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전시회 여는 개그우먼 이경애
오는 30일까지 충무로 SPACE Do에서
개그 보다 그림 그릴때 가장 행복
..."삶이 180도 바뀌었다"

화가로 변신해, 이달 30일까지 충무로 SPACE Do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개그우먼 이경애.
화가로 변신해, 이달 30일까지 충무로 SPACE Do에서 첫 개인전을 여는 개그우먼 이경애.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이 인터뷰는 특별했다. 대중에게 알려진 유명인, 더욱이 연예인이기에 미디어를 통해 구축된 일종의 편견을 깨는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개그우먼의 입에서 그같은 표현이 술술 나올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모두가 한 세포다’, ‘60억 인구가 나무에 붙어있는 한 생명’, ‘하늘의 때와 사람의 때가 맞아떨어져야 평화가 온다’, ‘타인을 평가하지 않으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모든게 하나로 연결돼 있다’... 철학적인 의미에서 영성(靈性)이 발달된 사람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 계속적으로 이어져 나왔다. 화가로서 첫 개인전을 열고있는 개그우먼 이경애 씨(57)가 바로 그다. 서울 충무로 복합문화예술공간 SPACE Do에서 이달 4일부터(30일까지) 그의 미술작품 41점을 내걸고 첫 개인전을 열고 있는 이경애 씨를 지난 8일 만났다.

1984년 KBS 개그콘서트 대상을 받으며 데뷔해 ‘넌 내거야’ 등의 유행어를 터뜨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던 그는 최근엔 어묵사업을 하다가 코로나사태로 접었다는 소식이 방송을 통해 나오긴 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는 금시초문이었기에 어떤 그림일까, 궁금증이 앞섰다. 우선 전부가 추상화였다. 생명, 우주, 신의 존재를 표현한 것에서부터 축복, 환희, 희망, 기쁨, 절망, 고난 등등...살면서 겪을 수 있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다양한 감정들이 아크릴물감을 통해 추상적으로 표현돼 있었다. 카페를 겸한 전시공간으로 1~3층에 걸쳐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자연스럽게 전시를 감상할 수 있게 돼있었다. 이 씨는 만나자마자 그림소개부터 하겠다며 1,2층에 걸쳐 전시된 작품들을 하나하나 안내하며 그리게 된 배경과 표현하고자 한 의미를 설명했다. ‘I'm(아임)’, ‘생명의 강’, ‘날갯짓’, ‘시크릿’, ‘첫째날’, ‘광야’, ‘약속’ 등 제목부터가 사유(思惟)를 이끌어냈다. 모두 본인이 명명한 것이라고 했다. 그가 들려준 의미들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일문일답 형식으로 인터뷰를 구성했다.

이경애 작품 '첫 날갯짓'
이경애 作 '첫 날갯짓'

▲ 언제부터 그림을 그렸나.

“붓을 잡은지는 3년 정도 됐다. 어묵사업을 했는데 미련할 정도로 좋은 재료를 고집하다 채산성이 안맞고 코로나까지 겹쳐 결국엔 사업을 접었다. 가게 문닫고 ‘그동안 하고싶었던 그림이나 그리자’며 취미 삼아 시작한 것이 여기까지 온거다. 전시를 할 생각은 꿈에도 안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김승무 씨의 동생과 아는 사이였는데 후배 임미숙과 함께 권유를 해 하게 됐다. ‘내가 그림을 통해 위안을 얻은 것처럼 누군가 단 한사람이라도 위안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그림 그리는 것은 행복했는데 전시회는 또 다르더라. 처음엔 고민이 많아 잠을 제대로 못잤다.”

▲ 작품들이 독특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아크릴물감에 미디엄을 섞어 그렸다. 물감의 자연스러움을 살리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꽃을 그릴땐 풍선을 쓰고 고무공, 빗, 쇠꼬챙이 등 별의별 도구를 다 사용한다. 인위적으로 붓을 들고 그리지 않는다. 모든 작품에 일관되게 표현한 게 세포, 즉 ‘셀(Cell)’인데 그걸 만들기 위해 아크릴물감을 썼다. 사실은 ‘셀’ 때문에 그림을 그리게 됐다. 한 영혼, 한 영혼의 셀들이 연결돼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느날 새벽 꿈에서 자다가 눈을 떴는데, 셀 모양이 나무에서 투영돼 나와 내 몸과도 연결된 상태에서 거미줄처럼 온 공간에 펼쳐진 신비한 광경을 경험했다. 순간 ‘와~ 이거 뭐지’ 라는 생각과 함께 ‘모든 게 한 세포다!’라는 일종의 깨달음이 들었다. ‘생명나무’, ‘불기둥’, ‘생명의 강’, ‘보석동굴’ 등 의미있는 그림들은 자다가 깨어나서 그린 것들이다. 그 중 ‘생명나무’는 이틀동안 거의 쉬지 않고 그려 완성했다. 무언가 홀린 것처럼 그리고나니 나중엔 코피가 났다.”

▲ 그림마다 의미가 남다르다.

“내 모습들이다. ‘생명’은 어느날 나무 밑둥에 끼어있는 이끼를 보고 마치 나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렸다. 사업을 모두 접고 힘들때였다. 저처럼 이끼도 아무말 없이 나무에 붙어 생존하는데 싶어 생명의 귀함을 느끼고 이끼같은 마음으로 나도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다잡는 의미에서 그렸다. ‘첫 날갯짓’은 꽃밭에서 어린 새 한 마리가 스스로 털고 일어나는 첫 날갯짓을 나타낸 것으로, 코로나로 힘들어 침체돼 있을 때, ‘이제 우리 날개 좀 펴고 날자’라는 희망을 담았다. ‘비상’은 ‘바닥을 쳤으니 이제 점프할 일 밖에 없다. 한번 높이 날아보자’는 생각에서 큰 새가 금빛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표현했다. 또 광야에서 고난이 끝나고 불기둥처럼 일어나는 희망의 메시지를 ‘광야’라는 그림에 담았다. ‘환상’은 너무 현실에 부딪히며 살다보니 힘이들어 꽃과 빛이 가득한 환상의 세계서 살고싶다는 생각에서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그림이다.

‘평화’는 하늘과 땅에 걸쳐 쌍무지개가 걸린 이미지를 표현한 것으로 ‘하늘의 때와 사람의 때가 맞아떨어져야 평화가 온다’는 느낌을 갖고 그렸다. ‘I'm(아임)’은 ‘사람마다 다 자기 속에 악(惡)이 있다고 여기고 그걸 받아들이면 다른 이를 평가하지 않게 되고 세상은 조용해진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그렇게 달았다. ‘시크릿’은 힘들거나 외로울 때 마음의 방으로 혼자 들어가는데, 그곳은 저렇게 영롱하고 예쁘게 숨겨진 곳이라는 의미다. 사람마다 어딘가 신비한 장소에 숨고싶어하니까.”

▲ 깨달음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표현들이다. 종교가 있나.

“기독교이긴 하나 종교적인 의미에서 그리진 않았다. ‘신비’라는 그림은 우주에 떠다니는 행성을 거대한 손이 붙잡고 있는 느낌을 나타낸 것으로 원래 ‘신(神)의 손’을 제목으로 하려다 종교적인 것 같아 바꾸었다. 하지만 ‘시선’이라는 그림은 종교를 떠나 신적인 어떤 거대한 존재를 의식하고 그린 건 맞다. 우주적인 시선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을 누군가 불같은 눈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에서 그런 제목을 붙였다.”

▲ 특별히 애착이 가는 그림이 있다면.

“타이틀로 정한 ‘보석동굴’이 그것이다. 루비, 사파이어, 토파즈 등 동굴속 보석들을 불새가 지키는 모습을 나타낸 것인데, ‘내 속에 있는 보석을 찾아낸 것’을 표현했다. 사람마다 자기가 가고 있는 길에서 저마다 ‘내 속’에 숨겨진 보석을 찾아내면 행복한 일이 아닌가. 특히나 요즘같이 힘겨운 시기에 마음속 보석을 찾아내면 더욱 값지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엔 ‘그림’이 그 보석이다. 너무 감사하다. 인구의 90%는 못찾고 갈거 같은데, 죽기전에 찾은게 얼마나 감사한가.”

▲ 그림을 그린 뒤로 뭐가 달라졌나.

“전혀 다른 길인데, 삶이 180도 바뀌었다. 사실 방송을 하면서 나름 인기도 누렸으나 마음속엔 항시 골방에 갇힌 느낌이 있었다. 내겐 방송이 꿈이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집이 가난해 부모님과 가족들을 위해 스타가 되고자 연예인을 택했다. 그런데 2000년에 부모님이 열흘 사이로 돌아가시고 형제들도 다 가정을 꾸리고 나니 마음 깊은 곳에서 뭔지 몰라도 헛헛한 느낌이 올라왔다. 어둠 속에서 좀 빛으로 가고싶었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그동안 내 길도 아닌 길을 부단히 연습하며 왔는데, 그 지나온 삶 덕분에 지금의 그림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늘 뭔가 찾아헤매는 사람 같았는데, 그게 끝난거다. 어제도 저녁 7시경 집에 도착해 새벽3시까지 그림을 그렸다. 행복하다. 그럼 됐지 않나.”

인터뷰 말미, 그에게 이미 접은 사업 얘기를 물으니 “체질에 안맞았다”고 답했다. “투자한걸 생각하면 끌고가야하나 더는 버틸 에너지가 없었다”며 ‘밥 한끼 행복하게 먹으면 되는데..’ 싶어 딱 접었다고 말했다.  

“오늘 한끼의 식사와 커피가 나에게 주어진 전부라면, 그걸 받아들이면 오늘이 행복하겠구나. 지금의 형편이 단칸방이면 그 단칸방 안에서 행복을 찾길 나 스스로에게 희망한다. 내 그림이 주는 의미도 그거다.”

이경애 작품 '시선'
이경애 作 '시선(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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