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신임 회장,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
수의계약제도 현실화, 약자기업 스마트공장사업 지원 등 강조
무료 일반회원 제도 올해부터 시행, 여성기업 참여 확대
"여성기업인 아픔 보듬는 친정 역할 할 것"
33년간 금속 원자재 유통·제조 분야서 강소기업 일궈

올초 취임한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신임 회장은 여성기업인들이 부담없이 찾아와서 아픔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정과도 같은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올초 취임한 이정한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신임 회장은 여성기업인들이 부담없이 찾아와서 아픔과 어려움을 호소하는 친정과도 같은 소통창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지난 9일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사무실에서 이정한 회장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여성경제인을 대변하는 법정단체인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이정한 신임 회장(60, 비와이인더스트리 대표)은 남성들 일색인 금속 원자재 분야에서 33년간 잔뼈가 굵은, 강단과 뚝심의 여장부다.  금속판재 유통업을 하다 발전설비 및 구조용 금속제품 생산업체로 방향을 틀어 연매출 100억원의 강소기업으로 일구었다.

기업인으로서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쇠’를 다루는 사람답게 어지간해선 무너지지 않는 강인함과 될 때까지 두들기는 끈기를 갖추었다. 게다가 여성으로서의 섬세함까지 겸비했다는 평가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상황에서 대부분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기업인들의 애로는 상대적으로 더 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올초 취임한 이 회장은 어깨가 한층 더 무거운 듯 했다. 취임하자마자 각 지역을 돌며 현장을 살피는 일을 가장 먼저 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9일 서울 역삼동 한국여성경제인협회(이하 '여경협')를 방문해 이 회장을 인터뷰했다.

올초 10대 회장에 취임한 이후 한달여 정도 지났다. 어떻게 보냈나.

“전국에 17개 지회를 두고 있는데, 직원 10~20명 정도 되는 ‘약자 기업’을 중심으로 지역현장을 돌고 있다. 매출이 좋고 중견 및 대기업과 직거래하는 기업들은 열외로 하고 2·3차 이상 벤더기업들을 방문하고 있는데, 열악한 환경의 ‘약자기업’들이 정말 많다. 여성기업들은 1차 벤더가 거의 없다. 2030세대는 기술창업을 많이들 하고 있으나, 50대 이상 여성 CEO들은 아직도 현장에서 손이 새까매지도록 직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나 자신도 기업인으로서 그렇게 살아왔다.”

현장의 가장 큰 애로는 무엇이던가.

“주52시간제, 최저임금, 최근엔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더해져 기업환경이 더 힘들어졌다고 아우성이다. 시장논리에 맡겨야되는데 정부가 모든 걸 간섭한다는 게 대체적인 여론이다. 기업인들 입장에선 최근 몇 년새 급격하게 부담이 가중됐다. 외국인근로자 문제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대우가 좋은 나라가 없다. 그렇다보니 외국인근로자들이 브로커에게 1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고 서로 오려고들 한다. 하지만 점심에다 야근하면 저녁식사, 기숙사, 심지어 작업복까지 다 제공해서 어렵사리 일을 가르쳐놓으면 급여가 좀 더 좋은 곳으로 옮겨버린다. 예전엔 외국인근로자로 들어오면 5년까지는 의무적으로 근무해야했으나 지금은 다른 업체로 옮길 수 있게끔 바뀌었다. 최저임금에 산정되지 않는데도 숙식을 제공해가며 투자해서 숙련공을 만들어놨는데, 기업 입장에선 기가 막힐 노릇인거다.”

지난달 27일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어찌 대처하고 있나.

“한마디로 속수무책이다. 여성기업의 99.99%는 중소기업이며, 이 중 88.8%가 소상공인이다. 규모있는 기업들 처럼 안전 담당 CEO를 앉힐 처지도 못되고, 사고나면 감옥 가야한다고들 하소연한다. 처벌에 민감해 다들 사고가 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기업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공장 안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기업인에게 화살을 돌릴게 아니라, 근로자 잘못인지 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 안전교육을 열심히 시키고 있으나 근로자들이 안전규정을 지켜야한다. 부실공사를 차단하는 등 그런 제도적인 결함 또한 바로잡는게 우선이라고 본다.”

현 시점, 여성기업들의 가장 큰 요구사항은 무엇인가.

“수의계약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다. 국가계약법 상 수의계약 한도를 기존 5000만원에서 올해부터 1억원으로 상향조정해 허용하고 있으나 지자체나 공기업들이 자체 감사에서 지적받을 것을 우려해 기피하는 등 제대로 안이뤄지고 있다. 요즘 기계 한 대도 가격이 5000만원을 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수의계약 한도는 계속적으로 현실화시킬 필요가 있다. 아울러 공공입찰에서 일정비율은 여성기업들끼리 경쟁하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여성기업에 가점(0.25~0.5점)을 주고 있으나 장애인기업 등 사회적기업, 혁신기업 등에 밀려서 말만 우대지 현장에선 체감을 못하고 있다. 참고로 여경협에선 여성기업확인제도를 통해 5만8000개 ‘진성(眞性)’ 기업을 발굴해놓았다.”

디지털 전환 등 시대변화에 대처하는 것은 엄두도 못낼 것 같은데.

“일부 앞서가는 업체들도 있다.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뿌리산업인데도 스마트팩토리를 빨리 도입해 고철재고를 짜투리까지 사용하는 등 원가절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상당수는 스마트공장 신청을 하려해도 매출액이 기준에 못미치고 별도 인력을 둘 여력이 없어 혜택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상황이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정부가 이런 데를 도와줘야지..”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기업들이 많다. 스마트팩토리를 도입하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는데도 당장 신청 등 서류작업 조차 할 여력이 없으니 어지간한 중소기업은 힘들다고 봐야한다. 열악한 기업도 스마트팩토리 사업의 수혜를 입을 수 있도록 정부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연매출 30억 미만의 약자기업도 스마트팩토리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정부와 관련 재단 등을 상대로 협조요청을 할 생각이다. 요즘 ESG 경영이 화두인데 대기업과 공기업도 멀리서 실현방안을 찾지 말고 여성기업 현장의 열악한 환경을 개선해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하면 상생케이스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여성기업 주간이 올해 처음 생기는데.

“오는 7월 첫째주에 첫 행사가 열린다. 3월쯤에 행사 윤곽이 나올거로 예상한다. 영부인을 초빙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등 여성기업의 위상을 높이고 사회적 관심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기획할 예정이다. 덧붙여 판로를 돕기 위해 홈쇼핑이나 대형유통업체 등과 공동 이벤트를 열고, 각 지역별 여성기업 우수 제품에 세련된 디자인을 입혀 상생플랫폼을 통해 동시에 선보이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여성기업인들의 축제로 만들 생각이다.”

사회적약자인 여성들을 위한 사업이 있나.

“미혼모 가장의 창업을 돕는 사업 등을 협회 차원에서 하고 있다. 또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지원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당당하게 사는 여성기업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창업을 유도함으로써 어둠 속에서 나올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 협회 회원들을 위해선 멘티·멘토 제도를 부활시킬 생각이다. 어려움을 딛고 단단히 일어선 선배 기업인들이 신입회원들의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지난해 여성창업경진대회에 1300명이 참여했다. 이들을 비롯한 여성기업인들의 참여를 늘리고자 협회정관을 개정해 무료 일반회원제를 올해부터 시행한다. 17개 지회를 활용해 여성기업인들이 친정처럼 와서 어려움과 아픔을 호소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대선주자들에게 하고싶은 얘기가 있다면.

“규제 일변도로 갈 것이 아니라 경제논리에 의해 기업은 기업에게 맡겨줬으면 한다. 실례로 주52시간제만 하더라도 특근·야근을 못하게 되니 오히려 직원들이 주말에 아르바이트를 해도 되냐고 묻는다. 설계 같은 업무는 밀리게 되면 현장이 스톱되기 때문에 밤을 새워 해야 회사가 돌아간다. 노동착취를 하지 않는 이상 노사간 합의에 의해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이 회장은 쇠붙이를 다루는 본인의 사업에 대해 ‘대장간’이라고 표현했다. 다소 억센 기업환경에서도 여성이라는 생각은 가져본 적이 없고 품질과 실력으로 승부해왔다고 얘기했다. 장사치가 아닌 사업가로서 한번 내뱉은 말은 지키며 늘 도전하는 자세로 일해왔다고 덧붙였다. 직원들에게도 ‘안한다, 못한다‘ 는 고정관념 속에 있지말고 회사 돈이 들더라도 법이 정한 한도에서 뭐든지 해보라고 독려한다고 했다. DJ 정부시절, 이휘호 여사가 힘을 보태 현 서울 역삼동 건물과 함께 출범한 여경협의 향후 3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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