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홍미식의 문화가 산책

지난 3일,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새 왕조의 번영과 큰 복을 염원하며 이름 지었다는 경복궁에는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로 넘쳤다. 복식을 체험하는 외국인들과 추석명절이 겹쳐 내외국인들이 곱게 차려입은 한복의 물결이 고궁 속 파란 가을하늘과 조화를 이루었다.

매주 화요일은 휴관일임에도 추석연휴여서 이날 무료입장했고 웅장한 수문장 교대의식까지 볼 수 있었다. 수문장 교대의식은 중요한 전통유산을 지키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여 우리의 고귀한 왕실문화를 전 세계에 널리 알리려는 취지를 품고 있다. 고증을 통하여 조선시대 궁궐을 지키던 군인들의 복식과 무기, 의장물을 그대로 재현한 수문장 교대의식은 아주 잠시 시간을 조선시대로 돌려놓았다.

의식이 끝난 후 차례를 기다려 수문장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경복궁의 상징적 건물인 근정전 앞에서도 마찬가지. 왕위 즉위식이나 외국 사절 접견 등 국가의 공식 행사가 이루어진 곳으로 언제보아도 권위와 위엄으로 사람들을 압도한다. 인도에서 여행을 왔다는 알리 부부는 “한복을 근사하게 차려입으니 마치 신혼여행을 온 듯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캐나다인, 미국인, 유럽인들도 꽤 있었지만 일본인과 중국인, 특히 동남아 쪽 관광객들이 정말 많았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세 명의 여성은 경복궁이 무척 멋지고 아름답다고 감탄했다.

또 한복이 너무 예쁘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한복을 입은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했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대부분 단정히 묶어 넘긴 머리에 화관을 얹어 장식했다. 환하게 웃으며 즐겁게 관광하는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환해졌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세 쌍의 젊은이들이 무리지어 흥겹게 놀다가 우리를 보고 사진을 찍어달란다. 우리나라에 취업한 태국인들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외국에 와서 어려운 적이 많았다고 한다.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큰맘 먹고 여자 친구들을 초대해 타국생활의 설움을 잠시 날려버리고 활짝 웃으며 모처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비록 힘든 일도 많았지만 여자 친구들 앞에서 뿌듯해하는 지금 이 순간 그들의 어깨는 쭉 펴졌고 얼굴에는 기쁨이 충만했다. 남자 친구들을 자랑스러워하는 여자들을 보며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못과 어우러진 경회루는 근정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어쩐지 근엄해 보이는 근정전과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의 경회루는 잔잔한 정취가 있다. 그래서일까, 그 앞에 서서 호수로 둘러싸인 경회루를 바라보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긴장이 풀리며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진다. 어둠 속 연못에 은은하게 비치는 경회루는 얼마나 더 분위기가 있을까?

동궁, 자경전 등을 지나 안쪽으로 가면 궁궐의 건축양식과는 좀 다른 국립민속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민족의 생활상이 시대별로 전시되어 있다. 또한 기증자들의 전시공간인 기증전시실, 어린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 어린이박물관, 지난 시절의 추억과 우리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야외전시장이 마련되어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와 생활양식에 대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맑은 가을하늘 아래, 수장전 앞마당 특설무대에서 펼쳐진 국악공연은 공연을 하는 사람과 추임새를 넣는 관객이 하나가 되어 고궁을 찾은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의미를 선물했다. 발길을 고궁박물관으로 돌렸다.

2017년부터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국립고궁박물관에는 태조의 금보와 금책, 의복, 왕실 가구, 고종황제의 어필 경운궁 현판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시실 1층에는 순종황제의 어차와 순종황후 어차가 전시되어 있는데 전 세계적으로 20여대가 남아있다고 한다. 특히 기획전시실에는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오랜 기간 국외로 반출되어 있던 귀한 어보. 정부와 국회, 민간단체 등의 노력으로 드디어 2017년 7월 다시 돌아온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찡하게 가슴을 울렸다. 환수를 위한 모두의 노고에 감사하며 일제강점기나 전쟁 등 나라의 혼란 중 빼앗기거나 잃어버린 우리의 고귀한 문화재 환수를 위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다고 자각했다. 조선의 궁궐 중 최고로 일컬어지는 아름다운 궁궐 경복궁은 안타깝게도 임지왜란 때 전소되어 흥선대원군의 주도 아래 중건되었다. 당시 곤궁에 빠진 백성들의 피와 땀으로 재건된 이 궁에는 동궁, 강녕전, 교태전 등 많은 전각들이 건립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훼손되어 현대에 복원된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 아픔을 묻고 오늘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즐기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구촌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때는 바야흐로 글로별 시대, 옛 왕실 경복궁에서 세계 속에 우뚝 서는 대한민국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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