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전쟁과 ‘보이지 않는 손’
반도체 전쟁과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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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만 객원 편집위원(한서대 교수)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박경만 본지 편집위원

삼성전자가 새로 짓기로 한 미국 텍사스주 비메모리반도체 공장은 그 함의가 예사롭지 않다. 삼성은 보도자료를 통해 “기존 오스틴 생산라인과의 시너지를 도모하고, 반도체 생태계와 인프라 공급 안정성을 기한다”고 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보도자료일 뿐이다. 그 여백에는 국제 반도체 전쟁의 ‘소리없는 포성’이 메아리친다. 그렇다. 지금은 총만 안들었을 뿐, 반도체라는 ‘쌀포대’를 누가 많이 차지하느냐, 그래서 디지털혁명을 누가 선점하느냐를 둔 경쟁 아닌 전쟁이 한창이다.

가장 가열차게 전장의 깃발을 치켜세운 건 역시 미국이다. 엔비디아나 퀄컴, ASML, 인텔 같은 자국 기업은 그렇다치자. 아예 삼성전자와 TSMC, SK하이닉스처럼 엄연한 외국기업들을 백악관에 불러 ‘호통’을 쳤다. “다른 데 말고, 미국 내에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짓고, 미국 안에서만 공급망 생태계를 만드는데 협조하라”는 것이다. 대놓고 말은 안했지만, “말 안 들으면 재미없다”는 식의 시그널도 내보였다. 한술 더 떠 아예 수 십 가지 항목을 나열하며 기술과 영업 노하우, 거래처 명단을 넘기라고 압박했다.

그에 삼성이나 TSMC는 짐짓 딴전도 피워보았으나, 최후 통첩일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다. 일종의 ‘백악관 눈치보기’라고 할까. 텍사스 테일러 공장 역시 그런 맥락에서 보는게 맞다. 물론 삼성 나름의 계산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이젠 세계 반도체 패권을 노리는 미국의 ‘설계도’ 안에서 움직일 도리 밖에 없다. 미국은 이제 ‘국방 수권법’과 대통령령까지 동원했고, 산업부서가 아닌 국방성이 나서 자국내 글로벌 파운드리에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반도체 자립을 위해 적어도 500억 달러를 지원하자”며 의회에 요청했다.

이에 다른 나라들도 가만있을 수만은 없게 되었다. 대만은 진작부터 자국 기업의 대만으로의 복귀를 지원해왔고, 중국 역시 반도체 국산화와 육성을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한국과 대만에 공급을 의존해온 유럽도 마찬가지다. 자체 반도체 생산 거점을 많이 세우고, 차세대 반도체 생산의 세계 점유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K-반도체 전략’과 ‘K-반도체 벨트’ 기치하에 안정적인 공급체인을 마련하느라 부심하고 있다.

이런 식의 각자도생은 이제 반도체만이 아니라, 다른 교역 분야로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 이래 그런 조짐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그야말로 근세 중상주의 이래 굳건히 지켜온 국제무역이론의 기원이 도전을 받고 있는 셈이다. 본래 국제무역이란 상호 신뢰할 만한 이익에 대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교환과 분업행위다. 국가마다 각기 다른 생산비 조건에 따라 비교우위를 좇는 교역이 미덕으로 자리잡은 것 또한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대로라면 국제분업의 태두인 리카도나, 헥셔-오린 모형이 자칫 속절없이 낡은 구두선으로 전락할 판이다.

애초 국제분업과 비교우위무역은 부도덕하고 정의롭지 못한 ‘독점’에 분개한데서 출발했다. 아담 스미스는 일찍이 “인간의 타고난 본성, 즉 자신이 원하는 것과 교환하려는 성향에서 비롯된 협력의 힘으로 시장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그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제시한 최적의 생산과 분배의 아이디얼은 이런 철학적 시선을 바탕에 깔고 있다. 보호무역으로 재미보고 있던 중상주의 독점 자본에 분개한 그의 <국부론>이 그렇고, <인구론>의 토마스 맬서스나, 리카도나 모두 같은 반열이다.

허나 지금의 교역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제로섬의 판돈을 놓고 물고 물리는 살풍경한 도박판이 되어버린 것이다. 만약 21C 버전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면 교통정리를 어떻게 할까. 하긴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은 “각자 반도체 자립을 추구해본들, 비용만 늘고 기술은 위축되며, 생산과 투자도 늘어날지 의문”이라고 했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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