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본지 발행인 겸 대표
박철의 본지 발행인 겸 대표

[중소기업투데이 박철의 기자] 90년대 중반이다. 1995년 중소기업중앙회장(이하 중앙회)에 당선된 박상희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재벌개혁을 줄기차게 외쳐댔다. 톡톡 튀는 그의 행보에 재계가 적지 않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삼성그룹 비서실 소속의 A실장이 박 회장에게 "중앙회를 돕고 싶은데 뭘 해주면 좋겠느냐"고 전화를 걸어왔다. 박 회장은 중소기업 교육을 위한 연수원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이에 15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이하 인력개발원) 조성이 급물살을 타게 된다. 이날 이후 마침 청와대에서 대통령 초청 경제인 연석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기업총수들이 대거 참석했다. 회의 도중 박 회장이 “대통령님!, 삼성에서 중소기업인들을 위해 연수원을 하나 지어준다고 하는데 여기 계신 이건희 회장님에게 격려말씀 한마디 해주십시오”라고 부탁했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이건희 회장은 A실장에게 “인력개발원 화장실에서 숙식을 해도 무방할 만큼 좋게 지어라”고 지시하면서 당초 계획보다 비용이 2배 늘어난 320억짜리 연수원이 만들어지게 된다. 현 시가로 환산하면 거의 3000억원 수준에 육박할 정도의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이후에도 삼성은 중앙회에 적지 않은 금액을 희사했다. 서울 상암동 DMC타워 건설에도 150억원을 보탰고, 전임 박성택 회장 재임시절에는 스마트팩토리 사업에 1000억원을 내 놨다. 이같은 삼성의 행보는 국내 여타 재벌기업과는 급과 결이 달랐다.

삼성은 이렇게 지난 30여 년간 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통한 새로운 기업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익을 담당해 왔다. 이런 가운데 중앙회가 삼성이 기부한 인력개발원을 공매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개발원 매각에 대한 명분이 시원치 않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인력개발원 연수생이 연간 7만 명에서 현재 1만 명대로 쪼그라들어 수지가 맞지 않고 시설노후화에 따른 개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게 중앙회가 주장하는 명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업계의 이야기는 좀 다르다. 늘 중앙회는 국내 중소기업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이고 중소기업체 수가 660만개라고 강조한다. 협동조합만도 준회원 포함 1000여개에 이른다. 또한 경제5단체의 위상에다 정부의 중소기업 정책을 전달하는 창구역할을 하고 있어 행정수요도 적지 않다. 말하자면 이들은 중소기업인력개발원의 연수 및 교육 시장이다. 없는 시장도 만들어 가야 살아남는 세상이 아닌가. 한마디로 인력개발원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인력개발원이 지난 7년간 52억원의 적자를 봤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김기문 회장의 최측근인 한병준 중앙회 부회장의 이야기는 이렇다.

한 부회장은 “인력개발원을 팔아 그 돈으로 파주 등지에 콘도미니엄 형태의 연수원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삼성에게 인력개발원을 다시 매입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삼성은 기부한 자산을 다시 사들이는 것은 기부정신이 훼손될 수 있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삼성그룹 홍보실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인력개발원을 지어 기부한 것은 중앙회의 요구에서 시작됐지만 삼성그룹의 기부행위가 여타 기업들로 퍼져나가는 홀씨가 되기를 바라는 취지였다”며 “요즘 중앙회에서 인력개발원을 애물단지 취급하는 거 같아 아쉽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간 중기부가 인력개발원 매각에 협조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매각명분이 부족한데 있다는 설명이다. 결국 지난 연말 중기부가 인력개발원 매각에 동의를 했지만 향후 이를 둘러싸고 적지 않은 후유증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여타 대기업들이 앞으로 중앙회를 비롯한 중소기업계를 보는 시선에 있어 왜곡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앙회의 이번 처사가 기부문화는 물론이고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을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 좋치않은 선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김기문 회장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상태에서 무리한 개발원 매각은 또 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킬 공산 또한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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