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는 생명의 은인, 목숨도 돈도 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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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만 '굿 뉴트리션(GOOD NUTRITION)' 대표...美 애틀랜타 최대 건강식품 체인점
175달러로 '성공 신화'...美 매거진 '비타민 리테일러'가 뽑은 2014년 'Retailer of The year'
1970년대말 애틀랜타 건너가 건강식품, 인삼, 정수기사업, 부동산 등으로 성공
"은퇴후 한인 차세대 양성이 꿈"
1979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을 고치기 위해 애틀랜타로 무작정 건너가 건강식품 체인사업으로 성공을 일군 남기만 '굿 뉴트리션(GOOD NUTRITION)' 대표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자신의 빌딩에서 지난한 이민사를 얘기하고 있다.
1979년 시한부 선고를 받고 병을 고치기 위해 애틀랜타로 무작정 건너가 건강식품 체인사업으로 성공을 일군 남기만 '굿 뉴트리션(GOOD NUTRITION)' 대표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위치한 빌딩에서 지난한 이민사(移民史)를 회상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투데이 황복희 기자] 1975년 9월, 당시 고대의대 부속 우석병원에서 콩밭 하나를 절제수술하고선 앞으로 3년 정도 밖에 못산다는 청천벽력같은 의사의 얘기를 듣고 애틀랜타 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이 있었다. 20대 중반 나이에 군대 제대한지 얼마 안된 때였다. 지금은 ‘핫틀랜타(hotlanta)’로 불릴 정도로 미 남동부의 중심도시로 성장했지만 당시만 해도 한국사람에게 애틀랜타는 생소한 곳으로, 연고도 없는 그곳에 그는 “살기 위해서 갔다”고 말했다.

애틀랜타는 남북전쟁 당시 남군의 수도로서 수많은 사상자가 생기면서 큰 국립병원들이 생겨났고, 대표적으로 미국질병관리본부(CDC)가 위치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미국 순방을 하면서 들른 곳으로 당시 방문한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해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지의 글로벌기업들이 많이 진출해있다. 수년전 파나마 운하가 확장되면서 물류환경이 좋아져 우리나라 기업들도 종전엔 LA를 거쳐 기차로 운송했으나 이제는 한국에서 배로 선적해 운하를 지나 인근 사바나항을 통해 애틀랜타로 들어간다.

이처럼 미국 남동부 최대 도시인 이곳에서 건강식품 체인점(8개)을 운영하는 남기만 ‘굿 뉴트리션(GOOD NUTRITION)' 대표(74)는 지금으로부터 46년전 주머니에 175달러를 넣고 병을 고치기 위해 무작정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디뎠다. 지난 16일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중심가에 위치한 그의 6층 건물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인터뷰 도중 얘기가 다른 방향으로 새는 경우가 많았으나 그 ‘샛길’ 또한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데 있어 소중한 소스(source)가 됐고 지난한 이민사(移民史) 자체가 감동섞인 스토리텔링이었다.

당시 의술이 훨씬 앞선 애틀랜타에 가서 병을 고쳐볼 요량으로 그곳 병원에서 2년여 정도 치료를 받던 남 대표는 “병은 스스로 고쳐야된다”는 자각을 하고 건강식품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는 1979년 CDC본부 옆에 유대인 노인이 운영하던 7~8평 규모의 건강기능식품 가게를 인수하게 된다.    

“2년 가량 켄터키치킨과 수박만 먹으며 주유소 일 등을 해서 모은 돈 2만5000달러로 영어도 서툴고 장사를 해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무턱대고 가게를 인수했어요. 모자란 금액은 60개월 동안 할부로 갚아나가기로 하고 계약을 했지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지금 생각하면 175불 들고 갔으니 잃어봐야 175불일 것이고, 그동안 고생하며 버틴 것이 억울하기도 해 일종의 오기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남 대표는 당시 값싼 켄터키치킨만 삼시세끼 먹다보니 치킨 가게 옆을 지나면 냄새도 맡기싫어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고 회고했다. 가게 인수 과정에서 그는 '개성상인' '중국 왕서방' 상술로 연결되는, 지독하리 만치 철저한 '유대인 상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유대인인 전 주인은 가게를 넘겨주면서 이틀에 걸쳐 비타민 한개 한개의 입고날짜를 일일이 따져 인도가격을 계산했고, 분납기간인 60개월이 지나자 꽃 한송이와 저녁식사를 대접하며 비로소 가게 주인이란 타이틀을 내어주었다고 했다. 비타민 종류 등 영양제가 주류인 가게를 운영하며 그는 한국인삼을 들여다 함께 팔았다. 병에 인삼 한뿌리씩을 담아 1달러99센트에서 시작해 3달러99센트로 올려 팔다가 현지인들 사이에 반응이 좋자 상품(上品)은 수백달러를 받기도 했다. 고려인삼이 세계적으로 유명한데다 에너지원으로서 효능이 알려지면서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건강도 자연히 좋아졌다. 그는 ‘적극적인 사고(positive thinking)’를 건강을 되찾은 중요한 요소로 들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기 위해 미국으로 간 그에게 신(神)은 기회를 계속 주었다.(크리스챤인 남 대표는 자신이 처음 미국 남부로 간 것과 거기서 나름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신이 인도했다고 표현했다.)

그는 건강식품점을 하며 자칭 ‘물 장사’도 같이 했다. 미국 가정에 정수기를 설치해주고 관리해주는 사업으로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판 것처럼) 자신은 미국 물을 팔아 돈을 벌었다고 말했다. 여기서 그치지않고 남 대표에게 정작 큰 돈을 안겨준 것은 ‘부동산’ 이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 한국 사격 대표로 나간 분이 방문해 우연히 만나게 됐어요. 애틀랜타가 1996년 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시점이었어요. 그 분이 고속도로가 만나는 인터체인지 인근 등지에 땅을 사두라고 조언을 하더군요. 그래서 여기저기 개발이 될만한 곳에 조금씩 땅을 매입했어요. 올림픽이 끝나고나니 땅값이 크게 오르더군요.”

남기만 대표의 '굿 뉴트리션'을 '2014년 최고의 비타민샵(Retailer of The year)’으로 뽑은 미국 건강기능식품 전문잡지 '비타민 리테일러'의 당시 표지. '굿 뉴트리션' 매장과 직원들의 모습이다.

1979년 당시 건강식품 가게를 인수하며 애틀랜타에서 제일 이름있는 가게로 만들겠다고 다짐한 꿈도 실현이 되었다. ‘굿 뉴트리션’은 미국의 건강기능식품 전문잡지인 ‘비타민 리테일러’가 창간 20주년 특집으로 선정한 '2014년 최고의 비타민샵(Retailer of The year)’으로 뽑혀 4페이지에 걸쳐 소개가 됐다. 미국 내 1만5000개 비타민샵 중에서 최고로 꼽힌 것으로 가게를 연지 34년 만이었다.

“비결이라면 ‘어떻게 하면 손님이 우리 가게를 찾아오게 할까’ 고민하다가 손님 입장에서 생각해봤어요. 질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파는 방법에 결론이 도달했고, 또 미국에 왔으니 미국사람을 상대로 장사를 해야겠다, 그래서 미국인 점원들을 전면에 내세웠어요. 현지 사람들은 우리 가게 주인이 동양인인줄 모릅니다.”

남 대표는 다가오는 연말께 회사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날 계획이다. 전체 직원 78명 가운데 서울대 출신이 5명인데 그 중 한 사람에게 지난 봄부터 경영을 맡기고 있다.

2004년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회원으로 가입한 그는 미국 남동부 한인무역협회장과 청년창업위원장, 조지아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지내며 한인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밥퍼 나눔’ 운동을 하는 다일공동체와 청량리 천사병원 후원 등 고국에서 기부활동도 많이 했다.

“앞으로 은퇴하면 뭘 해야 할까. 신(神)의 뜻이 뭘까. 왜 나를 어디 붙은지도 모르던 애틀랜타로 인도했을까. 습관처럼 새벽4시면 잠이 깨는데, 올해 내내 그 답을 찾고자 했어요.”

그에 대한 답은 고국의 미래를 위한 봉사, ‘사람’을 키우는 일로 좁혀졌다. 그는 지난 봄 월드옥타 주최 세계대표자대회 참석차 한국을 찾았을 때 가톨릭관동대에 어려운 처지의 학생들을 위해 써달라며 1000만원을 기부했다. 지금은 가수 인순이가 운영하는 다문화 대안학교인 해밀학교 학생들을 애틀랜타로 초청해 현지 마틴루터킹 목사 기념관, 헬렌켈러 생가 등을 견학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아울러 월드옥타가 차세대 교육과정을 통해 배출한 청년들이 비즈니스를 통해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월드옥타 내 영리조직(주식회사)을 활성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고국에 오면 전국 여기저기 국토가 변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새로운 구상을 한다는 그는 최근 미국에서 핫(hot)한 스마트농장을 시작해볼 요량으로 앨라바마주 몽고메리에 땅을 확보해두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다시피 하고 살기 위해 무작정 미국땅을 밟은 그는 성공하고 와서 옛말할 수 있는 건 본인이 잘나서가 아니다라는 것을 언제부턴가 깨달았다고 거듭 말했다. ‘나’라는 개인적인 바운더리에서 확장된 사명(使命)을 그는 스스로에게 계속 묻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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