘바람직’

제26대 중소기업중앙회장에 당선된 김기문(64) 진해마천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제이에스티나 회장)이 박성택 전 회장으로부터 전달받은 중기중앙회 깃발을 힘차게 흔들고 있다. [황무선 기자]
2019년 2월 제26대 중소기업중앙회장에 당선된 김기문 회장(당시 진해마천주물공단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이 박성택 전 회장으로부터 중기중앙회 깃발을 전달받아 흔들고 있다.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중소기업중앙회(이하 중앙회)가 내년 2월 치러질 차기 회장 선거를 앞두고 특정인에게 유리하도록 일종의 '후보 추천제' 도입을 공식화하고 있다. 이에 유권자이면서 입후보가 가능한 조합 이사장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고조되고 있다. ‘불법선거운동’ 혐의로 피고인 신분인 김 회장이 그간 사석에서 네 번째 연임 도전을 직·간접적으로 밝힌 것으로 알려진 터라, 이번 선거제도 개편에 대해 김 회장의 연임을 위한 ‘셀프’ 제도개편이라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중앙회는 지난 2월 25일 총회에서 이같은 선거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이 개선안에 따르면 중앙회는 선거과열로 인한 후유증 등으로 중소기업계의 화합과 협력을 저해하는 경우가 많다며 중앙회 내 후보조정위원회에서 후보 예정자 및 입후보자를 대상으로 ‘차기 중앙회장 적합도 조사’를 실시해 일종의 후보 ‘필터링’을 하겠다고 밝혔다.

즉 중앙회장에 입후보 하려는 자에 대해 후보조정위원회의 적합도 조사를 거쳐 부적격 후보자로 분류되면 당사자에게 사퇴를 권고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사퇴권고는 법률적 구속력이 없는 권유사항’이라는 단서를 달아, 입후보자가 이를 거부할 수도 있음을 나타냈다. 이날 중앙회가 발표한 적합도 조사 세부내용에 따르면, 후보예정자(1차) 또는 후보자(2차)의 성명을 나열하고 ‘차기 중앙회 회장으로 어느 후보가 가장 적합합니까?’를 묻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미리 정한 지지율에 못미치면 사퇴를 권고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중앙회의 이번 선거제도 개선안에 대해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시도’라며 한마디로 ‘삐딱하게’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어느 모로 보나 현직 회장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한 선거제도라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농협중앙회처럼 공직선거법에 준하는 선거제도를 도입하면 금품선거는 물론 과열양상을 상당하게 막을 수 있다”며 “추천제 도입은 명백하게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김기문 회장의 2연임(8년)에 이어 또다시 2연임을 추진하는 구체적인 움직임이 나타나, 차기 회장 도전 예정자들을 중심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중앙회 회원 200여명이 가입한 단톡방(바른 중기중앙회 세우기)에 김기문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대하는 내용의 글이 공개돼 눈길을 끌었다. 이를 두고 ‘용비어천가’라는 비아냥이 적지 않다.

‘존경하는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님!’으로 시작되는 해당 글은 김 회장이 지난 2019년 2월 취임한 이후 ‘업적’을 열거한 뒤 ‘선도형 경제를 구현하기 위한 신경제 3불 해소와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중대재해처벌법 독소조항 개선, 주52시간제 유연화 등 아직 해결되지 않은 역점사업들의 마무리를 위해서라도 회장님께서 다시 한 번 출마하시어 중소기업중앙회를 이끌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로 끝을 맺고 있다. 이어 바로 아래 지지 사인을 하게끔 돼 있다.

김 회장으로 하여금 ▲지난 2007년 제23대 회장을 시작으로 ▲2011년 제24대 ▲2019년 제26대 회장에 이어 ▲2023년 제27대 회장에 다시 도전해달라는 얘기다. 현 임기까지 총 12년 동안 중기중앙회장을 하는 것도 모자라 다시 4년을 더 자리를 이으라는 주문이다. 내용상 추대 형식을 띠고 있으나 사실상 김 회장의 4번째 선거 도전을 위한 물밑 작업이라고 업계에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이런 이야기는 지난해부터 업계에서 꾸준히 흘러나왔다. 현 시점 선거가 1년도 채 남지 않은 만큼 김 회장의 연임을 구체화하기 위한 세몰이 작업이 시작되고 있음을 뒷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4년 임기의 중앙회장직을 무려 세 번째 맡고 있는 현직 회장의 재도전이 구체화되면 자유로운 선거경쟁 구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데 있다. 12년째 중앙회장직을 맡으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김 회장을 상대로 도전장을 낼 만한 ‘인물’이 누가 있겠느냐는 게 중소기업계의 시각이다. 중앙회가 사유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소기업 대표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단톡방 '바른 중기중앙회 세우기'에 최근 올라온 김기문 회장 추대 문건.
중소기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중소기업 대표 등이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는 단톡방 '바른 중기중앙회 세우기'에 최근 올라온 김기문 회장 추대 문건.

김 회장 추천은 ‘중앙회 사유화’ 뒷받침하는 꼴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글이 공개된 단톡방에선 김 회장의 4번째 중앙회장 도전 설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일부 회원은 “(조국 사태에 빗대어) 조국 수호세력이 나타났다”며 “조국 수호세력 덕분에 정권이 교체됐다”고 비꼬았다. 언론인인 A씨는 “농부는 굶어도 종자 씨는 안 먹는다”며 “‘누구’의, ‘누구’를 위해, ‘누구’를 위한 선거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는 말로 김 회장을 풍자했다.

김 회장의 4번째 중앙회장 도전은 사실 현 시점에서 부적합하다는 게 업계 안팎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는 지난 2019년 2월 중앙회장에 당선되는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금품을 제공하는 등 불법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20년 5월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사전선거운동의 의미와 범위가 명확하지 않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헌법소원 제기를 두고 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시간끌기’ 전략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7월15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선거운동의 의미와 기간’을 비롯한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현행 선거규정이 모두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며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헌법소원으로 1년 이상 중단됐던 재판이 재개돼 지난해 9월8일, 10월22일, 12월17일 재판이 열린데 이어 오는 4월8일 증인신문을 앞두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법상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받게 되면 중앙회장직을 수행할 수가 없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유권자인 190여개 협동조합 이사장들이 김기문 회장을 성토하고 나서, 김 회장의 리더십에 균열이 생기는 사태가 발생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16년간 중앙회와 협동조합에 위임해 운영하던 직생확인업무를 최근 중기유통센터로 이관시킨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이사장들은 “지금까지 중앙회는 뭐하고 있었느냐. 중앙회가 책임을 지고 이 문제를 해결하라”며 김 회장을 압박했다. 직생업무 이관으로 관련 직원 400여명이 실직위기에 처하고 협동조합의 존폐가 위협받게 되자, 안이하게 대응한 김 회장을 상대로 드러내놓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미 지난해부터 중소벤처기업부가 직생업무를 중앙회 및 조합에서 분리하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가 충분했다는 게 조합 측 입장이다.

일부에선 김 회장이 불법선거운동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임기동안 리더십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4번째 연임 움직임이 구체화되는 양상이 나타나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않았느냐”며 “시대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젊고 역동적인 새 인물이 중기중앙회의 혁신을 이끄는게 중소기업계와 국가경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라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저작권자 © 중소기업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